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30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유남규(국가대표 남자팀 코치), 현정화(여자팀 코치), 김택수(대우증권 감독) 등 왕년의 탁구 스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영하 10℃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였지만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새 1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독선적으로 협회를 운영하면서 선수 선발과 기용에 관여하고, 협회 기금 이자를 원칙 없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퇴임을 요구했다.
전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있었던 탁구계 한 인사는 “대회에 나가 오더(경기 순번)를 짜는데 우리 의견을 묵살하고 자꾸 강압적으로 지시를 해 전화기를 꺼놓은 적도 있다. 이래서는 코칭스태프가 회장의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다.
천영석 전 회장은 ‘사라예보 신화’를 창조한 주역으로, 경기인 출신으론 처음으로 2004년 탁구협회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천 전 회장은 매년 8억원 이상 출연하겠다고 한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설상가상 탁구협회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던 KRA(전 한국마사회)마저 천 회장 부임 후 지원금을 줄이면서 수장으로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재계 총수인 신임 협회장에게 큰 기대
여기에 독단적 행정이 이어지자, 경기인과 천 전 회장 취임 당시 소외됐던 탁구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퇴진파가 형성됐다. 이에 회장파로 분류되는 협회 집행부는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탁구협회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성토했고, 퇴진파는 “탁구인의 믿음을 잃은 천 회장에게 더는 협회를 맡길 수 없다”고 맞서는 등 지난 7개월간 권력다툼이 이어졌다.
6월26일 열린 대한탁구협회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양측의 대립은 절정에 달했다. 퇴진파 대의원들이 천 전 회장 탄핵에 필요한 14명(전체 대의원 20명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자, 회장파 대의원들이 물리력을 행사해 총회를 방해하고 나선 것.
이날 총회장에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고 유남규 코치가 몸싸움 와중 쓰러져 경찰이 출동하는 등 한바탕 촌극이 빚어졌다. 아수라장 속에서 퇴진파가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회장파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면서 다툼은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틀 뒤 상황이 급반전됐다. 정황을 모두 전해들은 천 전 회장이 자진 용퇴를 결심했고, 퇴진파와 회장파는 공동으로 탁구협회 집행부를 구성하는 선에서 화해했다. 그리고 7월16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새 회장에 추대됐다.
재계 총수가 탁구협회 회장에 오른 것은 최원석 전 회장 이후 14년 만의 일. 당시 최 회장이 대표팀과 유망주 발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한국 탁구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2개, 93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우승 등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에 탁구인들은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 총수를 수장으로 맞아들인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퇴진파와 회장파, 두 세력이 극적으로 화해한 배경에는 천 전 회장의 자진 사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간 탁구계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이어지면서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정작 대표선수들은 정상적으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당연히 메달 전망 역시 밝지 못했다.
대표팀 훈련 부족에 대진운도 안 좋아
권력다툼이 벌어질 당시 탁구계의 한 인사는 “지난 7개월간 선수들이 제대로 훈련을 소화한 날이 별로 없었다. 이들을 가르쳐야 할 감독과 코치들이 모조리 총회장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 말이 되느냐”고 한탄할 정도였다.
참가 선수들의 대진운도 좋지 않다. 특히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안겨줬던 유승민은 올림픽 시드 배정에서 4번을 받지 못해 16강이나 8강에서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은 마린, 왕하오 등 중국 주력 선수들과의 전적에서 고양이 앞에 쥐처럼 열세를 면치 못했다. 남자 단체 역시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시드 배정의 기준이 될 팀 랭킹이 발표되지 않았으나, 만일 3위로 떨어질 경우 중국과 준결승전에서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치러야 한다. 여자 단체도 4강 시드 획득이 불투명한 상태다.
전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있었던 탁구계 한 인사는 “대회에 나가 오더(경기 순번)를 짜는데 우리 의견을 묵살하고 자꾸 강압적으로 지시를 해 전화기를 꺼놓은 적도 있다. 이래서는 코칭스태프가 회장의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다.
천영석 전 회장은 ‘사라예보 신화’를 창조한 주역으로, 경기인 출신으론 처음으로 2004년 탁구협회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천 전 회장은 매년 8억원 이상 출연하겠다고 한 취임 당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설상가상 탁구협회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던 KRA(전 한국마사회)마저 천 회장 부임 후 지원금을 줄이면서 수장으로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재계 총수인 신임 협회장에게 큰 기대
여기에 독단적 행정이 이어지자, 경기인과 천 전 회장 취임 당시 소외됐던 탁구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퇴진파가 형성됐다. 이에 회장파로 분류되는 협회 집행부는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탁구협회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성토했고, 퇴진파는 “탁구인의 믿음을 잃은 천 회장에게 더는 협회를 맡길 수 없다”고 맞서는 등 지난 7개월간 권력다툼이 이어졌다.
6월26일 열린 대한탁구협회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양측의 대립은 절정에 달했다. 퇴진파 대의원들이 천 전 회장 탄핵에 필요한 14명(전체 대의원 20명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자, 회장파 대의원들이 물리력을 행사해 총회를 방해하고 나선 것.
이날 총회장에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고 유남규 코치가 몸싸움 와중 쓰러져 경찰이 출동하는 등 한바탕 촌극이 빚어졌다. 아수라장 속에서 퇴진파가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회장파가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면서 다툼은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틀 뒤 상황이 급반전됐다. 정황을 모두 전해들은 천 전 회장이 자진 용퇴를 결심했고, 퇴진파와 회장파는 공동으로 탁구협회 집행부를 구성하는 선에서 화해했다. 그리고 7월16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새 회장에 추대됐다.
재계 총수가 탁구협회 회장에 오른 것은 최원석 전 회장 이후 14년 만의 일. 당시 최 회장이 대표팀과 유망주 발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한국 탁구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2개, 93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우승 등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에 탁구인들은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 총수를 수장으로 맞아들인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퇴진파와 회장파, 두 세력이 극적으로 화해한 배경에는 천 전 회장의 자진 사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간 탁구계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이어지면서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정작 대표선수들은 정상적으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당연히 메달 전망 역시 밝지 못했다.
대표팀 훈련 부족에 대진운도 안 좋아
권력다툼이 벌어질 당시 탁구계의 한 인사는 “지난 7개월간 선수들이 제대로 훈련을 소화한 날이 별로 없었다. 이들을 가르쳐야 할 감독과 코치들이 모조리 총회장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 말이 되느냐”고 한탄할 정도였다.
참가 선수들의 대진운도 좋지 않다. 특히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안겨줬던 유승민은 올림픽 시드 배정에서 4번을 받지 못해 16강이나 8강에서 세계 최강 중국 선수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은 마린, 왕하오 등 중국 주력 선수들과의 전적에서 고양이 앞에 쥐처럼 열세를 면치 못했다. 남자 단체 역시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시드 배정의 기준이 될 팀 랭킹이 발표되지 않았으나, 만일 3위로 떨어질 경우 중국과 준결승전에서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치러야 한다. 여자 단체도 4강 시드 획득이 불투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