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노출의 새 장이 열리다
1980년 한국연극영화상을 받은 세 명의 여배우 박정자 유지인 김민자. 1989년 제27회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강수연과 1993년 제31회 대종상 시상식의 심혜진(왼쪽부터). 시대별로 노출 드레스의 ‘진화’를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다.
1980년 한국연극영화상 시상식장에서는 물방울무늬 스카프를 목에 매고 어린이 만화영화 ‘캔디’의 주인공처럼 귀엽게 차려입은 유지인, 평상복 같은 흰색 원피스를 입은 김민자, 아예 한복을 입은 박정자의 모습이 포착됐다.
1989년 제27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강수연은 가슴 계곡이 보일 듯 말 듯한 드레스를 골라 노출에 한발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씨는 이듬해 같은 대회 시상식장에서 가슴 라인의 무게중심이 조금 더 내려간 과감한 드레스를 입었다. 그러나 1993년 제31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심혜진은 민소매이기는 하나 노출이 많지 않은 롱드레스를 골랐다. 이처럼 여배우들의 과감성은 일보(一步) 전진, 일보 후퇴를 거듭했다.
현재처럼 노출 수위가 높아진 시상식 드레스는 ‘김혜수 드레스’가 화제가 된 지 약 3, 4년이 지나서야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들이 노출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적절한 타이밍을 노렸기 때문이다.
매년 김혜수의 시상식 드레스를 스타일링해온 인트렌드 정윤기 대표는 “이전에는 배우들이 청바지 차림에 레게 머리를 하고 시상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외출용 투피스를 입기도 했다. ‘김혜수 드레스’ 이후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목격한 스타들이 과감한 노출을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화제작사 KM컬처 심영 이사는 “주요 영화제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고 베스트 드레서를 가리는 행사까지 열리기 시작한 데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의 드레스 협찬이 활발해지면서 섹시한 드레스를 찾는 스타들이 늘어났다”고 귀띔한다.
심 이사는 오랜만에 컴백하는 배우나 몸매가 좋은 신인 배우들이 아슬아슬한 노출 드레스로 강하게 어필하는 사례가 늘면서 ‘드레스 효과’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김소연은 가슴 부위를 거의 다 드러내는 ‘엠마뉴엘 웅가로’ 드레스로 오랜만에 플래시 세례를 만끽했음은 물론 드라마와 패션계의 러브콜도 받았다. 모델 출신 배우 최여진도 올해 4월 열린 제44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가슴 부위가 깊은 V자 모양으로 파인 ‘미소니’ 드레스를 입어 대중에 회자됐다.
노출 드레스에 대한 여배우들의 생각은 어떨까.
예지원 씨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화려한 드레스들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 레드카펫 문화가 대중에게 낱낱이 보도되고 노출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이 훨씬 너그러워지면서 노출 부담이 덜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배우들은 노출 수위를 놓고 저울질하는 단계를 넘어 체형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성 있는 드레스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감한 드레스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것이 여배우들의 최신 마케팅 포인트다. 2008년 4월 제44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최여진.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노출 패션, 그 정신적 원천은 개화기 때의 신여성 ‘모던걸’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던걸’의 노출은 절대적인 노출 수위가 아닌, 사회에 미친 충격의 크기 면에서 ‘김혜수 드레스’ 이상의 파격이었다.
국내 현대 패션사는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부터 시작된다. 남성들의 양복 착용이 허용되면서 여성들도 블라우스에 롱스커트 차림의 양장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양장 트렌드는 긴 상의와 짧은 스커트가 특징인 ‘로 웨이스트라인’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한복에도 영향을 미쳤다. 1920~30년대 짧은 한복 저고리와 종아리까지 오는 짧은 통치마가 유행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정강이를 다 드러낼 정도의 노출은 당시 큰 파격이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 모던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1924년 3월4일자 동아일보 만문만화(滿文漫畵)에는 치맛단이 무릎 라인까지 오는 짧은 통치마에 긴 서양식 부츠를 신은 젊은 여성 삽화가 등장한다. 당시 신문사들은 사회 풍자적 메시지가 있는 삽화와 짧은 평을 실은 만문만화를 게재했다.
삽화 아래에는 ‘저고리가 길어지는 대신 치맛단은 계속 줄어들어 무릎이 나올 지경이다. 긴 저고리 밑으로는 치마허리가 나온다. 길고 말고 다 제 멋이지만 이 다음이 크게 염려된다’고 꼬집는 글이 곁들여졌다.
홍익대 패션디자인과 간호섭 교수는 1920~30년대의 모던걸들을 우리나라 근현대사 최초의 노출 사례로 꼽는다.
“국내 패션사에서 모던걸만큼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인 적이 있을까요? 미니스커트의 등장은 사회에 미친 파격의 정도가 이보다 훨씬 못한 편에 속합니다.”
1930년 7월12일자 조선일보 만문만화는 프랑스 영화 ‘몽 파리’에 등장한 ‘벌거벗은 패션’(네글리제 룩)이 서울의 모던걸들 사이에 인기를 끌자 이에 기겁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겨울에는 육체미를 예찬하는 자가 있어도 추워서 살을 드러내지 못해 한이 되던 터에 여름이 되니 ‘어떱쇼?’ 하는 듯이 드러내놓고 대로상으로 달린다. 활동사진에 가슴팍만 내어 놓아도 잘리는 이곳에 1930년의 벌거숭이는 결코 외설죄가 안 되는 모양? 포목전은 철시하라!’
글과 함께 실린 한 컷 만화에는 V자로 깊게 파여 가슴 계곡을 다 드러낸 미니원피스를 입은 여성, 가슴팍 단추를 거의 다 풀어 가슴이 다 들여다보이는 남성의 모습이 표현됐다.
모던걸의 자유주의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크게 유행한 미니스커트, 핫팬츠 붐으로 이어졌다. 치맛단 아래로 줄자를 들이대며 강력 단속에 나선 경찰을 조롱하듯 미니스커트를 고집했던 ‘자유로운 영혼’은 2008년 여름의 노출 붐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