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검사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과거 필자가 법조생활을 할 때만 해도 검사가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면 관내 유지나 업자들이 ‘전별금’을 바쳤다. 일부 검사는 전별금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뒀다 후임 검사에게 넘겨 손을 봐주게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검찰의 조직문화 생리를 짐작게 한다.
판사사회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조직문화’가 있다. 나아가 조직에 대한 충성은 인간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저서에서 본래 도덕적인 사람도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 속하면 조직이기주의에 빠지는 행동 패턴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 타인의 이익을 배려할 수 있는 개인이 조직 안에서는 민족적, 계급적, 인종적 충동이나 조직이기주의에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제도 법제화라는 목표를 쟁취하고자 권력 비위를 맞춰가며 무진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재판거래’까지 도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일을 했을까.
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또 일각에서는 상고법원을 새로 만들어 법관들에게 승진 기회를 주고, 또 그곳으로 몰려드는 법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일선 법관들이 생각하는 원인은 이보다 더 단순하다. 상고법원을 구성할 고위직 법관들을 더 확보함으로써 평생법관제 시행으로 심각해진 인사적체의 숨통을 틔울 의도가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사법부의 조직이기주의를 실현하려고 상고법원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조직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 칭송받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유능하다고 인정받아온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충실하게 좇아 사법부의 이익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공정하고 깨끗한 사법부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 이익을 철저히 배신하고 말았다.
‘재판거래’는 인간이 집단이나 조직에서 만들어내는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만연한 조직이기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도 검찰이건, 법원이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법개혁 리스트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