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세계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답해야 했을까?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되거나 되게 함’이라는 다소 빈약한 답변을 해도 중간점수는 받지 않았을까. 겨우 10년 전만 해도 세계화란 말은 낯설었고, 뜻도 모호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란 단어가 신문 지면에 연일 등장하고, 의미도 한층 복잡해졌다. 세계화에 대해 보편적으로 정의한다면 ‘교통·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간 교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통된 규범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답변도 만점짜리는 아니다. 세계화에 대한 정의는 국가나 개인이 처한 현실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잡지사 부편집자를 지낸 폴 킹스노스도 자신의 저서 ‘세계화와 싸운다’를 통해 나름대로 세계화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세계화란 누가 주도권을 쥐는가를 결정하는 영원한 세계적 권력 투쟁이다. 세계화는 누가 권력을 휘두르는가, 권력을 어떻게 휘두르는가, 무슨 근거로 권력을 휘두르는가를 결정한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저자는 2001년 8개월 동안 다섯 개 대륙의 반(反)세계화 현장을 찾았고, 그 여행에 대한 기록을 ‘세계화와 싸운다’로 엮었다. 그는 반세계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반세계화 운동의 주역들은 대부분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들의 싸움 상대는 다양했다. 자신의 정부인 경우도 있었고, 다른 나라 정부, 다국적기업, 지주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저항 방식도 무장봉기에서부터 문화 훼방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저자가 첫 번째 소개한 여행지는 사빠띠스따 혁명이 일어난 멕시코의 치아빠스다. 저자는 2주일 넘게 이곳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이를 극복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직시할 수 있었다
치아빠스는 멕시코에서 손꼽힐 정도로 자원이 많은 곳이지만 주민들은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한다. 국내외 기업, 부패한 지주, 불공정한 토지 및 재산 분배 때문이다. 치아빠스의 3분의 1이 넘는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주민 30%가 문맹이다. 주민 40%의 하루 수입이 3달러 미만이며, 19%는 아예 수입이 없다. 또 주민 1만명당 병원 침대가 0.3개이며, 50%는 영영실조에 걸려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침묵하며 지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이곳에서 사빠띠스따 혁명이 ‘최초의 탈근대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됐다. 이들의 혁명은 여타 혁명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이 혁명을 통해 원한 것은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자기 마을에서 농사짓고 사는 소박한 생활, 즉 ‘자치’였다.
저자는 치아빠스에 이어 G8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를 찾아 시위에 참가했고, 정부와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물 분쟁을 승리로 이끈 볼리비아 꼬차밤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서 국가에 너무 희망을 걸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권이 무너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의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새 정부가 세계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복지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쏘웨토시 근처에는 요금을 못 내 전기 공급이 끊긴 가정을 위해 무단으로 전기를 훔쳐 연결해주는 단체까지 생길 정도였다.
저자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이한 반세계화 운동방식으로 흥미를 끈다. 다국적기업의 체인점들로 동네가 황폐해져간다고 생각하는 빌리 목사는 ‘쇼핑중단파’라는 교파를 만들어 반소비주의 복음을 전한다. 또 다국적기업의 광고판을 패러디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말보로 광고판을 말보로 담배꽁초로 바꾸고,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을 리바이스의 새 모델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저자의 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부재지주 소유의 버려진 사유지를 점거한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민운동’ 현장도 찾았고, 수많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식민 지배로 인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서파푸아의 현실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빠져 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농산물 수입 개방 압력으로 빗장이 점점 풀리고, 거대한 다국적기업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한다면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세계화에 대한 우려와 반세계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공감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세계화의 폐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계적 차원의 저항운동 역시 점점 빠르게, 그리고 점점 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폴 킹스노스 지음/ 김정아 옮김/ 창비 펴냄/ 484쪽/ 1만5000원
Tips사빠띠스따 혁명
