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제공한 쌀을 가득 실은 화차를 경비하는 북한 군인(좌).<br>쌀을 싣고 온 화차에서 트럭으로 쌀을 옮기는 북한 군인(우).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통일부는 2001년 30만t을 시작으로 2002~04년 해마다 40만t씩, 2005년 50만t의 쌀을 연리 1% 차관 형식으로 춘궁기 끝인 초여름 북한에 제공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7월5일 북한이 무더기로 미사일을 발사함에 따라 쌀 지원을 거부했다. 하지만 올여름 홍수로 북한도 큰 피해를 입은 사실이 확인돼 10만t을 무상 지원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는 통일부가 지원하는 쌀부대에만 찍히기 때문에 다른 단체에서 지원한 쌀부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5월24일 단천역서 트럭에 옮겨 실어
단천시 위연시장에서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꽃제비.
그동안 한국이 지원한 쌀이 북한 군부를 유지하는 데 투입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러 곳에서 나왔다. 2004년 6월2일 미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에 지원된 식량이 실제로 북한 주민에게 배분되는지 검증하기 어려우며, 북한군 유지에 전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 동영상이 이 우려가 사실임을 입증했다. 탈북자는 날짜와 시간까지 넣어 동영상을 촬영했으므로, 정보기관은 이 필름의 진위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과 ‘40kg’이 찍힌 쌀부대. 이 쌀은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한 부대에만 찍혀 있다(좌).<br>단천시 위연시장에 나온 한국 정부 제공 쌀(우).
대부분 전기로 움직이는 북한 기차는 전기가 끊기면 마냥 서 있어야 한다. 국경경비여단 군인들은 수매양정성을 대신해 식량 열차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이 지원해준 쌀을 그들이 먹기 위해 가져가려는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 정부가 지원한 쌀을 북한 군인들이 지키고 운반하는 일은 약속 위반이므로 한국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탈북자는 5월 말에서부터 6월 사이에 걸쳐 함경남·북도를 다니며 촬영을 했다. 그가 단천시의 위연시장을 촬영한 동영상에는 시장 좌판에 나와 있는 대한민국 쌀부대가 담겨 있었다.
시장 좌판에 나온 ‘대한민국’ 쌀부대
로동교양대 담 너머로 촬영한 생활준칙 간판(위).<br>청진시 로동교양대 모습(아래).
탈북자에게서 이 필름을 입수한 사람도 세 차례의 북한 잠입 경험이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이 지원한 쌀은 북한 시장에서 많이 거래된다. 1997년만 해도 북한에는 식량난 때문에 곳곳에서 아사자가 속출했고, 시장에는 물품이 없었다. 상인들은 도둑맞을까봐 식량 위에 그물을 덮은 채 장사를 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지원을 시작한 뒤로 사정이 좋아져서 시장에 물품이 많아졌다. 대한민국이 지원한 쌀 가운데 일부는 중국으로 유출돼 옌지(延吉) 시장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으로 넘어갔던 탈북자가 북한에 다시 들어오다가 잡히면 노동단련대에 수감돼 강제노동에 처해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동단련대를 촬영한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어, 이것이 실존 조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탈북자는 이 점을 의식한 듯 함경남도 청진시 수남구역 창평동에 있는 ‘로동교양대’를 최초로 촬영했다. 로동교양대는 노동단련대의 정식 명칭이다.
로동교양대 수감자들이 밖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다(좌).<br>청진시 한 채소밭에 씨를 뿌리고 분뇨를 붓는 북한 군인들(우).
촬영자는 과거 이곳에 수감된 적이 있었던 듯 앵글을 정확히 들이댔다. 그는 촬영 도중 높은 담 위에 전기철조망이 둘러쳐 있다는 말을 넣었고, 담 안쪽에 있는 ‘로동교양대 생활준칙’을 써놓은 간판까지 촬영함으로써 노동단련대의 정식 명칭이 로동교양대임을 확인해줬다.
과거 북한은 탈북하다가 붙잡혔거나 중국에서 붙잡혀 돌아온 탈북자를 한국의 교도소와 비슷한 교화소로 보내 수감했으나, 탈북자가 급증한 1997년부터는 로동교양대를 만들어 수용하고 있다.
분뇨통을 싣고 온 소 달구지(위)<br>청진시 국경경비여단 대대본부 건물 앞의 경비병(우).
북한군은 아마도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 세계 유일의 군대일 것이다. 후방 지역에 있는 국경경비여단 군인들은 탈북이나 사망으로 주인이 없어진 농토에서 대신 농사를 짓는다. 촬영자는 562군 부대 깃발을 든 청진의 국경경비여단 군인들이 밭에 씨뿌리고, 씨를 심은 구멍에 똥물을 붓는 모습을 촬영했다. 발효한 거름이 아니라 생분뇨를 붓는 장면인데, 촬영자는 이 대목에서 “야,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난다”라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분뇨통은 소가 끄는 달구지에 실려 왔는데, 이 소의 덩치는 한국 소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 보니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제대로 성장을 못하고 있다. 이 필름을 입수한 사람은 “북한은 식량난뿐 아니라 비료난도 심각하다. 봄철 식량난이 심하면 북한 주민들은 밭의 새싹도 뽑아먹는다”라고 설명했다.
운전석에만 유리가 있고 전조등도 하나인 지프를 두드리며 작업하는 국경경비여단원.
9월 日 후지TV서 특집 방영
동영상에는 지휘관용 지프도 나온다. 운전자석에만 앞유리가 끼워 있고 조수석에는 유리가 없는 차다. 전조등도 한쪽만 있는 ‘애꾸눈’이다. 조수석 유리와 한쪽 전조등은 다른 차에 끼우기 위해 빼냈을 것이다. 북한은 차 한 대용 부속으로 두 대를 굴려야 하는 나라다.
카메라는 청진의 중심지인 청진역 앞도 촬영했다. 청진은 북한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 그러나 평양 같은 깨끗함이나 널찍함은 찾아볼 수 없다. 청진역 앞에서 가장 큰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역전백화점이다. 60여 년 전 건물을 그대로 쓰는 백화점이니 당연히 변변한 물품도 없다. 이 필름을 입수한 사람은 “1997년 청진역 광장에 갔을 때는 거적에 덮인 아사자의 시신이 여러 곳에 놓여 있었다”라고 말했다.
청진역 앞 도로는 포장돼 있지만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인지 곳곳이 파여 있다. 그런데 이곳을 지나가는 리어카 소리가 너무 요란하다. 카메라는 리어카 바퀴를 클로즈업해 보여주는데, 고무는 없고 쇠로 된 뼈대만 남아 있어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필름을 입수한 사람은 “1997년과 비교하면 청진 시내를 다니는 차량 수는 비슷한데 자전거 수가 두 배 정도 증가했다. 2000년 정상회담 후 한국이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확실히 북한 사정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필름은 5개로, 전체 촬영 시간이 3시간에 이른다. 필름을 입수한 사람은 필름을 한국 TV 방송사에 제공하려고 했지만 방송사가 정부 눈치를 보느라 방영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일본의 한 방송사에 제공했다. 일본 방송사는 이 필름을 1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편집해 9월 첫 주 뉴스와 특집방송을 통해 방영할 예정이다. 이 필름을 촬영하기 위해 북한에 잠입했던 탈북자는 제삼국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