“고객님, ○○보험입니다. 이번에 좋은 상품이 나와 전화드리게 됐습니다….” 휴대전화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루 한 번은 상품가입 권유 전화를 받게 된다. 집전화로도 대출이나 부동산 관련 전화가 쉼 없이 걸려온다.
그러다 보니 발신자를 확인한 뒤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거나 내용도 제대로 듣지 않고 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서비스업의 최전선에 있는 텔레마케터가 바로 그들이다.
아웃바운드 중소업체 강남에 밀집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전화권유판매사업자’로 등록한 업체는 서울시 강남구에만 700곳이 넘는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전화통신판매원’은 통계청 최근 자료인 2007년 기준 자료로 약 2만8000명이지만, 강남 일대 텔레마케터만 해도 2만명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는 3000여 개 콜센터에 35만명 이상의 텔레마케터가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텔레마케팅은 고객의 문의와 주문을 받는 ‘인바운드(Inbound)’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로 대별된다. 강남에 집중된 전화통신판매원 중에는 아웃바운드를 담당하는 사람이 많다. 텔레마케터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연령대는 25~35세에 집중돼 있다.
아웃바운드 업무는 인바운드보다 어렵고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더 높다. 업종도 정보기술(IT) 쪽이 젊고, 금융 쪽에 좀더 나이 든 텔레마케터가 포진해 있다. 강남 일대의 여성 텔레마케터들은 그 지역 상권을 움직일 만큼 규모가 크지만, 자신의 인격을 숨기고 고객 대응에만 매진하기에 그림자 같은 ‘거대한 소수’라 할 수 있다.
텔레마케터는 고객과 빈번하게 접촉하지만, 본인들의 속사정은 좀처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콜센터 텔레마케터 여성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힘겨운 업무로 자신을 소진하는 동안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 텔레마케터들의 현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업무 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아웃바운드 업무는 중소업체와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아 고용 조건도 열악하다. 일부 텔레마케팅업체는 이름을 바꿔가며 ‘전화권유판매사업자’로 등록해 불법영업을 하는데, 이 경우 텔레마케터의 업무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강제 권유나 불법영업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은데도 많은 여성이 텔레마케터로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텔레마케팅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컨택센터협회’의 김효연 차장은 “회사와 업종별로 차이가 있어 평균 급여를 추산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략 월 120만~180만원을 받는다.
아웃바운드 가운데서도 적극적인 영업력이 필요한 업무는 실적에 따라 200만원 이상도 받는다”고 전했다.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30대 전후의 여성에게 일반 판매·서비스직보다는 많은 급여라 강도 높은 업무에 대한 보상이 된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지는 것도 가사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큰 이점이다. 24시간 운영하는 홈쇼핑 콜센터를 제외하면, 아웃바운드 상담을 비롯한 텔레마케팅은 대부분 정해진 일과 시간에 이뤄진다. 업무 집중도가 높은 대신 초과근무가 없다는 게 주부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또한 텔레마케팅업체나 콜센터는 대부분 지하철역 근처에 자리해 출퇴근이 편리하다는 것도 장점일 수 있다.
물론 남모를 고충도 적지 않다. 높은 업무 강도 외에 텔레마케터들이 토로하는 고충은 욕설과 성희롱이다. “여자 상담원 목소리다 싶으면 ‘여보세여~’만 해도 욕을 하면서 ‘죽여버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C보험 콜센터 노동자) “고객이 신음소리를 낸다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면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와드릴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끊겠습니다’ 하고 끊는다”(L홈쇼핑 콜센터 노동자)….
앞서의 실태조사 중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의 ‘콜센터 텔레마케터 노동자의 감정노동과 성차별’의 한 대목이다. 대기업의 인바운드를 담당하는 텔레마케터는 회사를 대표해서 고객을 상대하므로 다양한 유형의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항의하거나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실적 부담 … 언어폭력에 시달리기도
한편 부동산업체 같은 중소업체에서 아웃바운드로 영업에 나서는 텔레마케터들은 불쾌한 일을 당해도 실적 부담 때문에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맞춰야 하는 ‘감정노동’의 속성이 텔레마케터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여러 고충이 수반되기도 한다. 엄청나게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통신사나 홈쇼핑은 해당 상품의 상세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바운드 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또 상품 한 가지의 특성을 확인한 뒤 반복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아웃바운드는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해야 하는 업무가 텔레마케터를 고되게 만든다.
자신의 실수나 실적이 죄다 실시간으로 평가된다는 사실도 업무의 피로도를 더욱 높인다. 모 홈쇼핑에서 중간관리자를 맡았던 한 여성은 “모든 통화를 녹취해 상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실적은 얼마나 올렸는지, 친절도는 어떠했는지를 평가한다. 자신의 주고받는 말 모두가 그대로 녹음되고 있다는 것은 텔레마케터를 시종 긴장하게 한다”고 털어놨다.
