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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은 한국의 유기 농업 운동을 시작한 선각자이자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의 상징과도 같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창시자다. 한살림 초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 질 낮은 달걀을 생산하는 농민에 대해 도시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했고, 그 농민을 내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 것이었다. 그때 무위당은 이렇게 말했다.
“덮어놓고 자꾸 차원을 높이는 것은 안 됩니다. (중략) 유기 농업을 하는 농민뿐 아니라 농약을 쓰고 화학비료를 쓰고 그러는 농민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평생 생명을 살리는 유기 농업의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해온 무위당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유기농 그 자체가 아니었을 터다.
‘유기농’ 먹을거리도 위험하다
바야흐로 유기농 전성시대다. 한국 정부는 최소 3년간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농사를 지은 땅에서 재배한 먹을거리에 ‘유기농’ 인증을 주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만 적정량의 3분의 1 이하 수준으로 사용한 먹을거리에는 유기농 대신 ‘무농약’ 인증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기농 인증을 받은 먹을거리는 안전할까.아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자. 흔히 먹을거리에는 세 가지 위험이 존재한다. 화학적 위험, 물리적 위험, 생물학적 위험. 알다시피, 농약은 화학물질이다. 농약 없이 재배한 유기농 먹을거리는 화학물질이 초래하는 화학적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물리적 위험이나 생물학적 위험까지 제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기 농업으로 재배한 채소를 담은 배달 상자에 죽어서 반쯤 썩은 쥐가 들어 있다면 어떨까. 또 유기농 채소 샐러드를 사서 먹었는데 그 사이에 죽은 파리나 바퀴벌레가 가득 들어 있다면? 아무리 유기농 채소라도 그것을 그대로 먹는 소비자는 없을 터다. 이런 위험이 바로 물리적 위험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위험은 어떨까. 흔히 유기농 먹을거리를 ‘생명의 먹을거리’라고 부른다. 몸에 좋은 세균도 생명이지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세균이나 인체에 해를 가하는 기생충도 생명이다. 즉 유기농 먹을거리는 생명의 먹을거리이기 때문에 좋은 세균은 물론, 나쁜 세균이나 기생충까지도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가끔 유기농 먹을거리는 안전하니 대충 씻거나 그냥 먹어도 된다고 믿고 또 그렇게 권하는 사람을 본다. 위험하다. 유기농 먹을거리는 농약을 뿌려서 키운 관행 농업 먹을거리보다 훨씬 더 깨끗이 씻어 먹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 묻어 있을지도 모를 나쁜 세균이나 기생충을 제거할 수 있다.
햄버거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이 나올 가능성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대장균에 오염된 햄버거 패티를 먹고 사망한 사람까지 나왔다. 이후 장출혈성 대장균이 일으키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은 ‘햄버거 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2011년 독일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장출혈성 대장균에 3000명 이상이 감염됐고 최소 30명가량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원인도 잘 익지 않은, 장출혈성 대장균에 오염된 햄버거 패티였을까. 진짜 원인은 충격적이었다. 한 업체에서 공급한 유기농 채소가 오염되면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출혈성 대장균도 생명이라 유기농 채소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 아니다. 유기농 먹을거리는 중금속 같은 화학적 오염으로부터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철수네 밭에서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 화학비료도 없이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영희네 밭에서는 농약을 뿌리고 화학비료도 사용한다. 만약 두 밭이 붙어 있고, 같은 지하수를 끌어다 농사를 짓는다면 어떨까.
땅에다 장벽을 치지 않는 이상 철수네 밭에서 재배한 먹을거리에도 영희네 밭에서 뿌린 농약이나 화학비료에서 흘러나온 성분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마을 전체의 농업 방식이 유기농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무위당의 혜안이 있었다. 무위당이 유기 농업의 가치를 지키고자 평생 노력한 까닭은 그것이 ‘건강기능식품’처럼 몸에 좋아서가 아니다. 또 도시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른 먹을거리보다 특별히 안전하고 깨끗해서도 아니다. 만약 무위당이 그런 관점을 가졌다면 질 낮은 달걀을 공급한 농민을 두 번도 생각지 않고 내쳤을 것이다.
차라리 ‘유기농’을 대량 수입하자고?
한국 유기 농업 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무위당 장일순의 1988년 모습. [동아DB]
무위당은 도시 소비자가 좀 더 많은 유기농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도시 소비자에게 유기농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만주나 중앙아시아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놓고 유기농 먹을거리를 대량 생산해 수입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무위당은 농민과 도시 소비자가 소통하면서 함께 유기농의 가치를 깨닫고 세상을 바꿔가길 바랐다.
이런 무위당의 정신이 어느 순간부터 왜곡됐다. 생태운동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유기농 먹을거리를 놓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홍보한다. 그 과정에서 유기농 먹을거리는 무결점의 건강기능식품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외국산 밀로 만든 쿠키가 유기농 쿠키로 둔갑하는 일까지 생겼다. 지하의 무위당이 이 꼴을 보면 가슴을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