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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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혹시 ‘인터넷 난독증’ 있나요?

글 일부만으로 엉뚱한 해석, 내용 오해 … 누리꾼 왜곡된 여론 형성의 부작용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8-26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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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 혹시 ‘인터넷 난독증’ 있나요?
    # 이한영(28) 씨는 얼마 전 관상 성형에 관한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떠 있는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성형으로 관상을 바꾼다고? 또 성형외과 광고하는 기사 아니야?”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기사의 제목과 소제목만 훑어보고, 다른 기사를 보기 위해 창을 닫았다. 며칠 뒤 의대를 다니는 선배,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 이씨. 이날의 화두는 성형이었다. ‘여자친구가 성형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얘기로 술자리는 달아올랐다. 며칠 전 제목만 보고 지나갔던 기사가 생각난 이씨. 그는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 먼저 아는 체하며 얘기를 꺼냈다.

    “얼마 전 보도된 기사를 보니까 성형 참 위험한 거더군. 심지어 관상까지 바꿀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맞받아쳤다.

    “뉴스 메인에 뜬 그 기사 얘기하는구나. 그런데 너 그 기사 끝까지 읽어본 거야? 나도 읽었는데, 그 기사의 요지는 성형으로 관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관상 성형을 기대하기보다는 마음을 제대로 가꾸라는 거였어.”



    친구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이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학생 정모(20) 씨는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읽을 때 조금만 길고 어렵다 싶은 글이거나, 공들여 읽고 싶지 않은 부분은 대충 내용만 파악하고 넘어간다. 제목만 훑고 지나가거나 그림으로 제시된 통계자료만 확인하고 기사 내용을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내용을 엉뚱하게 이해하기 일쑤다. 막상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처음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자신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댓글을 읽어보면 누리꾼마다 기사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똑같은 글을 읽고 왜 이렇게 극과 극으로 이해하는 걸까?”

    인터넷상에서는 글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난독증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난독증의 의학적 정의는 ‘듣고 말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정상 이상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경미한 뇌기능 장애 혹은 음소를 감별하는 기능 이상으로 읽기, 쓰기 등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장애’다.

    이에 비해 ‘인터넷 난독증’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종이매체를 통해서는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컴퓨터 모니터로 읽을 때면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다. 둘째, 글의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보나 편견에 부합하는 특정 부분만 반응하는 경우다.

    두 경우 중 인터넷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다. 많은 누리꾼이 잘못 이해한 내용을 근거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님, 혹시 ‘인터넷 난독증’ 있나요?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항변한다. 엄청난 양의 정보에 노출된 상황에서 그 많은 정보를 하나하나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모(22) 씨는 “마우스 휠을 내려서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의 맥락이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니터에 빽빽이 들어찬 글씨를 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분”이라며 인터넷 글 읽기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들이 접한 정보가 갖는 의미를 되씹거나, 왜곡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ID가 sasa0707인 한 누리꾼은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 누리꾼은 무엇보다 정보를 빨리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다 보니 글의 의도보다는 관심 있는 단락에만 집중한다.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먼저 읽고 이를 통해 얻은 단편적인 이해만을 근거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개인적인 병리현상에 지나지 않는 인터넷 난독증이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터넷 난독증에 빠진 많은 누리꾼이 잘못 이해한 내용을 근거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다. 그 결과 엉뚱한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가 올바른 공론 형성을 가로막기도 한다. 지난해의 광우병 사태나 올해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인터넷 난독증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희대 교양학부 김진해 교수는 “사실을 잘 모르는 상태라면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데, 잘못된 판단으로 성급하게 얘기를 한다. 막상 그 얘기를 들어보면 왜곡된 상식, 자기 편견 등으로 오도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잘못 이해한 내용을 근거로 서로를 ‘난독증에 걸렸다’고 비난하면서 다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ID fdsa1111인 한 누리꾼은 “감정적 논쟁이 결국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 또한 비슷한 일을 겪어 마음 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에서 글쓰기가 두렵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 세종대 전자정보공학 강장묵 교수는 “인터넷 난독증은 글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인터넷 공간의 관계 맺기인 사회 관계망(social network)을 위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특유의 활발한 소통, 참여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난독증을 치료하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인터넷 매체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를 정확히 읽어내려는 노력이 최선이다. 전문가들은 “읽기의 기본기를 충실히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넷 문서를 훑어보는 데 편중된 시간을 인쇄매체 읽기에도 많이 할애해 읽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

    디지털 공간인 인터넷에 적합한 읽기 습관을 찾는 것은 이제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김진해 교수는 “인터넷상에 서로 떨어져 있는 ‘정보 파편’을 통합해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구성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견해를 펼쳐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넷 난독증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가 ‘내 판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조급한 판단에 앞서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과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이 뒤따라야 인터넷 난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주간동아 대학생 인턴기자 신지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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