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 [박해윤 기자]
노후 대비의 필요성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이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기대수명과 행복수명의 격차를 줄이려면 재정적 안정이 담보돼야 하지만, 은퇴 후 생활자금을 어떻게 충당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박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100세 쇼크’에서 자유로우려면 자식이나 국가, 제도에 기댈 생각 말고 지금 당장 금융상품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1994년 대우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증권업에 첫발을 디딘 박 소장은 현대투자신탁·우리투자증권(옛 LG증권) 리서치센터 기업분석팀장을 지내며 유통과 해외주식 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애널리스트로 활동할 당시 ‘베스트 애널리스트상’을 37번이나 받았다. 2015년부터 NH투자증권 글로벌주식부장을 맡아오다 지난해 말 100세시대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장수시대 경제 트렌드 연구와 노후 설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장기투자 노하우와 유망 투자처에 대해 물어봤다.
노후를 국가나 제도에 기대지 말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경제와 의학의 발달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국가가 정책적으로 국민 노후에 대응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많지 않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은 이미 70~100년 전부터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젊어서 연금만 꾸준히 들어도 어느 정도 노후가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날 보좌관들에게 ‘법 제정과 관련해 실질적 업무는 당신들이 맡고 있으니, 제발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고령화 대응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이렇게 빨라진 건 저출산 때문이다. 정부가 십수 년 동안 몇백 조를 들여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하지만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람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노후에 대한 불안감만 없어도 저출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일자리가 충분하면 경제 관련 문제는 절반 이상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나이까지 일할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나. 이상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을 한국으로 가져오라는 주장을 하고 싶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물어서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라는 얘기다. 50년이든 100년이든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식이다. 그럼 정부는 고용 창출과 소득세를 얻게 되고, 근로자 수천 명은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말로만 고용 창출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부터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올 상반기 최고 인기펀드는 단연 ‘코스닥 벤처펀드’였다. 출시 한 달여 만에 2조 원 넘는 자금을 끌어모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돈만 쌓일 뿐, 이 자금을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장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보니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는 투자기관이 공모금액을 과도하게 산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0원만 모아도 충분한 기업에 200원을 모아주는 꼴이다. 물론 상장 후 해당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투자자의 손해가 곱절이 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노후 준비는 필수
정부가 경제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인가.“일본의 경우 1994년부터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그 전부터 몇 가지 신호가 있었다. 90년대 이전에 주식시장은 조정기에 들어갔고 90년대 초부터 저성장 국면이 시작됐다. 소비 형태 변화, 즉 소비량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현재 우리나라가 당시 일본과 매우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지난해 소비량 감소 등 인구통계학적 수치들이 일본과 매우 비슷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지표들이 더욱 취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노년층의 금융자산 축적도를 비교해보면 당시 일본에 비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노후 준비가 잘돼 있다’고 생각하는 가구는 8.8%에 불과하다.
한 가지 더 얘기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산업적 위상 또한 일본과 매우 비슷하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세계를 리드하는 유수의 기업들이 있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한국 기업들에게 추월당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딱 그 처지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게 덜미가 잡혀 있다. 반도체, 바이오, 정보기술(IT)을 뺀 나머지 조선, 기계, 철강, 화학 등은 이미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산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먹고살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잃어버린 30년’은 일본에만 국한된 얘기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저성장 국면에서 개개인은 과연 어떻게 노후 준비를 해야 하나.
“공격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후 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먼저 은퇴자금으로 얼마가 필요한지를 계산해보라. 60세에 은퇴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 생활비로 240만 원이 필요하다고 치면, 필요한 자금은 총 7억 원가량 된다. 여기에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충당 가능한 금액을 뺐을 때 나오는 필요자금 규모가 자신의 자산 규모와 비슷하다면 매우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필요자금에 비해 현금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금액은 적극적인 투자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퇴직연금을 들 수 있다. 최근 정부가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을 적용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시장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퇴직연금 운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정부는 연 1%대에 불과한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개선하고자 ‘디폴트 옵션’ 제도를 추진 중이다. 디폴트 옵션은 고객이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산운용사가 미리 합의한 조건(디폴트 옵션)에 따라 자동으로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소비재 기업에 주목하라!
[박해윤 기자]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자금의 9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되고 있어 수익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은 근로자의 퇴직연금 성과에 무신경하고, 금융회사는 ‘원금은 까먹지 말자’는 논리로 원리금보장형 상품 가입을 유도하거나 생애주기별 자산 배분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디폴트 옵션을 적용하면 운용사가 적극적·공격적인 투자로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등 퇴직연금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다. 반면 투자금 손실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단점이 있다.
