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유방확대수술용 보형물인 코히시브젤팩의 국내 시술이 허용되면서 유방 성형 건수가 평균 30% 이상 늘어났다. 이 보형물의 안전성과 시술 만족도를 관망해온 성형 소비자들이 올 여름을 겨냥해 대거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 서울 서빙고동에 사는 주부 이영은(31) 씨는 지난 주말, 가슴선이 깊게 파인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마트에 갔다. 약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직장인 구모(27·여) 씨는 지하철에서 등이 훤히 보이는 백리스(backless)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20대 후반 여성과 마주쳤다. 드러내놓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무심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한편 공인회계사 김창운(61) 씨는 한계를 시험하듯 매년 짧아져만 가는 미니스커트를 접하곤 깜짝깜짝 놀란다. 과연 노출의 마지노선은 어디이기에.
위 내용은 2008년 여름, 달라진 노출 패러다임에 대해 일반인, 패션 전문가, 트렌드 분석 담당자, 성형외과 전문의 등에게 물은 내용을 압축한 결과다. 특히 올해는 초미니 숏팬츠와 미니스커트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노출 열풍이 예년보다 거세게 나타나는 양상이다. 숏팬츠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G마켓은 45%, 엔조이뉴욕은 93% 증가했다. 그리고 G마켓의 민소매 티셔츠 판매량은 10%, 데님 소재 미니스커트는 15% 늘어났다. 경기침체로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됐지만, 과감한 옷차림을 보여줄 수 있는 상품 매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초미니 숏팬츠와 미니스커트 불티
노출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중문화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올 여름 엄정화 이효리 등 ‘섹시 코드’를 대표하는 여가수들이 컴백했고, 올해 상반기 개봉한 영화들에서도 노출을 꺼리지 않는 여배우들이 스크린을 누볐다.
영화평론가 하재봉 씨는 “ ‘비스티 보이즈’의 윤진서, ‘흑심모녀’의 이다희, ‘날라리 종부전’의 박정아 등 올 상반기 개봉 영화의 여배우들이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해 과거 트렌드 영화보다 노출 수위를 높였으며, 8월 개봉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예지원, 현재 촬영 중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인도’ ‘쌍화점’에서 김민선 송지효 등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노출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한 노출은 새로울 것도 없다. 노출 트렌드의 변화는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더 ‘정직하게’ 드러난다.
남성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심정희 패션 디렉터는 노출의 사회적 수용 정도를 트렌드에 민감한 TV 드라마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드라마는 가족이 함께 시청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지요. 그런데 갈수록 여자 탤런트의 노출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요. 그만큼 노출이 가족이 함께 보기에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죠.”
현재 방영 중인 SBS 주말드라마 ‘행복합니다’에서 여주인공 김효진은 가슴골이 다 드러나는 비키니로 몸매를 뽐냈다. MC 현영은 가슴선이 완전히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원피스를 입고 예능 프로그램을 활발히 누비는 중이다.
초등학교 교사 김은진(36) 씨는 “이제 연예인들이 그런 옷을 입고 TV에 출연해도 야하다거나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다. 대중이 모두 ‘노출 불감증’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뒤태 관리로 번지는 노출 인더스트리
더욱 과감한 패션으로 가슴의 일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가슴에 주입하는 보형물 크기도 증가하는 추세다. 유방확대, 지방흡입에 국한됐던 보디 성형의 종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상체에서 하체로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년간 제일모직 등 국내 패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한 동아방송예술대 패션스타일리스트학과 최원경 주임교수는 “80년대 초반만 해도 기성복 라인 중 ‘탱크톱(가는 어깨끈이 달린 민소매 티셔츠)’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탱크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반. 노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노출 수위가 이제 가슴 계곡을 일정 부분 드러내는 데서 더 나아가 등을 모두 노출하는 ‘뒤태 신드롬’으로 번졌다. 특히 최근 주요 시상식장에서 김윤진 등이 입었던 백리스 드레스들은 일반인의 패션 트렌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패션스타일리스트 박명선 씨는 “올 여름 패션의 가장 큰 트렌드는 뒤태, 즉 등과 어깻죽지 뼈로 이어지는 ‘U라인’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많이 등장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쇼핑몰 쉬즈굿닷컴 이승원 팀장은 “다양한 유형의 뒤태 노출 아이템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캡브라가 내장돼 있어 속옷을 입지 않고 걸칠 수 있는 티셔츠, 뒷부분이 얼기설기한 레이스로 된 민소매 티셔츠 등 다양하게 변주된 디자인이 쇼핑몰의 인기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들도 노출 패션에 관한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5월 개봉한 ‘날라리 종부전’의 박정아(오른쪽)와 현재 촬영 중인 ‘미인도’의 추자현.
