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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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돈 받아 베네치아 살리자고?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시설 파괴 몸살 … ‘도시 구출 작전’ 재원 마련책으로 본격 거론

  • 전원경 작가 winniejeon@yahoo.co.kr

    입력2006-09-06 18: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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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돈 받아 베네치아 살리자고?

    곤돌라가 주요 운송수단인 베네치아 시내의 운하.

    이탈리아, 아니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그러나 해마다 조금씩 물 속으로 가라앉는 바람에 골치를 썩이는 도시 베네치아가 고육지책을 짜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관광객들에게 ‘도시 입장료’를 받을 계획을 세운 것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베네치아를 찾는 연간 1600만 명의 관광객은 입장료를 내야만 도시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놀이공원처럼 입장료를 받겠다는 이 계획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네치아 시 당국은 몇 달째 입장료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왔다. 그리고 8월 중순, 마시모 카시아리 베네치아 시장은 이탈리아의 시사주간지 ‘파노라마’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도시는 어디나 도시의 유지·보수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매일 5만 명의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는’ 베네치아는 특히 심각하다. 관광객 때문에 시의 시설이 망가지고 훼손되고 있다. 그에 비해 정부 보조금은 빈약한 수준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금이 생겨나거나 관광객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300년간 30cm 침몰 … 생존 위협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존 케이 교수도 6월에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도시입장료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합하면 25억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는 가까운 시일 내에 서구의 경제규모를 따라잡을 것이고, 이들 역시 유럽의 보석인 베네치아를 관광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10~20년 안에 베네치아 관광객의 수는 두세 배 이상으로 늘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베네치아가 여타 도시와는 여러 모로 다른, 특이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120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150여 개의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의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면서 해마다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도시 중심부의 산 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겨 광장 위로 배가 다니거나 장화를 신은 채 걸어다니는 광경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식상할 정도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런 홍수조차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베네치아가 지난 300년간 30cm가량 가라앉았다는 사실은 이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심각한 생존 위협이다.

    궁여지책으로 베네치아는 2003년 ‘모세 프로젝트’라는 홍수 대비책을 내놓았다. 베네치아 외곽의 해상에 개폐식 방책을 쌓아올려 침수 위험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자는 계획이다. 아드리아해에서 파도가 칠 때면 이 방책이 올라가 해수면 상승을 막게 된다. 현재 베네치아 외곽에서는 모세 프로젝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베네치아의 땅 밑 690m 지층에 바닷물을 부어넣어 베네치아 전체를 ‘들어올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 제안은 지난해 11월 파도바대학의 주세페 감볼라티 교수가 처음 내놓았다. 그는 땅 밑에 바닷물을 부어 베네치아의 토양을 밀어올리면 모세 프로젝트의 효과가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광객 돈 받아 베네치아 살리자고?

    시실리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유적. 시실리는 2007년부터 5유로의 도시 입장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런 ‘베네치아 구출 작전’은 모두 천문학적인 예산을 필요로 한다. 2011년까지 완공될 예정인 모세 프로젝트는 30억 유로(4조5000억)의 예산 부족으로 난관에 처해 있다. 모세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베네치아 자체가 워낙 낡은 상태라 조금의 오차로도 도시 전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감볼라티 교수의 계획도 실행되려면 1억 유로 가까운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베네치아의 입장료는 얼마가 적당할까? 케이 교수는 유로디즈니랜드와 같은 1인당 50유로(7만5000원)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베네치아 위기관리자금’의 애나 소머스 콕스는 10유로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베네치아 시 당국은 구체적인 입장료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관광객 줄이겠다는 속셈

    유럽의 다른 관광도시들은 베네치아의 의사결정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몇몇 도시들은 베네치아가 입장료를 받기로 결정하면 곧 그 뒤를 따를 태세다.

    한편 밀라노의 레티치아 모라티 시장은 내년부터 밀라노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에 ‘공해배출부과금’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밀라노의 공해배출부과금은 차 한 대당 최소 3유로 이상이 될 전망이다. 런던 역시 최소 8파운드(1만4600원)의 공해배출부과금 부과를 검토 중이다. 이탈리아의 역사도시 볼로냐는 이미 6월부터 도시 중심부로 들어오는 차량에 5유로의 공해배출부과금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이처럼 입장료나 공해배출부과금을 받으려는 이유는 관광객을 좀 줄여보자는 속셈도 숨어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역사도시 시실리는 내년부터 5유로의 도시 입장료를 받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다. 이로 인해 시실리는 매년 15만 명 정도의 관광객 감소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한 명이라도 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관광 대국 이탈리아의 고육지책이 배부른 타령으로만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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