운용사의 ‘보신주의’가 문제이긴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 디폴트 옵션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 사안인 만큼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동의를 얻고 국회의 입법 절차도 거쳐야 한다. 그에 앞서 직장인 스스로 퇴직연금 운용의 중요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교육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운용 방법 등을 숙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합리적인 동의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모든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돈은 증권사 영업직원이 벌어주는 게 아니다. 본인이 벌어야 한다. 금융지식이 부족하다 싶으면 경제 관련 기사나 책을 열심히 읽고, 투자 관련 강의도 제 발로 찾아가 듣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퇴직연금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
“초저금리 시대에 이자 수익은 더는 의미가 없다. 1% 금리로 투자 금액을 2배로 만들려면 69년이 걸리지만, 펀드 등을 통한 4% 수익률이면 17년으로 확 줄어든다. 적어도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자산을 증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상품으로 연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라는 것이다. 이미 성장한 시장이 아닌 이머징 마켓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90점짜리 시장이 아니라 50점짜리 시장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장기투자’가 투자의 기본인 건 맞지만, 무조건 오래 갖고 있다고 수익률이 좋은 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데, 당시 일본 니케이지수는 3만9000이었다. 그러다 점점 추락해 아베 신조 정권 직전에 8000 아래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지금은 2만 수준까지 회복되긴 했지만 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아직도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30년 쥐고 있던 주식이 반 토막 난 셈이다. 따라서 개인투자자 스스로 해외로 눈을 돌려 진정한 의미의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이머징 마켓 중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과거 우리의 성장 경험을 적용할 수 있는 곳이 투자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20년 뒤처진 중국시장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분명 위험한 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많이 안정됐고, 최근 몇 년간 눈부신 성장도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 달러가량인데, 길게 봤을 때 2만 달러까지는 무난하게 갈 것 같다. 중국인의 소비 패턴이 우리와 매우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재 기업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화장품, 음식료, 엔터테인먼트 관련주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전기자동차, 산업용 로봇, 반도체 관련주도 기대할 만하다. 그 대신 장기투자가 기본이다. 이러한 주식들은 30~40년 뒤 자녀에게 증여해도 될 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다. 199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1등 하는 종목은 전 세계에서 1등이었다. 앞으로는 중국시장이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다.”
TDF·리츠상품 수익률 쏠쏠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서 운영 중인 ‘행복한 100세시대 아카데미’ 강연 현장. [사진 제공 · NH투자증권]
“국내 대형 증권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8개국 주식을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 종목은 장기투자를 한다고 봤을 때 업종별로 현재 1, 2등 하는 주식이 대부분 투자 가치가 있다. 직접투자가 어렵다면 해외투자 포트폴리오를 잘 짜놓은 펀드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연금펀드는 해외 포트폴리오 비중이 높아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식형펀드가 침체기였지만, 그 와중에도 개인연금펀드와 퇴직연금펀드에는 해마다 평균 1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연금이란 글자가 들어간 펀드는 향후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왕이면 해외 유명 TDF(Target Date Fund·자산배분형펀드) 운용사와 제휴 맺은 곳의 펀드를 선택하길 추천한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에 따라 자산을 주식과 채권 등에 자동배분하는 펀드로,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의 약 3분의 2가 TDF에 가입돼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증가 추세다. 현재 KB자산운용이 미국 1위 TDF 운용사 뱅가드와 제휴를 맺고 있고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3위 업체인 티로우프라이스, 삼성자산운용이 4위 업체인 캐피탈사와 제휴해 TDF를 판매 중이다. 일반 소비자는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해당 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최근 들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해외에서 노후 준비를 위한 금융상품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이 바로 리츠다. 미국의 자산별 평균 수익률을 보더라도 리츠가 가장 높다. 100세시대연구소로 오기 전 3년 동안 글로벌주식부를 맡은 적이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은 리츠상품이 정식 상장돼 주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1년 제도 도입 이후 19곳이 상장됐지만 4곳을 제외하고 모두 상장 폐지됐다. 리츠상품 공모가 활발히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규제는 크나 혜택은 적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경우 운용사가 일정 수익만 취하고 나머지를 투자자에게 배당금으로 돌려주면 세금을 면제해준다. 따라서 캐나다 리츠는 월 배당이 가능하다. 종목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1억 원가량을 투자하면 배당소득세를 떼고도 한 달에 40만~50만 원을 배당받게 된다. 이게 바로 연금이다. 은퇴 후 월급처럼 주기적으로 소득이 생기는 게 연금 아닌가. 우리나라도 연금 수단으로 리츠상품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사실 연금저축이나 펀드는 가입보다 유지가 더 힘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소비를 줄여 연금 납부액을 늘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납부해야 한다. 특히 연금보험은 조기 해지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개인연금도 절대로 중간에 깨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개인연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장기투자밖에 답이 없다. 연금의 기적과도 같은 효과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30~40년 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단적으로 40세부터 개인연금에 가입해 20년간 매월 20만 원씩 납부하면 60세부터 30년 동안 매달 27만 원(수익률 3% 기준)을 수령할 수 있다. 행복한 노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박진 소장이 추천하는 중국 주식 종목
• BYD(002594.SZ), PER 26.9X• 녕파삼삼(600884.SH), PER 45.6X
• 이리산업(600887.SH), PER 18.2X
• Midea그룹(000333.SZ), PER 18.2X
• 중국국여(601888.SH), PER 31.2X
PER는 2018년 예상 실적 기준, 주가는 2018.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