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6

2006.12.26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류비셰프·피터 드러커 1분 1초까지 효율 추구 … 틱낫한 스님·소설 ‘모모’는 현재 시간에 충실

  •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입력2006-12-19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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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류비셰프처럼 시간을 정복할 것인가, 아니면 모모처럼 시간을 끌어안을 것인가. 시간관리에 도움을 주는 도서들.

    시간을 파는 봉이 김선달 같은 남자가 있다. 어쩌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직장에, 은행에 팔아버렸다. 온 세상 사람이 갈망하지만 시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을 팔겠다는 것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의 주인공 TC(Tipo Corriente)는 어느 날 자다 말고 자신의 인생을 대차대조표로 정리했다. 그랬더니 고작 18평짜리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는 데 무려 35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TC가 빚진 건 돈이지만 결국 시간을 팔아버린 꼴이었다. 그는 인생을 저당잡힌 채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을 팔아버렸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룰 시간이 있으리라는 희망은 이렇게 되면 망상에 불과하다.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이왕 돈을 벌기로 했다면 시간만큼 좋은 상품이 없다.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TC는 플라스크에 5분을 넣어 사람들에게 팔지만, 우리가 알레고리로 가득 찬 소설 속 주인공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나 현실 속 우리나 알량한 아파트 한 채 갖자고 인생을 저당잡힌 채 살고 있는 거야 같지만, 아무리 궁리해봤자 시간을 되찾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일분일초까지 시간을 최대한 측정하고 정량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위대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도 이런 방법을 신뢰했다. 피터 드러커는 9개월마다 한 번씩 3주 동안 자신이 일한 시간을 기록하도록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다. 한데 경영의 달인 피터 드러커조차 시간의 대차대조표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도의 집중력 발휘 땐 1시간이 삶을 바꿔



    시간관리 분야에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초인이 있다. 구소련 과학자인 류비셰프다. 류비셰프는 자신의 시간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관리하고 계획했다. 26세이던 1916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일기에 자신의 일상과 소요되는 시간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날에도, 전쟁 기간에도, 병원에 입원해서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날에도 시간 기록을 멈추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했다.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쓴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에 따르면, 류비셰프는 자신이 쓴 시간을 계산하고 통계를 내는 시간통계 방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논문 한 편을 준비하는 데는 14시간 30분이 걸리고, 집필에는 29시간 15분이 걸렸다는 것을 시간통계법을 통해 계산했다. 연말 결산하듯 해마다 시간결산 작업을 통해 내년에는 몇 편의 논문을 쓸 수 있을지 시간운용 계획을 작성할 수 있었다. 또 5년마다 시간을 묶어 다시 통계를 냈는데, 이런 작업을 통해 말년에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회계장부와 다름없는 수준의 시간관리다.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류비셰프처럼 완벽한 시간정복자가 되기는 어렵겠으나 시간경영에 도움을 주는 책들은 여럿이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개발자인 하이럼 스미스의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은 시간관리를 통해 인생관리를 이끌어낸다.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전통적인 시간관리법을 탈피해서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만이 우선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진정한 시간경영이라고 충고한다.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딱 1시간만 미쳐라’는 시간관리보다는 1시간의 집중력을 강조하는 책이지만 귀담아들을 만하다. 저자 데이브 카라니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집중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특수기동대에서 법집행관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폭력적 상황에 직면하면 살아남기 위해 아주 짧은 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초인적 집중력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결정적 1시간은 삶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중요도 순으로 시간을 나눠 관리하고, 시간의 가치를 따져 일할 것을 권한다. 1시간 동안 잔디를 깎아야 한다고 치자. 내가 할 것인가 사람을 쓸 것인가.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 어느 편이 더 이익인지를 따지면 된다.

    류비셰프, 피터 드러커, 하이럼 스미스, 스티븐 코비처럼 시간경영을 하자면 모든 시간의 쓰임새를 알고 있어야 한다. 류비셰프처럼 시간의 성직자 같은 태도로 시간을 계량하다 보면 매시간이 자기 삶의 일부분임을 깨닫고 시간을 정복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을 다루는 다른 방식도 있다. 주어진 시간을 충만함으로 끌어안는 일이다. 류비셰프처럼 살 수 있지만 모모처럼 살 수도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의 필독서로 등장하며 다시 주목받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소설 속에는 모모의 친구인 푸지 씨가 등장한다. 푸지 씨는 날마다 불평을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릴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그러자 시간도둑인 회색 신사가 들이닥쳐 시간을 계산해준다. 회색 신사의 계산에 따르면 푸지 씨는 어머니와 이야기하느라 1시간, 집안일을 하는 데 1시간, 다리가 불편한 다리아 양에게 꽃을 갖다주는 데 30분, 여기에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시간까지 합해 무려 1,324,512,000초를 낭비하며 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배고픈 시간이냐 배부른 시간이냐
    기쁨과 사랑 없다면 황제라도 노예의 시간

    회색 신사의 말을 듣고 시간을 절약하기로 결심한 푸지 씨는 삶의 태도를 바꾼다. 전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손님을 맞지 않고, 무뚝뚝하게 손님의 시중을 들며 불필요한 시간을 아낀다. 그러자 30분이 걸리던 일이 2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하니 조금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을 절약하자 삶은 점점 빈곤해졌고 심지어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시간은 부족하고 삶은 궁핍해졌다.

    소설 속에서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모모가 찾아오지만, 현실에서 시간이란 한 사람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고 결국 각자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시간은 삶이고 삶은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틱낫한 스님의 ‘현재를 살아라’라는 메시지나 알프레드 디 수자의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같은 잠언은 모두 현재의 시간을 충만하게 살라는 가르침이다.

    모모의 친구인 청소부 베포 씨는 ‘청소를 할 때는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하지 말고 오직 다음에 딛게 될 걸음만 생각하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속삭인다. 기쁨과 사랑이 없다면 황제라 할지라도 노예의 시간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류비셰프처럼 살 것이냐 모모처럼 살 것이냐, 시간을 들여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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