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트로피직스에 대해 알면 기내식을 좀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shutterstock]
실제로 토마토 주스는 기내에서 주문하는 음료수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단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지상에서는 토마토 주스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왜 비행기를 타면 토마토 주스에 손길이 가는 것일까.
영국 옥스퍼드대 과학자인 찰스 스펜스는 ‘왜 맛있을까’(어크로스)에서 그 이유를 비행기 소음에서 찾는다. 비행기 엔진 소리는 승객이 지상에서처럼 맛을 느끼는 일을 방해한다. 그런데 감칠맛(우마미)만큼은 소음 속에서 되레 강하게 느껴진다. 놀랍게도 토마토에는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풍부하다.
접시와 색깔만 바꿔도 더 달게 느껴져
TV나 영화를 보면서 식사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된다. [shutterstock]
비행기 이야기를 꺼냈으니, 가스트로피직스의 성과를 좀 더 살펴보자. 왜 비행기 기내식은 맛이 없을까. 앞에서 언급한 소음만큼이나 문제되는 것이 높이 나는 비행기 객실의 낮은 기압이다. 낮은 기압도 단맛, 짠맛 등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기내식에 지상의 음식보다 설탕이나 소금을 더 많이 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자의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맛을 느끼는 데 후각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실제로 코가 막히면 음식 맛을 구별하기 어렵다. 비행기 내 낮은 기압은 맛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식의 냄새 분자 수도 줄인다. 덩달아 기내의 건조한 공기는 코도 마르게 해 냄새 분자의 탐지도 어렵게 만든다. 설상가상이다. 이러니 기내식이 어떻게 맛있을 수 있겠나.
냄새만큼이나 소리도 중요하다. 믿기 힘든 실험 결과부터 몇 개 보자. 스펜스는 감자 칩을 먹을 때 ‘바삭’ 소리를 크게 하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없을 때보다 15%가량 더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펜스는 이 연구로, 웃겨 보이지만 사실은 진지한 실험에 주는 이그노벨상 영양학 부문을 수상했다.
스펜스는 높은음이 많이 포함된 소리를 들려줄 때 사람이 단맛을 좀 더 강하게 느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반면 낮은음이 많이 포함된 소리는 쓴맛이 더욱더 강해졌다. 이런 연구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연결된다. 기내식에 몸에 안 좋은 설탕을 더 넣는 대신 높은음이 들어간 소리를 들려주면 어떨까. 설탕이 없어도 승객이 단맛을 좀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많은 레스토랑은 소리의 힘으로 손님을 통제한다. 예를 들어 음악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손님의 식사 속도를 통제할 수 있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손님의 음식 먹는 속도도 빨라진다. 멕시코 음식 타코를 파는 미국 1500개 치폴레 매장에서 점심과 저녁에 빠른 박자의 곡을 연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님이 끊임없이 움직여야죠!”
그렇다면 시각은 어떨까. 냄새나 소리만큼이나 색깔도 중요하다. 똑같은 딸기 디저트를 흰 접시와 검은 접시에 담아 맛보게 하면, 흰 접시의 디저트가 10%가량 더 달다는 평가를 받는다. 분홍색과 녹색은 어떨까. 사람들은 분홍색 음료가 녹색 음료보다 더 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녹색 음료에 설탕을 10%나 더 넣었는데도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다이어트 원하면 빨간색 접시를 써라
그렇다면 설탕을 10% 줄인 디저트를 흰 접시에 내놓으면 어떨까. 설탕을 10% 덜 넣은 대신 음료수 색깔만 분홍색으로 바꾸면? 단지 색깔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몸에 안 좋은 설탕을 10%나 덜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바로 이게 가스트로피직스를 연구하는 스펜스의 야심 가운데 하나다.가스트로피직스의 연구 결과를 염두에 두고, ‘과학적으로’ 잘 먹는 법을 몇 가지 따져보자. 덥다고 식사 전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일은 하지 말자. 얼음물은 맛을 감지하는 혀를 마비시키기 때문에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것을 막는다. 비싼 돈을 내고 맛있는 식당에서 외식할 때는 특히 삼가야 할 행동이다.
커피나 주스를 마시면서 빨대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맛을 느끼는 데 코로 냄새 분자를 흡입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빨대로 커피나 주스를 흡입하면 코로 들어가는 냄새 분자의 수가 적어지니까. 캔이나 병맥주를 가능하면 컵에 따라 마셔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혹시 살을 빼려는 목적으로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다면 그릇부터 작은 것으로 바꿔라. 그릇 크기가 2배로 커지면 자기도 모르게 식사량이 40%나 늘어난단다. 그릇의 색은 (가능하다면) 빨간색이 좋다. 스펜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똑같은 음식이라도 빨간 접시에 담겼을 때 적게 먹는 경향이 있다.
식사할 때 TV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켜놓는 습관도 버리자. 흥미로운 동영상 콘텐츠를 켜놓고 식사하면 음식을 15%나 더 먹는다. 스펜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TV나 모바일 기기 때문에 주의가 흩어지면 음식과 관련한 자극에 집중하지 못하고 실제로 배가 부르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더 많이 먹을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휴가 때 기내식을 좀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은 없을까. 소음 제거용 헤드폰을 쓰고 높은음이 적절히 담긴 달콤한 음악을 들으면 맛을 좀 더 느낄 수 있겠다. 참, 영화는 당연히 끄는 게 좋다. 영화에 몰입하면 안 그래도 맛없는 기내식의 존재감이 더욱더 없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