1994년 1월1일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 주에서 농민들이 중심이 돼 일어난 혁명으로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불평등과 수탈로 인해 가난에 시달리던 이들은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입성으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사빠띠스따는 1910년 첫 번째 멕시코혁명에서 살해당한 혁명영웅 에밀리아노 사빠따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란 단어가 신문 지면에 연일 등장하고, 의미도 한층 복잡해졌다. 세계화에 대해 보편적으로 정의한다면 ‘교통·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간 교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통된 규범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답변도 만점짜리는 아니다. 세계화에 대한 정의는 국가나 개인이 처한 현실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잡지사 부편집자를 지낸 폴 킹스노스도 자신의 저서 ‘세계화와 싸운다’를 통해 나름대로 세계화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세계화란 누가 주도권을 쥐는가를 결정하는 영원한 세계적 권력 투쟁이다. 세계화는 누가 권력을 휘두르는가, 권력을 어떻게 휘두르는가, 무슨 근거로 권력을 휘두르는가를 결정한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저자는 2001년 8개월 동안 다섯 개 대륙의 반(反)세계화 현장을 찾았고, 그 여행에 대한 기록을 ‘세계화와 싸운다’로 엮었다. 그는 반세계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반세계화 운동의 주역들은 대부분 가난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들의 싸움 상대는 다양했다. 자신의 정부인 경우도 있었고, 다른 나라 정부, 다국적기업, 지주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저항 방식도 무장봉기에서부터 문화 훼방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저자가 첫 번째 소개한 여행지는 사빠띠스따 혁명이 일어난 멕시코의 치아빠스다. 저자는 2주일 넘게 이곳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이를 극복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직시할 수 있었다
치아빠스는 멕시코에서 손꼽힐 정도로 자원이 많은 곳이지만 주민들은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한다. 국내외 기업, 부패한 지주, 불공정한 토지 및 재산 분배 때문이다. 치아빠스의 3분의 1이 넘는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주민 30%가 문맹이다. 주민 40%의 하루 수입이 3달러 미만이며, 19%는 아예 수입이 없다. 또 주민 1만명당 병원 침대가 0.3개이며, 50%는 영영실조에 걸려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침묵하며 지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이곳에서 사빠띠스따 혁명이 ‘최초의 탈근대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됐다. 이들의 혁명은 여타 혁명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이 혁명을 통해 원한 것은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자기 마을에서 농사짓고 사는 소박한 생활, 즉 ‘자치’였다.
저자는 치아빠스에 이어 G8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제노바를 찾아 시위에 참가했고, 정부와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물 분쟁을 승리로 이끈 볼리비아 꼬차밤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서 국가에 너무 희망을 걸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권이 무너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의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새 정부가 세계 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복지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쏘웨토시 근처에는 요금을 못 내 전기 공급이 끊긴 가정을 위해 무단으로 전기를 훔쳐 연결해주는 단체까지 생길 정도였다.
저자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이한 반세계화 운동방식으로 흥미를 끈다. 다국적기업의 체인점들로 동네가 황폐해져간다고 생각하는 빌리 목사는 ‘쇼핑중단파’라는 교파를 만들어 반소비주의 복음을 전한다. 또 다국적기업의 광고판을 패러디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말보로 광고판을 말보로 담배꽁초로 바꾸고,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을 리바이스의 새 모델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저자의 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부재지주 소유의 버려진 사유지를 점거한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민운동’ 현장도 찾았고, 수많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식민 지배로 인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서파푸아의 현실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빠져 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농산물 수입 개방 압력으로 빗장이 점점 풀리고, 거대한 다국적기업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한다면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세계화에 대한 우려와 반세계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공감이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세계화의 폐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계적 차원의 저항운동 역시 점점 빠르게, 그리고 점점 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폴 킹스노스 지음/ 김정아 옮김/ 창비 펴냄/ 484쪽/ 1만5000원
Tips사빠띠스따 혁명
1994년 1월1일 멕시코 남부 치아빠스 주에서 농민들이 중심이 돼 일어난 혁명으로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불평등과 수탈로 인해 가난에 시달리던 이들은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입성으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사빠띠스따는 1910년 첫 번째 멕시코혁명에서 살해당한 혁명영웅 에밀리아노 사빠따에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