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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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국민의 권리다

  • 입력2004-09-15 1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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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평 남짓한 진료실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은 참으로 좁다. 그 좁은 창을 통해 나는 날마다 부르디외가 말한 ‘세계의 비참’을 본다.

    얼마 전 이러저러한 병이 많아 병원에 꼭 오셔야 하는 할머니 한 분이 아주 오래간만에 병원을 찾았다. 나는 의사의 권위를 내세워 할머니에게 이른바 꾸중이란 것을 했다. “약 안 드시면 큰일납니다” “병원에 꼭 오셔야 오래 사시지요” 등등.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은 오히려 할 말을 잃게 한다. 병원비와 약값을 합쳐 2700원이 드는데, 그 돈을 모으려면 일주일 동안 폐지를 모아야 한단다.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파 도저히 폐지를 주우러 다닐 수가 없었노라고. 즉 돈이 없어 병원에 올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할머니는 연방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정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진료실 바깥은 서울의 가난한 동네 축에 속하지만 빈곤층만 모여 사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요즘 적어도 우리 동네만큼은 주부들의 사회활동이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 세상이다. 주부들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은 빌딩 청소다.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배운 질병 중에 ‘하녀무릎병’이 있다. 교수님은 19세기 질병인데 지금은 사라진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앉아 계단과 복도를 하루 12시간씩 닦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는 하녀무릎병이 매우 흔한 병이다. 나는 거의 날마다 ‘하녀무릎병’을 본다.

    돈 없는 사람 병원 못 가는 ‘의료 산업’ 결단코 반대

    요즘 의료계의 화두는 ‘의료의 산업화’다. 참여정부는 의료가 산업이며, 의료서비스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의료를 개방하고 기업화해야 한다고 한다. 9월10일 재정경제부는 인천 등지의 경제자유구역에서는 병원을 영리법인화하겠다는, 말하자면 주식회사로 만들겠다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예 전국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추진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하고 있다. 기업도시, 지역특구 내에서도 병원 영리법인화 허용이 추진되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날마다 발표되는 정책은 ‘의료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2006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의 화두가 서비스 분야 개방이고 산업화다. ‘사회적 서비스’, 즉 ‘교육과 의료는 산업이 될 수 없으며 국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세상물정 모르는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돼버린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교사가 되면서, 또 의사가 되면서 슈바이처와 페스탈로치를 꿈꾸었다. 나 또한 ‘빈부와 성별과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서야 의과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이 기업이 되고 주식회사가 되면 이 선서가 지켜질 수 있을까? 기업의 목표는 결국 최대한의 이윤이다. 민간병원이 90%가 넘는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의료가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지정해놓는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번 돈은 의료기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규정해놓은 것이 현재의 의료법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이제, 이 최소한의 방어벽까지도 무너뜨리려 한다.

    조선시대의 의사는 ‘귀족의 시의(侍醫)’였다. 서민을 위한 유일한 국가의료기관인 혜민서에서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허준은 드라마에서만 존재했으며, 드라마에서조차 미담으로만 존재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서민을 위한 의료는 오직 통치자들의 구호정책이었다. 현재 한국의 의료도 여전히 서민들에게는 장벽이 높다. 그러나 병원이 기업이 되면, 그래서 의료가 산업이 되고 영리법인과 민간의료보험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면 ‘돈 없는’ 사람들은 아예 병원에 갈 수조차 없게 된다. 믿지 못하겠다면 남미의 경우를 보라.

    이렇게 되면 의사는 또다시 국민의 의사가 아니라 현대의 귀족, 즉 부유층만을 위한 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한 사람의 의사로서 참여정부의 ‘의료가 산업’이라는 정책에 결단코 반대한다. 나는 귀족의 시의가 되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다. 오늘 나는 진료실에 앉아 ‘의료는 국민의 권리이고 국가는 보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헌법 제36조에 규정된 ‘국가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의료는 국민의 권리다
    우 석 균

    의사·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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