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스포츠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B사는 휴지조각과 같다”며 자신의 이사 취임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강조했던 전재용 씨는 올해 2월28일 이사직에서 사임한 뒤 4월21일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같은 날 20여 개의 사업 목적이 추가됐으며, 발행할 총주식 수도 4만주에서 100만주로 늘어났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재용 씨가 외조부에게 받은 채권이 사실상 전두환 전 대통령이 증여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김용찬)는 7월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 씨가 서대문세무서를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재용 씨에게 증여세 77억원을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재용 씨를 둘러싼 증여 부분의 판단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돼왔다. 2004년 2월 검찰은 재용 씨가 2000년 12월 말경 외조부 이규동 씨에게서 국민주택채권 2771장(액면가 167억원)을 증여받고 이에 대한 증여세를 포탈한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조세) 혐의로 재용 씨를 기소한 바 있다.
외삼촌이 운영하는 무역회사 대표에도 취임
이후 3년여 간 1심과 항소, 상고, 파기환송심까지 이어진 끝에 결국 지난해 채권 1013장(액면가 73억원)은 전 전 대통령에게서 증여받은 것으로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벌금 28억원, 집행유예 3년이 최종 선고됐다. 나머지 1758장(액면가 93억원)에 대한 조세 포탈 혐의는 최초 매입 자금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세청은 재용 씨에게 증여세를 부과, 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전 전 대통령 증여 외 채권과 관련한 조세 포탈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를 파기하자, 국세청은 재용 씨에게 전 전 대통령과 외조부의 증여에 대해 각각 증여세 39억원과 41억원을 청구했다. 재용 씨는 이에 불복해 국세심판원(현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재용 씨는 검찰 수사 및 법원 심리 때와 마찬가지로 부친에게 채권을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결혼축의금 20억원을 외조부가 증식해 그 자금을 채권으로 돌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6년 6월 국세심판원은 재용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자 재용 씨는 그해 9월 증여세를 부과한 서대문세무서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 사건 기록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 역시 차남과 함께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가 이듬해 취하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재용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재용 씨의 모든 채권을 전 전 대통령에게 증여받은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증여 자금의 출처 관계를 더욱 명확히 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행정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외조부 이규동 씨가 평소 전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 구실을 한 점 △외조부의 채권 매입 자금 출처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은 점 △재용 씨가 축의금 조성 및 증식 경위에 대한 객관적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재용 씨가 외조부에게 받은 채권도 모두 전 전 대통령이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수년간 휴면상태로 방치돼 있던 회사
외조부에게 받은 1758장의 채권에 대해선 출처자를 규명할 수 없다는 파기환송심 판결을 법원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형사가 아닌 과세처분 판결이라는 점에서 판단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결론만 놓고 본다면 검찰이 자금세탁 등으로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한 외조부의 증여 채권 출처에 법원이 나서서 ‘방점’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
법원의 판결 이후 재용 씨의 행보는 과연 어떨까.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재용 씨가 지난 4월 기업 인수합병(M·A) 투자 및 자문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한 법인의 대표이사직에 취임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회사는 재용 씨의 전처인 최모 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B법인. 사업 경영 컨설팅, 부동산 임대 및 공급이 주요 사업이었다. 수년간 휴면 상태로 방치돼 있던 이 회사에 재용 씨 이름이 등장한 것은 2006년 9월. 지난해 재용 씨와 결혼한 탤런트 박상아 씨가 감사, 재용 씨가 등기이사로 취임한 것이다.
재용 씨는 당시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B사는 휴지조각과 같다”며 자신과 부인의 이사 및 감사직 취임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B사는 올해 2월25일 주소지를 서울 서초동 16××로 이전한 뒤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였다. 재용 씨가 2월28일 이사직에서 사임한 뒤 4월21일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같은 날 20여 개의 사업 목적이 추가됐으며, 발행할 총 주식 수도 4만주에서 100만주로 늘어났다. 재용 씨가 외관상으론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이 법인의 덩치를 키우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재용 씨가 지난 4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B법인.
기업 M·A 업계 관계자들은 B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공통된 반응을 보인다. 한 창업투자회사 대표는 “기업 M·A와는 관계없는 상하수도 공사, 창호, 잡철물 공사, 미장 방수 타일 공사 등의 업종까지 사업 목적에 추가한 것으로 봐선 법인 자체가 변경된 사업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운영되거나, 아예 아무런 사업을 하지 않는 명목상 회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 목적, 발행 주식수 급변 ‘의문투성이’
한편 재용 씨는 지난해 외삼촌 이창석 씨가 운영하는 무역회사 S사의 대표이사직에도 취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B사와 S사는 서초동 S아파트의 같은 호수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가 올해 2월 다시 똑같은 곳으로 본점 주소지를 이전했다. S사는 오디오 수입 쪽에서는 꽤 알려진 회사다.
77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할 재용 씨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던진다. 2004년 검찰이 본격적으로 재용 씨의 괴자금을 수사한 이후 아직 일부 채권의 행방이 미궁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가 사업 자금을 어떤 방법으로 조달하고 그 출처는 어디일지가 가장 먼저 의문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는 B사의 대표이사직에 취임한 배경과 구체적인 사업 실체, 그리고 증여세 소송 패소 등에 대한 심경을 듣기 위해 B사 관계자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재용 씨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B사 관계자는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기자의 연락처를 받은 뒤 “(재용 씨에게) 인터뷰 의도를 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기자는 재용 씨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직원이 전화를 받으면서 회사명을 B가 아닌 M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하나의 주소지에 앞서 언급한 두 법인 외에 또 다른 회사가 존재하는 것일까. 재용 씨를 둘러싼 의혹은 점점 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