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 ‘리틀 시카고’(2008)
‘동두천 : 기억을 위한 보행, 상상을 위한 보행’전은 2006년 뉴욕 뉴뮤지엄에서 미술기관 간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마련한 파트너십 프로그램 ‘접점으로서의 미술관(Museum as HUB)’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한국뿐 아니라 이집트 멕시코 네덜란드 미국의 비영리 공공 미술기관들이 ‘이웃’이라는 주제로 각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전시장에서 굳이 동두천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동두천은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 역사와 유난히 닮은 곳이다. ‘미군부대’ ‘재개발’이란 키워드가 떠오르는 동두천에는 국가, 정치, 경제 등 복합적인 이데올로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모습은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풍경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4명의 작가는 미술로 사회에 개입하기 위해, 혹은 타 지역의 낯선 사람이 지역 커뮤니티로 침투하기 위해 적절한 접근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일상적인 대화들,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인터뷰, 기록과 문학자료 조사, 현장답사, 교육적 워크숍, 토론회 등이 선행됐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 작품을 위한 사전조사라기보다는 작품의 일부, 즉 과정으로서의 미술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 역사와 닮은꼴노재운 ‘총알을 물어라!’(2008)
작가 김상돈의 ‘디스코플랜 : 캠프 님블 반환지 재생 워크숍’은 동두천을 좌지우지한 거대구조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주민 참여토론 작업이다. 작가는 치유와 재생 효과가 있는 식물 씨앗을 넣은 비행체를 주민들과 함께 제작해 철책 너머로 날리는 미술 퍼포먼스도 벌인다. 퍼포먼스를 통해 그는 동두천 주민들의 주권을 상기시키고 자연친화적인 토양 재생 방법을 제안한다.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 ‘4분간 숨을 참아라’는 동두천 상패동에 있는 공동묘지를 소재로 삼았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이 묘지의 ‘무연고’ 망자들은 극빈층 내국인부터 클럽 종사자, 밀수업자, 폭력배, 마약거래상, 최근의 외국인 노동자, 미군 혼혈사생아까지 동두천의 정치사회 변동에 따라 표류하다 사라져간 소수자들이다. 이 작업은 동두천에서 누가 살아 있고 죽었는지, 누가 침묵을 강요당하는지에 대해 관람객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도록 이끈다.
정치사회 변동 따라 사라진 소수자 추모김상돈 ‘Discoplan’(2007)
노재운의 웹 퍼블리싱 작품 ‘총알을 물어라!’는 전시(戰時)에 마취 없이 수술을 견뎌야 하는 군인에게 군의관이 사용했던 표현이라고 한다. 작가는 전쟁이나 미래에 대한 영화적 지각이 대량 보급, 대중화되면서 전쟁이나 미래의 구체적 모습까지 관객들에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고승욱은 싱글채널 비디오 ‘침을 부르는 노래’에서 ‘양공주’가 아닌 ‘개인’이 되고자 하는 개개인의 저항을 다뤘고, 정은영 역시 싱글채널 비디오 ‘The Narrow Sorrow’에서 최근 동남아, 남미, 러시아 여성들이 대부분인 미군 상대 클럽 종사자들이 거주하는 초라하고 기형적인 집들에 주목했다. 특히 영상과 함께 거리에서 채집한 말소리와 예배 소리 등을 쫓아 이들의 동선을 비디오 보행으로 짚어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전시는 8월24일까지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다(문의 02-760-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