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리는 흰 우유를 형상화한 ‘밀크홀 1937’ 종로점 3층의 기둥과 의자. 밀크홀에서 판매하는 병음료들.
인공지능(AI)은 저런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매일유업 계열의 커피 전문점 ‘폴 바셋’으로 안내할 수도 있고, 남양유업의 ‘백미당 1964’(백미당)를 소개할 수도 있다. 뽀얀 빛깔의 우유 아이스크림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업체들이니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데 앞으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최근 이 ‘맛있는 우유 아이스크림 파는 곳’에 한 군데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6월 서울 종로2가에 모습을 드러낸 서울우유협동조합의 로드숍 ‘밀크홀 1937’(밀크홀) 이야기다.
우유업계의 디저트 카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2009년 ‘폴 바셋’에 이어 2014년 ‘백미당’, 2016년 롯데푸드 ‘파스퇴르 밀크바’, 2017년 빙그레 ‘소프트랩’이 속속 문을 열었다. 여기에 서울우유가 지난해 롯데마트에 숍인숍 형태의 ‘밀크홀’ 서초점을 내면서 업체 대다수가 자사 카페 브랜드로 경쟁하는 그림이 나오게 된 것. 신선하고 진한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주력 메뉴인 것도 닮았다.
우유 디저트 춘추전국시대
밀크홀에서는 우유를 주 원료료 한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한다. 서울우유 나100% 광고 모델로 활동중인 배우 손호준. 서울우유에서 운영하는 ‘밀크홀 1937’ 종로점(왼쪽위부터시계방향).
하지만 저출산 여파로 우유와 분유,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왕성하게 소비하는 저연령층 인구가 줄어든 것도 우유 및 유제품 소비량 감소에 한몫했다. 각 업계가 우유를 활용한 제품의 다변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 2017년 사사분기 제조사 및 브랜드별 경쟁 현황에 따르면 서울우유는 전체 제조사 가운데 점유율 37.3%로 1위였다. 2위는 남양유업(13.9%), 3위는 매일유업(13%). 브랜드 중에서는 서울우유의 나100%(옛 서울우유)가 24.5%로 1위, 남양유업의 맛있는우유GT가 9.8%로 2위,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가 9.1%로 3위였다. 1위가 익숙한 서울우유는 과연 디저트 시장에서도 1위가 될 수 있을까.
서울우유가 종로에 디저트 카페를 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올봄이다. 주변에서 “우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만 특정 기업 ‘불매’운동을 하고 있어 ◯◯◯에서는 사 먹기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에, 서울우유 디저트 카페가 문을 열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서울 서초와 분당에 숍인숍 ‘밀크홀’ 매장이 있지만, 로드숍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 제품에 자신 있다면 후발 주자인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서울우유의 디저트 승부수
6월21일 열린 행사에서 한 팬이 손호준의 사진을 찍고 있다(왼쪽), 서울우유 나100%의 모델인 배우 손호준.
‘밀크홀’ 앞에 도착하자 ‘제조일자 2018. 6. 15.’라고 쓰인 큼직한 우유갑 모양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오픈일인 6월 15일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손호준은 이날 매장에서 사전에 제품을 사 행사 참여 기회를 얻은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정성스럽게 서명한 ‘밀크홀’ 에코백에 제품과 굿즈를 담아 나눠주고 사진도 찍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해장을 어떻게 하느냐”는 한 팬의 질문에 “신선한 우유를 마신다”고 답해 ‘프로 광고모델’의 면모를 보여줬다.
