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친선대회에서 뉴욕 양키스 마쓰이 히데키 선수와 악수를 나누는 사이토 유키(왼쪽).
8월21일 끝난 제88회 고시엔(甲子園) 고교야구대회에서 전국 우승을 거머쥔 와세다 실업고의 투수 사이토 유키(齊藤佑樹)의 얘기다. 사이토는 결승전에서 대회 3연패를 노린 고마다이도마코마이 고교를 상대로 유례없는 재경기 끝에 우승을 따냈다. 결승전 첫 경기에서 15회 연장까지 갔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고, 이튿날 재경기에도 선발투수로 나서 9회까지 완투하며 4대 3 승리를 이끌어낸 것. 워낙 극적인 승부였던 데다 그의 준수한 외모와 겸손한 태도, 지칠 줄 모르는 투혼에 일본열도가 홀딱 반해버렸다.
사이토는 이번 대회에서 7경기에 출전해 948개의 공을 던지면서도 마지막까지 구속 140km대를 유지해 ‘철완’이란 평을 들었다. 결승전 재경기까지 나흘간 4경기를 연속 완투하고는 “별로 피곤하지 않다”고 말해 일본인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이런 사이토는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경기 내내 땀이 흐르면 뒷주머니에서 어머니가 넣어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곤 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덩달아 그의 파란 손수건도 유명세를 탔다. 이 손수건이 오사카의 한 업체의 제품으로 수년 전 품절됐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유사제품이라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터넷 경매가 붐빈다.
흔히 고교생들에게 ‘꿈의 고시엔’이라 불리는 고시엔 대회는 일본에서는 거국적 행사다. 올해 지역예선에는 전국에서 4114개 팀이 참가했고 49개교가 본선에 올랐다. 대회 기간 중 연인원 85만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NHK와 아사히TV 등 2개 지상파 방송이 동시에 생중계를 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손수건 왕자’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버라이어티 뉴스 방송에서는 벌써부터 왕자의 몸값을 점치거나 ‘프로 진출이냐 진학이냐’며 진로를 논하는 토론이 벌어진다. 매스컴의 취재경쟁이 과열되자 8월29일 일본 고교야구연맹이 사이토에 대한 취재 규제결정을 내렸을 정도다.
사이토는 29일 미-일 친선 고교야구 대회 참가를 위해 고교야구 선발팀에 합류해 뉴욕으로 떠났다. ‘이제 조용해지려나’ 했더니 아니었다. 30일에는 뉴욕 양키스의 일본인 선수 마쓰이 히데키 선수가 ‘손수건 왕자’를 격려하러 간 장면이 매스컴을 탔다.
고시엔은 냉엄한 승부의 무대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젊은이들은 이 승부의 무대에 도전해 좌절을 맛보거나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소박하지만 가능성 넘치는 젊은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착실하게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본 야구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