텔레마케터들이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에게 인정받을 때다. 실적이 높다는 게 인정의 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고객이 자신의 전화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에서 큰 힘을 얻는다. 전화선을 사이에 두고 난데없는 전화 받기에 짜증나는 이도, 쉴 새 없는 전화 걸기에 지치는 이도 결국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발신자를 확인한 뒤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거나 내용도 제대로 듣지 않고 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서비스업의 최전선에 있는 텔레마케터가 바로 그들이다.
아웃바운드 중소업체 강남에 밀집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전화권유판매사업자’로 등록한 업체는 서울시 강남구에만 700곳이 넘는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른 ‘전화통신판매원’은 통계청 최근 자료인 2007년 기준 자료로 약 2만8000명이지만, 강남 일대 텔레마케터만 해도 2만명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적으로는 3000여 개 콜센터에 35만명 이상의 텔레마케터가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텔레마케팅은 고객의 문의와 주문을 받는 ‘인바운드(Inbound)’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로 대별된다. 강남에 집중된 전화통신판매원 중에는 아웃바운드를 담당하는 사람이 많다. 텔레마케터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연령대는 25~35세에 집중돼 있다.
아웃바운드 업무는 인바운드보다 어렵고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더 높다. 업종도 정보기술(IT) 쪽이 젊고, 금융 쪽에 좀더 나이 든 텔레마케터가 포진해 있다. 강남 일대의 여성 텔레마케터들은 그 지역 상권을 움직일 만큼 규모가 크지만, 자신의 인격을 숨기고 고객 대응에만 매진하기에 그림자 같은 ‘거대한 소수’라 할 수 있다.
텔레마케터는 고객과 빈번하게 접촉하지만, 본인들의 속사정은 좀처럼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콜센터 텔레마케터 여성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힘겨운 업무로 자신을 소진하는 동안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 텔레마케터들의 현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업무 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아웃바운드 업무는 중소업체와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아 고용 조건도 열악하다. 일부 텔레마케팅업체는 이름을 바꿔가며 ‘전화권유판매사업자’로 등록해 불법영업을 하는데, 이 경우 텔레마케터의 업무 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강제 권유나 불법영업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은데도 많은 여성이 텔레마케터로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텔레마케팅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컨택센터협회’의 김효연 차장은 “회사와 업종별로 차이가 있어 평균 급여를 추산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략 월 120만~180만원을 받는다.
아웃바운드 가운데서도 적극적인 영업력이 필요한 업무는 실적에 따라 200만원 이상도 받는다”고 전했다.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30대 전후의 여성에게 일반 판매·서비스직보다는 많은 급여라 강도 높은 업무에 대한 보상이 된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지는 것도 가사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큰 이점이다. 24시간 운영하는 홈쇼핑 콜센터를 제외하면, 아웃바운드 상담을 비롯한 텔레마케팅은 대부분 정해진 일과 시간에 이뤄진다. 업무 집중도가 높은 대신 초과근무가 없다는 게 주부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 또한 텔레마케팅업체나 콜센터는 대부분 지하철역 근처에 자리해 출퇴근이 편리하다는 것도 장점일 수 있다.
물론 남모를 고충도 적지 않다. 높은 업무 강도 외에 텔레마케터들이 토로하는 고충은 욕설과 성희롱이다. “여자 상담원 목소리다 싶으면 ‘여보세여~’만 해도 욕을 하면서 ‘죽여버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C보험 콜센터 노동자) “고객이 신음소리를 낸다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면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와드릴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끊겠습니다’ 하고 끊는다”(L홈쇼핑 콜센터 노동자)….
앞서의 실태조사 중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의 ‘콜센터 텔레마케터 노동자의 감정노동과 성차별’의 한 대목이다. 대기업의 인바운드를 담당하는 텔레마케터는 회사를 대표해서 고객을 상대하므로 다양한 유형의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항의하거나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실적 부담 … 언어폭력에 시달리기도
한편 부동산업체 같은 중소업체에서 아웃바운드로 영업에 나서는 텔레마케터들은 불쾌한 일을 당해도 실적 부담 때문에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맞춰야 하는 ‘감정노동’의 속성이 텔레마케터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여러 고충이 수반되기도 한다. 엄청나게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통신사나 홈쇼핑은 해당 상품의 상세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바운드 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또 상품 한 가지의 특성을 확인한 뒤 반복적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아웃바운드는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해야 하는 업무가 텔레마케터를 고되게 만든다.
자신의 실수나 실적이 죄다 실시간으로 평가된다는 사실도 업무의 피로도를 더욱 높인다. 모 홈쇼핑에서 중간관리자를 맡았던 한 여성은 “모든 통화를 녹취해 상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실적은 얼마나 올렸는지, 친절도는 어떠했는지를 평가한다. 자신의 주고받는 말 모두가 그대로 녹음되고 있다는 것은 텔레마케터를 시종 긴장하게 한다”고 털어놨다.
텔레마케터들이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에게 인정받을 때다. 실적이 높다는 게 인정의 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고객이 자신의 전화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에서 큰 힘을 얻는다. 전화선을 사이에 두고 난데없는 전화 받기에 짜증나는 이도, 쉴 새 없는 전화 걸기에 지치는 이도 결국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