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우맨’
투명인간이 본격적인 소재로 사용된 것은 1887년 영국작가 H.G.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언급한 지게스의 반지 이야기도 투명인간에 대한 것이다. 양치기 지게스는 어느 날 우연히 반지 하나를 얻는데, 반지의 보석을 돌리면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된다. 지게스는 반지로 왕비를 유혹하고 그와 공모해 왕을 살해한 뒤 그 자리를 차지했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안전하게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면’ 인간은 어디서나 불의를 행하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 ‘할로우맨’도 지게스의 반지를 얻게 된 과학자가 자신에게 잠재한 악한 본성에 지배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최고의 과학자들을 동원해 ‘할로우맨(투명인간)’ 실험에 착수해 마침내 고릴라를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한다. 담당 과학자 카인은 국방부 몰래 자신에게 투명인간 실험을 해보는데, 실험은 성공하지만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 그의 몸에 숨어 있던 욕망과 악한 기운이 분출된다.
지게스의 반지나 할로우맨 이야기 모두 이를테면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설파한다. 이 같은 성악설적 시각은 탈(脫)가치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 딱 들어맞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의 이기심이 사회를 합리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주의는 경제학의 진리로만 머물지 않고 이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믿음이 됐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어서 이기적일수록 효율적이라는 논리는 이리 대 이리의 싸움 같은 사익(私益) 추구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성급하다. 그보다 선성과 악성이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손에 얻은 프로도의 내면처럼 끝없이 갈등하며 공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할로우맨’의 지게스가 될 수도 있지만 ‘스파이더맨’의 피터처럼 초능력을 의로운 일에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난 뒤 학생들의 면역기능이 향상됐다는 ‘테레사 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요즘 우리 사회에 퍼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악성 바이러스에는 ‘테레사 효과’라는 항체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