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일 군산구장에서는 2005년 이후 4년 만에 프로야구가 펼쳐졌다. 새 단장을 한 군산구장은 이날 1만1000석 표가 매진됐다. 해태 시절을 포함해 기아의 군산 홈경기가 매진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아는 8월2일 삼성을 꺾으면서 약 7년 만에 1위로 올라섰고, 20일 오전 현재 2위 두산에 3.5 게임차로 앞서 있다. 프로축구에서는 전체 15개 팀 중 전북 현대와 광주 상무, 전남 드래곤즈가 각각 2, 4, 6위로 순항 중이다. 프로농구에서는 전주 KCC가 2008~2009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섯 시즌 만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프로스포츠는 아니지만 지난 5월에는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광주 개최가 확정됐다. 여러모로 호남 스포츠가 경사를 맞은 것이다.
프로스포츠 역사상 이렇듯 한 시즌에 여러 종목의 호남 연고 팀이 선두권을 형성한 적이 없었다. 997년 야구에서 기아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축구에서 전남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지만 농구에서는 광주 나산이 8개 팀 중 5위에 머물렀다. 올해 유독 호남의 프로스포츠가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과 기아팀 성적 절묘한 관계
우선 프로야구부터 살펴보자. 1997년까지 9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기아는 2006년 4위에 올랐을 뿐 최근 4년간 6위 1회, 최하위인 8위 2회를 기록하는 등 ‘최고 명문팀’ 명성에 맞지 않는 오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명품 투수진과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는 김상현의 활약으로 20일 오전 현재 62승40패4무, 1위를 달리며 12년 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다.
기아 부활의 최고 공신 김상현(좌), 전북 공격의 핵 이동국(우).
기아를 1위에 끌어올린 원동력은 투수력이다. 팀 타율 최하위(2할6푼6리)에 머문 타선의 부진을 팀 방어율 2위(3.87)의 투수진이 상쇄하며 질주하고 있다. 특히 구톰슨-로페즈 외국인 투수 듀오의 맹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두 사람은 총 22승을 올리며 기아의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방어율도 3.09(구톰슨), 3.30(로페즈)으로 2점대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양현종(7승·3.33), 윤석민(7승·3.01)으로 이뤄진 기아의 ‘명품 선발진’은 올 시즌 프로야구의 최고 히트상품이다. 4월부터 6선발 시스템을 활용한 덕에 현재 기아 선발진은 체력적으로 다른 팀보다 유리하다. 멀리 내다본 조범현 감독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기아 부활의 최고 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김상현이다.
시즌 초 LG에서 트레이드돼 7년 만에 친정팀에 온 김상현이 이처럼 활약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재 홈런 공동 1위(24개), 타점 1위(96점)에 랭크돼 있다. 팀 내에서는 최다 안타, 장타율 등에서 모두 1위다. 순위 다툼이 치열한 8월 이후에는 더욱 포효하는데 8월에만 타율 4할1푼4리에 8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김상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 차례 해결사 노릇을 했다는 점.
현재 승리타점 1위에 올라 있는 김상현은 올 시즌 강력한 정규시즌 MVP 후보 중 한 명이다. 기아의 전신인 해태에서 8차례나 우승을 경험한 이순철 MBC ESPN 야구해설위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기아는 구성 멤버가 좋아졌고, 그만큼 잘할 수 있는 팀이었는데 다소 부활이 늦었다”고 분석했다.
또 “김상현과 외국인 투수 구톰슨과 로페즈가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이 상승세를 타자 다른 선수들도 자신감을 얻었고, 타이거즈의 전통을 살리려는 이종범과 같은 고참 선수들의 격려가 팀의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고 덧붙였다. 부상 공백 후 복귀한 이용규, 김원섭의 테이블 세터진도 질주하는 기아에 고속 모터를 달았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챔프 전주 KCC
다음은 프로축구로 시선을 돌려보자. 1994년 창단한 전북은 최고 성적이 4위였을 정도로 그동안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팀이었다. 하지만 성공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올해는 ‘우승 근접 팀’으로 탈바꿈했다. 2003년 창단 후 4차례 최하위를 기록해 ‘만년 꼴찌팀’이라 불리던 광주도 우수 선수들의 입단 후 좋은 플레이를 선보이며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전북은 이동국과 에닝요, 하대성, 김경선 등 우수 자원을 데려와 선수들에게 적합한 전술을 성공적으로 적용시키며 팀 전력을 극대화한 케이스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시즌 전 영리한 방출과 영입 작업으로 전북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며 최강희 감독 및 구단의 전략을 높이 샀다. 중앙에는 개인기가 좋은 루이스가 포진하고, 오른쪽과 왼쪽에서는 크로스가 좋은 에닝요와 최태욱이 뛰며, 이동국이 중앙에서 득점에만 전념하는 전술이 제대로 맞았고, 그 결과 전북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득점 1위 이동국, 도움 1위 최태욱, 도움 3위 에닝요와 루이스가 이루는 공격 라인은 최강이라 불릴 만하다.
광주 상무 역시 최성국, 최원권, 김명중 등 좋은 선수들이 대거 ‘입대’한 뒤 팀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광주는 상무팀답지 않게 자유방임형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단순하면서도 선수들의 능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전술을 구사한다. 한준희 위원은 “최성국의 능력을 150%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프로농구를 살펴보자. 전주 KCC는 새로운 선수 영입의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드래프트를 통해 들어온 하승진이 골 밑에서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가 하면, 서장훈과 맞트레이드돼 KCC 유니폼을 입은 강병현도 맹활약하며 ‘오빠부대’까지 몰고 다녔다.
특히 서장훈, 하승진이라는 ‘국보급 센터’ 2명이 기용 시간을 놓고 벌인 갈등이 도화선이 돼 팀이 한때 9위까지 몰락했던 KCC는 트레이드 이후 분위기가 급반전해 정규시즌 3위로 마감했고, 결국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울 삼성을 격침하며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또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한 추승균과 허재 감독의 적절한 용병술도 주효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2009시즌 플레이오프 종료까지 두 달여 남았다. 프로농구도 10월15일 2009~2010시즌이 시작한다. 호남 연고의 프로스포츠팀이 현재의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원하는 성적을 이뤄내 ‘호남 프로팀 천하’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