미니스커트의 유행에 맞물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아이템은 슬립이다. 비비안 디자인실 우연실 실장은 “치마 아래로 슬립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슬립의 전체 길이를 점점 짧게 제작한다”고 말했다. 비비안에 따르면 로라이즈 스타일(허리선이 골반 부위에 걸쳐진 모양)의 하의가 늘어나면서 팬티 허리선이 겉옷 위로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어진 ‘골반 팬티’가 인기를 끄는 중이다.
노출을 위해 보디케어 관련 화장품을 찾는 소비자와 이를 좇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로레알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한국 보디케어 시장은 3500억원 규모. 2006년 1700억원, 2007년 2100억원 등 매년 급상승 중이다. 이 가운데 부위별 체형 관리, 셀룰라이트 감소 등 몸매 관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제품군이 크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올해 새로 등장한 보디 관련 신제품은 레이저 등 의학적 콘셉트를 표방한 제품이 주를 이룬다. 최근 비오템은 ‘셀룰리 레이저’를, 로레알파리는 ‘퍼펙트 셰이프 레이저’를 각각 선보이며 레이저처럼 정확하게 군살 관리를 해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클라란스가 운영하는 피부관리센터 ‘스킨스파’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관리 프로그램은 한국 여성들을 위해 특별히 개발한 6주짜리 ‘포 핸즈 슬리밍 트리트먼트’다. 두 명의 관리사가 네개의 손으로 몸매 구석구석의 군살을 꼼꼼히 관리해준다는 설명이다. 신체 부위별로 특별한 관리를 바라는 한국 여성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노출 위한 女心 유쾌 상쾌한 준비
2008년 여름을 대비한 여심(女心)은 노출을 위해 몸매 관리를 미리 ‘기획’하는 세태에 이르고 있다. 비만전문센터인 영클리닉 조영신 원장은 “환자들과 상담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노출에 대비해 시술을 결심했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영클리닉은 2006년 이후 환자 수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복부, 허벅지처럼 움직이는 데 지장을 주거나 옷 입는 데 불편한 숨은 살을 관리하는 것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가슴과 팔이 연결되는 겨드랑이 아랫살, 종아리 뒷살 등 세분화된 부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디 성형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최신 트렌드다. 리젠성형외과 김우정 원장은 “얼굴에 대한 성형 관심이 몸으로 옮겨가 최근 1년간 보디 관련 성형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보디 성형 건수가 크게 늘어난 데는 200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를 통과한 가슴 보형물 ‘코히시브 실리콘젤’ 덕분이다. 압구정 에비뉴성형외과 이백권 원장은 “미국에서는 2006년 11월, 코히시브 실리콘젤 사용 허가 이후 유방확대술이 6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며 “국내에서도 유방확대술 상담과 시술이 최근 들어 유례없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눈-코-턱-가슴 순으로 성형 범위를 넓혔던 여성들이 이제 눈-코-가슴 순으로 수술을 주문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더욱 과감한 패션으로 가슴의 일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가슴에 주입하는 보형물 크기도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시내 성형외과 다섯 군데에 가슴 보형물 크기 증가도를 문의한 결과, 1992년 이전에는 130~150cc의 A컵에 만족하는 여성이 많았다면 약 5년 전부터는 200~250cc의 B컵을 요구하는 환자가 대세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350cc 이상의 풍만한 가슴을 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유방확대, 지방흡입에 국한됐던 보디 성형의 종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상체에서 하체로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랜드성형외과 유상욱 원장은 “올해는 처지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볼륨감 있게 끌어올리는 ‘힙업(hip-up)’ 시술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엉덩이가 위로 올라가면서 다리 또한 길어 보여 수술 후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이렇게 자신 있는 노출을 위해 기획하고 관리하며, 애정을 쏟는 트렌드가 확대된 이유가 몸매를 드러낼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 연예인들의 자극적인 패션에 영향을 받고, 서구적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노출의 심리적 허용 범위는 날로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노출은 어떻게 ‘진화’할까.
뜬금없게도 자연환경 변화에 따라 노출 패션의 수명과 수위가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동아방송예술대 최원경 교수는 “몸을 많이 드러내는 노출 패션 아이템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날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통 봄 여름과 가을 겨울로 나뉘어 진행되는 패션쇼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옷을 계절에 맞춰 분류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옷들은 날로 가볍고 간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날씨가 더워진 만큼 몸을 많이 드러내는 옷들과, 이런 옷들에 맞는 섹시한 디자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좋든 싫든 노출은 앞으로도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