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2007 남북 정상회담 2차 회의를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북정책은 이념에 따라 이 두 가지 방향으로 확연히 갈린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까지 지난 10년간 진보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북정책은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남북철도 개통 등이 그 산물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진보진영에서는 상시적인 남북 교류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북한의 개방을 촉진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일방적인 대북지원으로 김정일 체제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각차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강행과 6자회담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이 크게 줄어들면서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에 들어와 남북관계가 수시로 단절되면서 햇볕정책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했다.
첫 단절은 2004년 5월 남북 장관급회담 결렬 직후에 발생했다. 그해 7월 남북 장성급회담이 무산된 이후 1년 가까이 남북정부 당국자 간 접촉이 전면 중단된 것.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대규모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한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데 따른 앙갚음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분분했다. 비슷한 시기에 6자회담도 중단됐다.
당시 통일부 장관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였다. 당시 정 장관은 남북관계 재개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어렵사리 2005년 6월 북한을 방문한 정 전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이른바 ‘중대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10월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 등 현대아산과의 사업도 중단했다.
진보-보수 뚜렷한 시각차…당선자 따라 유동적
2006년 3월에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 계좌를 동결하는 등 금융제재를 가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었다. 급기야 10월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반발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남북관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하지만 이 난국을 타개한 것은 남한이 아닌 미국이었다.
남한 정부는 북한 측에 비료와 식량을 끊임없이 지원하면서도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포용정책의 핵심은 경협을 통한 대북 지원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게 하자는 것인데,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은 이 같은 대북 접근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대북정책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궤를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정 후보는 기존 ‘햇볕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는 ‘선(先)핵폐기’보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운용, 경제지원, 북미관계 개선 등 긴장완화 조치를 병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선(先)핵폐기와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상호주의적 포용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이다. 여의도연구소 안병직 소장은 “북한은 외부의 원조 없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북한 처지에선 남한의 원조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상호주의 초기 1~2년은 남북관계가 긴장감을 유지하겠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북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이 후보보다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공약으로 내놨다.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로 한반도 긴장완화가 이뤄진 다음에야 상호주의에 입각한 경제지원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경제지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오른쪽 가운데)과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왼쪽 맨 앞)가 6월1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을 읽고 있다.
임기 1년 내 추진해야 할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과제는 여타 분야와 다른 특징을 가진다. 국내 정책은 신임 정권의 허니문 기간에 국민의 기대가 고조되고 집단 이기주의의 최소화 등으로 실행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북 분야는 역대 정권의 경험상 이런 통념이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즉,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새 정부 길들이기’로 오히려 정책이 표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평양 정권은 그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협상 거부 등으로 서울을 압박했다. 참여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임기 말 허겁지겁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도 그런 맥락의 일환이었다.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로 서울을 고립화할 수도 있다. 집권 초기 남북 간 기(氣)싸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대북정책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고차방정식이다. 각종 외부 요인에 의한 독립변수와 대북정책이라는 종속변수 간의 함수관계가 복잡하다. 첫째, 대북정책은 북핵문제 해결과 연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북미 간 이익을 남기는 주고받기에 의한 거래와 타협으로 과거(기존에 제조된 핵무기), 현재(영변 플루토늄), 미래(고농축 우라늄)에 걸친 3대 핵문제를 어디까지 해결할 것인지는 남북관계의 중요한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둘째, 참여정부가 평양과 합작해 만들어낸 수많은 선언과 합의를 새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이행할지를 판단하는 것도 집권 초 대북정책의 중요한 바로미터다. 정상과 총리회담의 이행은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은 어음결제 이론으로 차기 정부의 이행을 구속하려 한다. 국내 언론 관계에서 ‘대못질’은 내부 조치만으로 쉽게 제거할 수 있지만, 남북관계의 대못질은 뽑아내는 데 고통스런 시간과 많은 비용을 수반할 것이다.
셋째, 차기 정부는 참여정부가 만든 가상의 북한, 보고 싶은 북한이 아니라 실존의 북한을 어떤 기준으로 상대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처지를 살피기보다 김정일과 평양 정권의 선호(選好)와 반응만을 고려함으로써 모든 정책의 수행 기준이 남한이 아닌 ‘북한 정권’이 돼버렸다. 이러한 교류와 협력 일변도 대책은 채찍(stick)과 당근(carrot)을 동시에 쥔 남한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도 ‘변하지 않는 남한’이라는 인식을 북한에 심어줬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대남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울을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지 않게 됐다.
1년 안에 북핵 실질적 해결이 최우선 과제
미국과 일본 정치에는 진자(振子)이론이 있다. 좌우 어느 쪽이든 일방에 치우친 정책, 인물, 가치는 다음 정부에서 반대쪽으로 복귀해 균형을 잡는다는 이론이다. 대북정책은 포용(engagement)이라는 용어의 진정한 의미대로 개입과 관여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 이상의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균형 잡힌 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첫째, 1년 안에 북핵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핵을 머리에 이고 교류와 협력만을 추구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 물론 북핵 폐기는 워싱턴과 평양 간 밀월과 힘겨루기에 의해 진행될 테지만, 서울과 워싱턴 간의 긴밀한 협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1991년 미국의 ‘넌-루가(Nunn-Lugar)법안’에 의한 우크라이나 핵폐기 방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장 현실적인 핵폐기 방식인 체제 안전과 경제적 보상이라는 두 가지 수단은 북한의 욕구와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산가족 상봉 대폭 확대,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 등 진보정권이 소홀히 다뤘던 분야를 보강해야 한다. 이 문제는 고령화되고 있는 대상자들을 감안해 신속히 추진돼야 한다. 1975년 유럽에서 추진된 헬싱키 프로세스의 동북아 버전을 도출하는 데 주력하도록 한다.
셋째, 대북정책을 북한의 개혁개방과 연계해야 한다. 북핵 포기가 이뤄지면 북한의 개혁개방 일정에 맞춰 북한이 효율적인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종합지원 계획을 마련한다. 남북한 경협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추진해, 북한 주민에게 경제 마인드를 전파하는 동시에 북한 근로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끝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정부 내 기형적인 추진체계를 조정해야 한다. 기존의 대북정책은 ‘민족공조’라는 코드에 집착해 불균형적으로 진행돼왔다. 선공후득(先供後得)이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전략도 최소한 받아낼 내용과 시점은 예상할 수 있도록 적용돼야 한다. 지원에 초점을 맞췄던 대북 전략은 국민 공감대라는 저울로 평가받도록 검증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오직 한 가지 기준에 따라 인류 보편적 가치인 북한인권 개선에 관한 유엔 결의안에 기권하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좋은 행동(good behaviour)’과 ‘나쁜 행동(bad behaviour)’을 구분해야 한다. 좋은 행동을 했을 때는 교류협력에 의한 민족공조 정책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고,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국제공조를 통해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분단 이후 대북정책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