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는 생활비 폭증 현상을 몰고 올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맞고 있다.
1970년대 세계는 유례없는 경제적 체험을 했다. 높은 물가상승률과 경기침체가 공존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었다. 이 시기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고도성장 중이던 우리 경제는 선진국에 비해 충격이 적었다. 1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1975년 한 해 경제성장률이 반 토막 났다가 이내 회복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 국가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는가? 아니면 앞으로 들어설 것인가? 양론이 있다. 일단 미국과 우리의 경제지표만 보면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급상승 중이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얼슨을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를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스태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70년대처럼 그런 현상이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될 때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실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고유가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어느 순간 해소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경미한 불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슬로모션(slow-motion)’ 불황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 스태그플레이션 미약이냐 강력이냐
우리의 경우는 미국보다 비관적이다. 유가에 대한 충격파도 더 클 뿐 아니라 성장잠재력도 소진된 상태다. 경제운용 능력도 불안하다. 따라서 우리는 2008년의 미국보다는 1970년대 미국과 흡사해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스태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남은 문제는 그것이 미약한 형태에서 마무리될 것인가, 아니면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경험하게 될 것인가다. 물론 고유가 상황이 진정되고, 정부의 경제운용 능력이 제자리를 잡으면 미약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그칠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여기에 70년대 미국의 경험을 대입시키면 경제성장률은 3분의 1 이상 떨어지고 물가는 2배 가까이 뛴다. 시중에 떠도는 ‘신(新)747 공약’과 흡사해진다. 당초 이명박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대국)이 아니라 물가상승률 7%, 경제성장률 4%, 실업률 7%의 경제 상황이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경험을 감안하면 향후 경제 상황이 보통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생활비 급증과 금리 상승, 자산가격 폭락이다. 물가 인상에 따라 생활비는 크게 뛴다. 주요 생활필수품 가격 급등으로 체감물가는 물가상승률보다 큰 폭으로 상승한다. 게다가 실질금리마저 뛴다. 이에 따라 이자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 이 경우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가격은 폭락하는 경향이 있다. 부채가 많은 가계는 외환위기 때처럼 이중고를 겪게 된다. 더욱이 생활비마저 급등해, 생활비가 줄었던 외환위기 때보다 체감경기가 나빠질지도 모른다. ‘신747’ 경제환경을 기준으로 할 경우 향후 1년여 간 생활비는 30% 증가하고, 빚 이자 부담은 40% 가까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폭락할지는 감도 잡기 힘들다.
■ 빚과 자산이 얼마인지가 관건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승패는 빚과 자산 규모에 따라 갈린다. 능력에 맞지 않게 자산에 투자한 쪽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빚을 많이 얻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감행한 이들이다. 이들은 시장금리 상승과 자산가격 폭락에 따라 과도한 이자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어렵더라도 빚과 투자를 자제해온 재테크 문외한들이 상대적으로 승자가 된다. 이들은 자산가격이 뛴 지난 4년간 상대적 박탈감을 맛봐온 이들이다.
여기 두 종류의 중산층 가정을 생각해보자. 둘 다 월평균 200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이 가운데 60%를 생활비로 지출하는 가계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부채와 자산 상태뿐이다. A 가정은 가장의 부지런한 재테크 결과 1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대신 3억원짜리 집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B는 빚 2000만원에 부동산이 없다(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약 3500만원이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비 급증은 두 가정에 같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금리 상승과 자산가격 폭락으로 인한 영향은 두 가정을 천국과 지옥으로 바꿔놓는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에 더해 부동산 가격이 20% 폭락했다고 하고 단순계산을 해보자. A와 B 가정 모두 432만원가량 생활비 부담이 증가한다. 그런데 A 가정은 빚 이자와 자산가격 폭락으로 6360만원가량 손해를 보게 된다. B 가정의 손실액은 72만원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당시 경험했듯, 불과 1년 만에 이런 격차가 벌어지니 운명의 역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는 정부, 은행, 증권사 등 어떤 기관과 경제전문가의 의견이라도 여러 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와 중앙은행, 팔아치워야 하는 금융상품을 권하는 데만 급급한 은행과 증권사 역시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없다.
■ 생존 위해 자신 외 누구도 믿지 말라
스태그플레이션은 부동산 가치 폭락 사태를 몰고 올 수 있다. 또 대출을 통해 집을 산 경우 금리 상승과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 훨씬 커지게 된다.
둘째, 빚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난 4년여 간처럼 빚을 얻어 재테크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오히려 지금 있는 빚도 줄여나가야 한다. 일종의 빚 다이어트, 빚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돈이 생기면 무엇을 사거나 투자하기 전에 빚을 어떻게 줄일까부터 생각할 일이다.
셋째, 1970년대를 겪고 난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말, ‘현금이 왕(cash is king)’을 염두에 두자. 높은 물가상승으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이런 조언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겠지만 올해 상반기 재테크 상황을 살펴보면 이 얘기가 실감날 것이다.
주식 관련 상품은 국내 주식형펀드 -12%, 해외 주식형펀드 -19%, 직접투자 코스피 -11%, 코스닥 -16% 등 모두 두 자릿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채권이나 부동산은 손해를 보진 않았으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마이너스였다(채권 3%, 부동산 3%). 이런 분야는 돈이 장기간 묶인다는 단점이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투자전략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현금의 장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가정 A | 가정 B | |
연간 수입(변화) | 2400만원(0) | 2400만원(0) |
연간 지출(변화) | 1440만원(432만원 증가) | 1440만원(432만원 증가) |
부채 이자(변화) | 900만원(360만원 증가) | 180만원(72만원 증가) |
자산 가격(변화) | 3억원(6000만원 하락) | 없음(0) |
※ 생활비 30% 증가,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 40% 증가, 부동산 가격 20% 하락을 전제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