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지’ 신옥자씨.
총 45개 점포 중 ‘잘나가는’ 4개 점포 사장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 ‘10억 벌기’가 아닌, ‘제 힘으로 살아가기’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청소대행업체 ‘깔끄미’, 우리밀 제과점 ‘밀밭풍경’, 천연염색업체 ‘반짇고리’, 그리고 꽃바구니 배달업체 ‘꽃다지’. 이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 같은 건 안 키워요”라며 ‘깔끄미’ 사장 김경희씨(47)는 웃었다. 그는 혼자 딸을 키우는 여성 가장이다. ‘깔끄미’의 다른 두 사장도 이혼했거나 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밀밭풍경’ 조명순씨(43), ‘반짇고리’ 김순자씨(44)도 생활고로 남편과 이혼한 여성 가장들.
대출금으로 창업 밑천 … ‘돈벌이’보다 ‘홀로서기’에 목표
‘꽃다지’ 신옥자씨(36)도 3년 전 세상에 맞서 홀로 서야 했다. 생활을 위해선 당장 돈을 벌어야 했지만, 가정주부였던 이들은 별다른 지식도 기술도 없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식당일이 고작이더라고요.” 신씨는 방 한 칸의 보증금을 마련할 때까지 식당에서 먹고 자며 일해야 했다. 몸이 약한 조씨는 한 달 식당일을 하면 두 달 드러눕기 일쑤였다. 때문에 돈은 잘 모이지 않았다.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일,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컸다.
자활후견기관은 ‘전문분야 개척’에 대한 여성 가장들의 욕구를 잘 이해해줬다. 3명의 ‘깔끄미’ 여성 사장들은 서울 구로자활후견기관에서 2년 동안 바닥 광택, 왁스 작업, 카펫 청소 등등 다양한 분야의 청소일을 익혔다. 지난해 8월 ‘깔끄미’를 창업한 이후 꼼꼼한 청소 실력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11월 처음 바닥청소를 맡게 된 서울 방배동 고급 중식당 ‘함지박’은 이제 ‘깔끄미’의 주요 고객이다. 함지박 관리인 임병혁씨는 “‘깔끄미’는 이름 그대로 정말 깔끔하다”며 “엄청 바지런한 아줌마들”이라고 추켜세운다.
‘밀밭풍경’ 조명순씨.
사회연대은행, 기술교육 알선·판로 개척 등 물심양면 지원
김순자, 박만자씨는 대구 남구 자활후견기관에서 봉제기술을 익히며 자활을 꿈꿨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봉제품이 넘쳐나고 있어 승산이 없었다. ‘외국이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만의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천연염색을 알게 됐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천연염색에 절반쯤 미치게 됐어요. 나는 염색을, 만자씨는 개량한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양파, 포도, 딸기, 감, 석류, 쑥, 오미자…. 농장과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천연염료가 되는 과일껍질을 구해다가 실험하고 또 했죠. 이제는 채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베테랑이랍니다.”
신옥자씨는 처녀 시절 배운 적 있는 꽃꽂이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백화점 문화센터 꽃꽂이 강좌에 어시스트로도 일했다. 방송국 스튜디오, CF 촬영현장 등에도 불려나가 일했다.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의 세트 꽃장식도 그의 작품이다. 신씨는 내년 1월 처음 실시되는 국가화훼장식기능사 시험에 응시할 계획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여성 가장들의 사업성 있는 창업아이템, 그리고 굳건한 자활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1인당 1000만원씩 지원받은 대출금은 꿈을 실천하는 발판이 됐다. 점포 보증금을 내고, 청소장비를 사고, 전기오븐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술도 더 배워야 했고, 판로도 뚫어야 했다. 가게 홍보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사회연대은행은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밀밭풍경’과 ‘김영모과자점’의 결연을 주선해 기술교육 지도를 무료로 받게 해줬고, 정읍 한살림생활협동조합에 빵을 납품할 수 있게 소개해줬다. ‘반짇고리’가 서울 신세계백화점과 인천공항 공예품 코너에 천연염색 소품들을 납품하게 했고, ‘꽃다지’에는 로뎀기획을 소개해 값싸게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게 도왔다. 이로 인해 싼값으로 인터넷 광고를 게재하게 돼 요즘 홈페이지 방문객 수도 늘고 매출도 늘어가고 있다.
‘깔끄미’ 김미경, 홍승희, 김경희씨(왼쪽부터).
이들 여성 가장 대부분은 기초생활보호 수급대상자들이었다. 정부로부터 매달 40만~8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수급대상자를 ‘졸업’했다. 달마다 몇 백만원씩 매출을 올리는 업체의 사장이 된 덕분이다. 사회연대은행에 다달이 갚아나가고 있는 상환금에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깔끄미’는 한 달에 5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 김경희씨는 “쌓이는 먼지가 다 돈이다”라며 “지난해 12월에는 1000만원 가까이 벌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한 달에 20~25일씩 청소 예약이 잡혀 있다. 주말도 없고, 밤샘 청소를 해야 하는 날도 많다.
5월 개업한 ‘반짇고리’는 6월에 8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요즘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황토 천연염색 옷감으로 만든 제품이 인기가 좋다. 천연염색 잠옷과 침대보는 특히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아이들에게 좋아 잘 팔리는 제품 중 하나다. 구절초 카스텔라, 뽕잎 쿠키 등 ‘건강빵 시리즈’는 ‘밀밭풍경’ 매출액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여성 사장들이 월급으로 받아가는 액수는 80만~100만원에 불과하다. 하루 종일 바닥 쓸고, 빵 굽고, 바느질하는데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던 시절과 소득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밀밭풍경’ 조명순씨는 자신의 한 달 인건비로 80만원을 책정했다. ‘깔끄미’는 매달 매출액의 20%를 떼어내 저축하고 있다.
‘반짇고리’ 김순자, 박만자씨(왼쪽부터).
쉬운 일은 없다. ‘깔끄미’ 김경희씨는 6월 청소하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10일간 입원해야 했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바깥 유리를 닦는 위험스러운 일도 해내야 한다. 천연염색을 하려면 물을 100℃로 팔팔 끓여 옷감을 삶고, 널어 말리고, 또다시 삶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올해 여름에는 더욱 힘든 작업이었다. 하지만 즐겁다. 내 사업이고, 남들보다 내가 훨씬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밀밭풍경’ 조명순씨는 “반죽이 무척 무겁지만, 내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는다”며 웃는다. ‘꽃다지’ 신옥자씨는 “꽃 선물받고 기분 나쁜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평소엔 전기세, 수도세 낼 걱정을 하다가도 꽃만 잡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져요. 꽃바구니를 선물받고 좋아할 사람을 생각하면 저도 꽃처럼 활짝 웃게 돼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