6월 25일 오후 ‘밀크홀’ 종로점을 다시 찾았다. 5층짜리 건물 전체를 카페로 쓰는 이곳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매장 콘셉트는 1949년 9월 서울우유 정동 사옥 1층에 오픈했던 ‘정동 밀크홀’에서 가져왔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품이 곳곳에 숨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 보충이 필요한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층마다 손님으로 가득했다. 취재하는 동안에도 아이스크림과 밀크티를 테이크아웃해 먹으려는 손님들로 계산대가 붐볐다. 자고로 ‘프로 관람러’라면 꼭대기에서부터 한 층씩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것이 인지상정. 일단 5층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5층은 며칠 전 배우 손호준과 팬들이 만남을 가졌던 공간이다. 20~30명가량 수용할 수 있어 기업 행사나 강연, 작은 음악공연 등을 열기에 좋을 듯했다. 4층에는 우유갑을 형상화한 것 같은 디자인의 프라이빗한 좌석이 있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칸막이 덕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어 편해 보였다. 안쪽에는 세미나나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분리돼 있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5층에는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회의나 세미나, 교육, 강연 등 실내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면 노트북컴퓨터만 챙겨 오면 된다. 누구나 예약하면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다양한 클래스나 행사를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료를 주문하면 별도의 대관료 없이도 공간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사전에 매장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3층에서 눈에 띈 건 흰색 대리석 의자였다. 매장 관계자는 “우유가 떨어지는 걸 형상화해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우유방울의 느낌이 ‘밀크홀’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과연 잘 어울렸다. 기둥부터 의자까지 온통 하얀색이라 ‘셀카’가 잘 나올 것 같았다. 베이글이나 치즈를 담아주는 접시도 우유방울이 우유 표면에 떨어지면서 생기는 왕관 모양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이곳의 벽과 천장에는 서울우유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내용과 신문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우유에서 모티프 딴 디자인
밀크홀 종로점 5층은 세미나나 강연을 열기에 적당한 공간이다.
우유갑 형태로 디자인한 좌석이 인상적인 4층(왼쪽), 밀크홀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MD 상품.
매일 만드는 요구르트와 치즈
밀크홀 종로점 2층 벽면은 명화로 장식돼 있다.
1층 매장에는 약 19㎡ 크기의 오픈 키친이 있었다. 매장에서 매일 만드는 플레인 요거트(요구르트)는 3000원, 그래놀라 요거트와 초코링 요거트는 각각 3500원이다. 리코타치즈와 함께 나오는 베이글은 4500원. 지난번에 왔을 때 마신 ‘1937 화이트 플렛 크림폼 라테’(5200원)를 한 번 더 시켰다. 미숫가루처럼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커피 맛과 어우러지면서 뒷맛이 텁텁하지 않아 집에 가서도 은근히 생각났기 때문이다.
매장 1층 오픈 키친에서 매일 만드는 리코타치즈.
사진으로 남길 거라면 핑크색 ‘밀크 모나카 아이스크림’(3500원)도 나쁘지 않은 선택. 다만 너무 많은 메뉴를 먹은 상태라 이 제품은 시식 대신 사진만 찍었다. 이곳에서 파는 보틀 텀블러와 스텐 텀블러의 가격은 7000원에서 1만6000원 선. 우유병 모양의 도자기 머그도 인기였다. 가격은 9000원. 집에 머그가 워낙 많아 이 예쁜 머그는 연필꽂이로 쓰기로 했다. 포크와 나이프, 접시와 머그잔이 세트인 시그니처 세트는 2만9000원 이었다.
커피 안 마셔도 OK !
매장에서 판매하는 베이글과 리코타치즈, 요구르트. 인기 메뉴인 코코넛 라테와 크림폼 라테. 블랙 그레인 아이스크림과 밀크 소프트 아이스크림. 밀크 모나카 아이스크림(왼쪽부터).
아쉬움 아닌 아쉬움도 있었다. 그날 만들어 그날 소비하는 신선함을 추구하다 보니 병 음료의 유통기한이 하루였던 것. 자타공인 ‘밀크티 홀릭’인 친구에게 ‘오리지널의 참맛’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유통기한이 짧은 점이 아쉬웠다. 다음에 종로에서 만나면 그 맛을 보여줄 생각이다.
오픈한 지 열흘도 안 됐지만 ‘밀크홀’은 벌써부터 주변 학원가의 유동인구와 중국인 관광객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만국 공통 먹거리인 만큼 우유를 활용한 디저트의 경쟁력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아, 건의사항도 있다. 5층에서 ‘밀크홀’의 튼튼한 유리병을 활용할 수 있는 꽃꽂이 클래스 같은 걸 열면 어떨까. 병이 예뻐 버리기는 아까우니 말이다. “일부러 병에 담긴 제품을 사가는 사람이 많다”는 매장 관계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결국 이날 마신 음료 병을 집까지 고이 들고 와 씻은 뒤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꽂아 화병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자의 한계는 이 정도지만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유리병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테다. 음료 맛도 나쁘지 않으니 일단 가서 한 병 ‘드링킹’하고 빈 병으로 뭘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