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나파 밸리 와인과 프랑스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하고 있는 심사위원들(위). ‘파리의 심판’을 기획한 사람들로 가운데가 스티븐 스퍼리어다.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이 와중에도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Napa Valley)의 몇몇 와이너리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샤르도네(Chardonnay) 같은 고급 품종을 심고 최신 양조시설도 도입하는 등 투자를 감행했다. 그 결과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음회에서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시음회 기획자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였다. 당시 35세였던 스퍼리어는 파리에서 와인숍과 와인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와인계의 유력 인사 아홉 명을 초청해 나파 밸리 와인과 프랑스 유명 와인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나파 밸리의 승리였다.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샤르도네가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을 제치고 화이트 와인 1위를,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의 카베르네 소비뇽이 보르도(Bordeaux) 와인을 이기고 레드 와인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시음회 결과는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각종 매체에 대서특필됐다. 당황한 프랑스 와인계는 “프랑스 와인은 긴 숙성을 거쳐야만 진가를 발휘한다”며 10년 뒤 한 번 더 대결할 것을 제안했다. 1986년 같은 레드 와인으로 다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열렸다. 프랑스요리협회와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주최로 두 번 진행됐는데 우승은 모두 나파 밸리 와인에게 돌아갔다.
샤토 몬텔레나의 나파 밸리 샤르도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S. L. V. 카베르네 소비뇽, 하이츠 와인 셀라의 마르따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왼쪽부터). [사진 제공 · 나라셀라㈜]
‘파리의 심판’에서 주역이 된 와인들은 어떤 맛일까. 1976년 화이트 와인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의 나파 밸리 샤르도네는 보디감이 묵직하며 잘 익은 복숭아와 배향이 매력적이다. 1976년 레드 와인 1위였던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S. L. V. 카베르네 소비뇽은 검붉은 야생 베리와 다크초콜릿향이 농밀하고 구조감이 탄탄하다. 1986년 와인 스펙테이터 주최 시음회에서 1위를 한 하이츠 와인 셀라(Hetiz Wine Cellars)의 마르따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카베르네 소비뇽은 농익은 베리와 민트향의 조화가 아름답고, 달콤한 체리향이 긴 여운을 장식한다. 몬텔레나 샤르도네는 18만 원, 스택스 립 카베르네 소비뇽과 하이츠 카베르네 소비뇽은 각각 46만 원이며 전국 백화점과 와인타임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