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11명이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와 만세를 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여야가 바뀌었다. 20대 국회 개원 당시 여당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다. 당연히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 운영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이다. 이제 그 자리를 내놔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5월 정권을 잡았지만, 의석수가 123석에 불과해 ‘여소야대’였다. 38석의 국민의당, 6석의 정의당에게 늘 매달려야 했다.
저조한 법안 처리 이유
그 결과 입법 성과도 저조했다. 19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율이 30.6%였던 데 반해, 20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율은 26.8%에 불과했다. 이제 반전 드라마를 쓸 기회가 온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2년 차에 접어드는 최적의 시점이다. 지난 1년간의 부진을 단박에 만회할 호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12석 가운데 11석을 차지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의석수 차이를 더 벌렸다. 130석 대 113석 구도다. 20대 국회 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의석수 차이는 123석 대 122석으로 1석에 불과했다. 원내 제1당에게 돌아가는 국회의장 자리를 힘겹게 차지하긴 했지만, 운영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장은 내줘야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원내 제1당으로서 국회의장 자리에 더해, 의석수가 확연히 많은 당당한 여당으로서 두 위원장 자리까지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20대 국회 개원 당시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별 의석수 비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8곳, 새누리당 8곳, 국민의당 2곳으로 나눴다. 비교적 단순했다. 이번에는 조금 복잡해졌다. 국민의당이 사라졌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 탄생했다. 민주평화당은 정의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원내교섭단체가 3개에서 4개로 1개 더 늘어난 것이다. 제3당인 바른미래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의 의석수 차이도 근소해, 30석 대 20석 구도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 8곳, 자유한국당 7곳, 바른미래당 2곳,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1곳이라는 새로운 배분 기준을 제시한 상태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위원장 자리 2곳을 요구 중이다. 물론 바른미래당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며, 자신들이 2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원내 제3당에 돌아가는 국회부의장 자리도 넘보고 있다. 국회부의장 자리 2곳을 모두 보수 야당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그럴듯한 논리까지 개발했다. 바른미래당이 다시금 발끈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바른미래당은 국회부의장 자리에 더해 위원장 2곳을 기필코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자세다. 만약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 위원장 2곳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범여권은 18곳 가운데 10곳을 차지하는 셈이다. 반면 1곳만 차지한다면 9곳, 그러니까 정확하게 절반을 갖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의석수를 더하면 딱 반인 150석이다. 여기에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민주평화당에서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 3석과 민중연합당 1석, 여권 성향의 무소속 3석까지 합치면 총 157석에 달한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이 국회부의장에 더해 위원장 2곳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 모두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국회부의장 자리는 협상카드 성격이 강해 보인다. 바른미래당에게 국회부의장 자리를 주되, 위원장 자리를 1곳 더 차지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야 내부적으로 민주평화당 1곳, 정의당 1곳으로 나눌 수 있다. 안 그러면 1곳을 놓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치열한 내부 다툼을 벌여야 한다. 자칫 어렵게 성사시킨 공동교섭단체가 깨질지도 모른다. 만약 깨지면 두 정당 모두 1곳도 차지하지 못하는 형국에 처할 수 있다. 그들로서는 심각한 사안인 것이다.
상임위 위 상임위, 법사위
자유한국당은 어떤 생각일까. 전반기에 확보했던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 가운데 운영위원회는 내주는 게 불가피하다고 볼 것이다. 여당이 차지해온 관례 때문이다. 그 대신 법제사법위원회는 반드시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다. 법제사법위원회는 모든 법안의 길목, 상임위 위의 상임위, 미국 의회의 상원급으로 통한다. 이곳만 차지해도 정부 여당을 견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적폐청산 수사로 소속 의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을 고려해도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는 절실할 것이다. 운영위원장 자리도 순순히 내줄 태세가 아니다. 청와대 견제 차원에서 운영위원장도 가져와야 한다는 논리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래도 줘야 한다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위원장 자리라도 내놓으라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20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보다 의석수가 더 많다는 점을 내세워 예결특위원장을 차지한 전례가 있다.이처럼 △여야의 공수 전환 △원내 4자 구도 형성 △원내 3당과 4당의 근소한 의석수 차이 △원내 4당의 내부 구조라는 네 가지 변수로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 원 구성 협상은 실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고차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결론이 내려질 것이라고 전제할 때 협상 이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상력에 기반을 둔 몇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운영위원장 자리를 자유한국당이 계속 차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재인 정부 1년 동안 봤던 제1야당 주도의 국회 운영위원회와 청와대 간 갈등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파견 의혹을 규명한다는 명분으로 운영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소집하고 회의를 강행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정 원내대표는 인사 검증 문제와 관련해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출석을 끈질기게 요구하기도 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청와대에 대한 공세는 지방선거 패배 이후 내홍과 맞물려 당분간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봐야 한다. 그 후는 어떨까. 차기 총선거가 다가오는 시점이라,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의 실정에 집중하면서 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당연히 자유한국당 출신 위원장은 그 전면에 나서려들 개연성이 높다.
둘째,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자유한국당이 계속 차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대 국회 전반기 2년 가운데 지난 1년과 같은 상황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법안 처리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법률소비자연맹 총본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 법안은 모두 877건에 불과하다. 2016년 5월 20대 국회가 개원한 후 올해 5월까지 처리한 법안은 모두 3564건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6년 대비 법안 처리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라 준비가 부족해 그랬던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장악한 상태에서 정부여당이 준비한 민생 법안과 개혁 법안 처리에 발목을 잡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 여당이 처리를 원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대표적 민생 법안과 개혁 법안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정부 여당은 공격적으로 법안 처리를 하려고 들 것이다. 하지만 공세의 날을 세울 것으로 보이는 제1야당 출신이 위원장을 꿰차고 있다면 또다시 무기력한 2년을 보내야 한다. 2년 뒤 맞을 차기 총선거에서는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도 정권심판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 제1야당 출신 법제사법위원장 탓을 한다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
19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율이 30.6%였던 데 반해, 20대 국회 전반기 법안 처리율은 26.8%에 불과했다. 5월 28일 열렸던 국회 본회의(위). 6월 26일 바른미래당 김관영 신임 원내대표(왼쪽)는 첫 공식 활동으로 취임 인사차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를 가장 먼저 예방했다. [동아DB]
넷째, 위의 세 위원장 자리 가운데 결국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야말로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제일 큰 곳은 예결특위원장이 아닐까 싶다. 주고받기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예결특위원장은 통상 지역 민원 예산을 비교적 원활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 불문하고 선호한다. 따라서 설령 야당 출신 위원장이 들어서더라도 통과 자체를 차단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본인 역시 챙겨야 할 지역 민원 사업이 적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산 편성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줄이려들 것으로 예상되는 예산을 해당 감축분까지 고려해 증액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뒤, 그 감축분을 위원장 처분에 맡기는 방식을 택한다면 위원장 리스크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으로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거래 방식이지만, 이런 편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이런 정도의 거래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국민의 일부이긴 하지만 해당 지역주민의 민원 사항이 대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