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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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차고 넘치는 오감만족 특구

  • 글·사진=지일환

    입력2008-07-21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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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거리 차고 넘치는 오감만족 특구

    선전의 최고층 건물인 69층의 션힝스퀘어.

    내가 홍콩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는 시내에서 가까운 카이탁 공항을 이용했는데, 공항청사를 나오자마자 거리를 가득 메운 2층 버스에 넋을 잃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저 시내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자유여행자들의 로망이던 청킹맨션까지 20분이면 도착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하긴 그때나 지금이나 시내에 들어서면 버스 차창 너머 보이는 빼곡한 건물과 난삽한 간판들은 홍콩의 상징처럼 우리를 반기고, 북적거리는 도심과 후끈후끈한 날씨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20년의 세월을 따라 변해왔고, 홍콩의 어딘가에서 느낄 수 있는 세월의 변화를 알아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어느덧 홍콩의 상징이 돼버린 홍콩 컨벤션센터(HKCEC)에서 열린 와인박람회 비넥스포 아시아-태평양(VINEXPO Asia-Pacific) 2008을 취재차 떠난 길이었다. 비행기로 도착해 전시장 근처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보르도로 상징되는 비넥스포가 신흥시장인 중국 본토를 비롯해 일본과 한국을 노리고, 아시아권 최대급 박람회를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뉴스이기도 했다. 670개 부스로 가득한 전시장을 사흘 동안 돌아보며 300종이 넘는 와인을 시음하다 보니 처음 홍콩을 방문했던 20년 전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의 배낭여행자였고, 24시간 편의점과 셀프서비스로 채워 마시던 슬러시를 홍콩에서 처음 보았다. 참을 수 없는 홍콩의 더위에 없는 돈을 털어 리펄스베이의 그 유명한 구멍 뚫린 아파트 앞 편의점에 들어가 슬러시를 컵에 가득 채워 게걸스레 마셔댔다. 그것은 내 20대 청춘여행의 시발점이었다. 그 갈증의 해소는 나를 여행이라는 갈망에 빠져들게 했고, 나는 10개월 동안 동남아와 유럽을 돈 뒤 인도 그리고 다시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홍콩의 바로 위에는 선전(深 )이라는 묘한 도시가 있다. 첫 홍콩 여행 당시엔 홍콩 누아르에 나오는 삼합회의 거점인 광저우(廣州)를 받쳐주는 변방의 국경도시에 불과했지만, 1980년대 최초로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이제는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한 도시다.



    마침 중국 복수비자 기간도 남아 있고, 주말에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2~3일 정도의 짐만 꾸려 선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음은 그렇게 20여 년 전 배낭족으로 돌아갔는데, 지금의 몸은 예전에 배낭 메고 다니던 때의 통합 무게와 비슷하니 옛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과연 선전이 옛날의 홍콩을 떠올릴 만큼 저렴한 물가와 볼거리를 제공할지도 고민이었다.

    배낭족의 로망을 오랜만에 되새겨보기 위해 훌쩍 타버린 중국행 전철, 그리고 뚜벅거리며 지나온 국경, 우선 이것만으로도 비행기로 떠돌던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은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루어후역 쪽으로 걸었다. 같은 글자지만 선전에서는 베이징 발음인 ‘루어후’로, 홍콩은 광둥어로 ‘루우’라고 읽는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최초의 경제특구답게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홍콩 국경의 루어후역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장거리 버스터미널, 서쪽으로는 루어후 기차역이 자리해 있다. 선전을 기점으로 가까이는 정보기술(IT) 공업지대 둥관(東莞)이나 광둥의 보석 광저우는 물론, 쿤밍(昆明)이나 청두(成都), 멀리는 상하이(上海) 등지까지도 쉽게 갈 수 있다.

    중국의 내일 만나는 곳 … 세계의 창 · 금수중화 테마파크 꼭 들러볼 만

    볼거리 차고 넘치는 오감만족 특구

    선전의 지하철 토큰(왼), 세계 80여개국을 축소해놓은 선전의 테마파크 ‘세계의 창’.

    또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면 남대문시장 같은 퉁먼(東門)이 있는 라오제(老街)역, 세 정거장이면 최고층 빌딩 디왕다샤(地王大厦)에 오를 수 있는 다쥐위엔(大劇院)역으로 연결된다. 종점인 스제즈촹(世界之窓)에는 같은 이름의 테마파크가 있고 직전 역인 화챠오청(華僑城)에는 중국식 민속촌인 진슈중화(錦繡中華)와 한인촌이 자리한다.

    특히 선전을 대표하는 볼거리로 알려진 두 테마파크 중 하나쯤은 반드시 보도록 하자. ‘세계의 창’은 이름 그대로 세계 각국의 80여 볼거리를 축소해놓았고,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중국 전역의 명승지를 축소해놓은 ‘금수중화’는 유명 소수민족의 생활상 전시와 함께 각종 공연을 여는 민속촌이 있다. 이왕 돈 내고 테마파크에 들어갔으면 하루 두 번 이상 열리는 공연을 놓치지 말자. 단, 원하는 공연을 보려면 입장권을 제시하고 좌석표를 미리 받아두어야 한다.

    광둥성은 이미 30년 가까이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발전해온 지역으로 중국 최초로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됐던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본주의를 일찍 경험했다는 점이 돈맛을 너무 빨리 알게 됐다는 뜻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들은 중국 내에서도 범죄율이 높은 편이다. 아울러 홍콩과 마카오 범죄조직과의 연계는 아직도 끈끈하고, 특히 선전은 국경도시인 만큼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밤외출은 삼가자.

    선전 여행의 둘째 날, 루어후역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 하나가 역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날이 마침 은행이 쉬는 일요일이라 암달러상과 좀 유리하게 환전을 해보려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에서 양산된 100위안짜리를 받았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큰맘 먹고 선전으로 온 길인데, 입국하자마자 이런 사태를 맞고 넋이 나가 계단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홍콩은 물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일은 드문데 말이다.

    이번 선전행이 나의 옛날을 돌아보려는 의미도 있고, 고생하며 여행하던 내 과거가 젊은 친구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주머니에 있던 200위안을 쥐어주곤 당신이 당한 일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이왕 온 길이니 이거라도 잘 활용해서 둘러보라며 위로했다. 예전의 나도 길에서 만난 여러 여행자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니, 그는 내 과거를 안고서 저 멀리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여행 Tip

    홍콩에서 선전 가기 _ 홍콩에서 선전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 비해 간편해졌다. 1910년부터 주룽(九龍)반도와 광저우를 이어주던 KCR이 지금은 홍콩교통국의 East Rail Line으로 재편돼 광저우까지 바로 연결되는 특급열차 라인의 한 축이 된 것이다. 홍콩에서 선전까지 갈 사람은 지하철 타듯 편하게 East Rail Line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면 된다. ‘침샤추이’로 불리는 주룽반도 남쪽의 관광지역 한쪽 편의 동-침샤추이(East Tsim Sha Tsui·尖東)에서 로우(羅湖·Lo Wu)행 기차에 올라 선전 강에 놓인 다리를 넘어가면 중국 입국장이 나오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선전이다.

    문제는 선전으로 가기 위해 미리 중국 비자를 받아놓아야 한다는 것.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10월까지 비자 받기가 어려워진 데다, 과거에는 누구에게나 쉽게 해주던 선전 5일짜리 관광비자 발급이 최근 아예 중단되었다. 이 때문에 예전처럼 중국 입국장 2층에서 즉석으로 관광비자를 받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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