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기술인 RFID(무선주파수 인식 전차칩)에 쓰이게 될 나노블록.
웰빙(well-being·참살이)이 강조되는 요즘 가전·의류·화장품 할 것 없이 새로 출시되는 제품에 빠지지 않고 덧붙여지는 ‘웰빙 단어’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나노’다.
‘나노’ 입자가 사용돼 뛰어난 항균효과를 발휘한다는 냉장고와 세탁기, 나노입자로 코팅돼 유해한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어린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젖병, 나노입자에 생리활성 물질이 담겨 있어 주름개선 효과가 뛰어나다는 기능성 화장품까지 실로 나노제품의 봇물이 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노’라는 용어는 난쟁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나노스’에서 유래했다. 1nm(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이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원자 서너 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크기다. 따라서 나노기술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가공하거나 조립해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나방 더듬이에 무수히 나 있는 깃털 모양의 촉각수용기.
예를 들어 사람의 혈관 내부에 들어가 진단하는 나노로봇을 만들 경우, 기존 로봇의 운동방식이 아니라 아메바와 같은 생물의 운동방식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 나노 단위의 크기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중력이나 관성 같은 물체의 체적에 비례하는 힘보다 정전기력이나 표면장력과 같이 물체의 표면적에 비례하는 힘에 의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기능을 가진 물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노기술이다.
나노 반도체의 크기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교수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59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열린 미국 물리학회 강연에서 “원자를 제어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 모두를 하나의 핀에 써넣을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말로 다가올 나노세계를 예견한 바 있다. 참석자 대부분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원자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조립하면 어떤 물체나 장치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의 예견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나노기술은 물리, 화학, 전자공학, 생명공학, 컴퓨터공학, 의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응용 범위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먼저 우리가 일상에서 나노기술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노 화장품 속을 파헤쳐보자.
‘나노 2004코리아’에 설치된 삼성전자 전시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최초로 90나노 공정을 적용한 512Mb DDR D램의 양산에 들어갔다.
나노기술은 기존 반도체 집적도 방식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현재 가장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는 D램이다. D램은 100여nm까지 회로의 선폭을 좁혀 최고의 집적도를 자랑하는 반도체 칩이지만,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이기 때문에 항상 하드디스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고성능 휴대기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가 필요하다. M램(Magnetic RAM)이 대표적이다.
과학의 역사 바꿀 만한 혁명적 기술
M램은 이름 그대로 자기적 성질을 이용하는 메모리로, 수nm의 나노 박막이 갖는 자기저항(GMR) 현상을 이용한다. 자기저항 현상이란 철이나 니켈과 같이 자성이 강한 재료가 구리나 은과 같이 자성을 띠지 않거나 약한 재료와 만나 수nm 두께의 다층 복합구조를 이룰 때 외부에서 자장을 가하면 전기저항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효과를 이용하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빠르고 선택적으로 감지해서 읽을 수 있다.
GMR 현상을 이용한 M램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D램보다 처리속도가 빠르고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초고집적도를 실현할 수 있는 메모리로, 우리나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메모리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나노기술은 생명공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도 빛을 발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물을 좋아하는 친수성(親水性)과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疎水性)을 모두 갖는 양친매성 구조를 지닌 나노미터 크기의 지질분자들이 스스로 형성한 세포막으로 보호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체 세포막의 지질이 발휘하는 능력을 모방해 효과적인 나노 구조물을 제조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또한 특정 암세포만 공격하는 약물 전달시스템도 개발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세포 사이의 간격은 100nm인 데 반해, 암세포 주변의 혈관세포는 이보다 더 넓다. 결국 항암제 전달시스템의 나노 입자 크기를 100nm보다 크게 하면 일반 세포 사이에는 흡수되지 못하고 암세포 조직으로만 흡수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0년 뒤쯤 나노기술을 통해 생체와 가장 가까운 구조로 합성된 인공피부나 인공뼈와 같은 인공장기가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전·화장품 등 거의 모든 생활제품에서 나노 기술이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