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전성은 교육혁신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내내 공무원과 위원회 조직의 지나친 확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정부조직은 불가피한 개혁대상으로 꼽혀왔다. 공무원 처지에서는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공무원 수와 위원회 증가의 원인을 설명했다. 먼저 국민의 정부 시절 IMF 구조조정에 의해 줄인 공무원 수를 회복하면서 늘어난 측면이 있다는 것. 또 사회양극화와 자유무역협정(FTA),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등 새로운 행정수요에 대응하고, 전문화·세분화된 선진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을 늘렸다는 것이다.
정부는 위원회에 대해서는 사회다원화와 거버넌스형 정부 운영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합의제 형태의 조직 운영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정부정책의 투명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위한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김동욱 서울대 교수(행정학)의 설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무원들에게 정부의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소프트한 업무 혁신과 조직문화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시스템 개선작업을 했다. 하지만 조직은 그대로다. 시스템이 바뀌면 일정 부분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 추가로 필요한 조직도 생기고, 없어져야 할 조직도 있게 마련이다. 새로운 일과 기능이 생기면 당연히 그 분야에 공무원을 충원해야 한다. 반면 없어진 일이나 기능을 찾아내 줄이거나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늘리기만 했지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다.”
‘글로벌 정책’에 무게 두는 조직으로 바꿔야
김 교수는 또 “조직이 늘어나면 자꾸 남의 떡을 차지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청와대에 각종 위원회가 생기고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인원이 늘어난 것도 바로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정부조직은 집권자의 정치이념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집권자가 정부조직에 대한 많은 연구와 고민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데도 인수위원회에서 졸속으로 처리하면서 빚어진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의 정부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작고 강한 정부론’을 대선 공약으로 내놨다. 공무원 수는 현재 95만명 수준으로 동결하면서 ‘대(大)부처 대(大)국’ 체제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공무원 수 동결을 조건으로 ‘통합적 정부조직’을 표방했다. 표현방식만 달랐지 이 후보나 정 후보 모두 현 수준에서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더 나아가 작지만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축하는 한편,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는 ‘연방제 국가론’을 내세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적 추세는 ‘작은 정부’다. 이는 이념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와는 무관하다. 국가기구의 비효율을 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좌파나 우파 할 것 없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입장이 아니더라도 정부기구를 확대하거나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행정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경쟁력도 없으면서 신분만 안정된 공무원의 현재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작은 정부’보다는 ‘전략적으로 강한 정부’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나 해야 할 ‘지방자치적 정책’보다는 ‘글로벌 정책’에 무게를 두는 정부조직으로 재편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 두 개 메고 정부개혁 나서라”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월4일 과천청사에서 열린 공무원 격려 오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외침은 1980년대부터 각국에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맨 앞에 섰다. 세계화가 급격히 진전되는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의 이동은 걷잡을 수 없이 자유로워지고 빨라졌다. 수천, 수조원의 국제투자 자금이 하루에도 수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환율이 경상수지의 적자와 흑자에 의해 결정됐지만, 이제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됐다. 노동인력 또한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존재는 수입이나 수출로 대체할 수 없는, 한 나라의 국제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조직 줄이기 앞서 효율·투명화가 선결과제
2008년 2월 국정 책임자로 등장할 한국의 새 대통령은 정부개혁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새 대통령은 적어도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조직개편의 유혹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 아래서 중앙인사위원회와 행정자치부, 인사국을 통합한 것 외에는 조직개편이 없었기에 새 대통령은 조직개편에 유혹되기 쉽다. 조직개편을 단행하면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은 칼을 대기가 쉽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보면 공공부문을 제외하곤 우리 정부조직의 규모는 크지 않다. 정부조직을 줄이기보다는 조직의 효율화와 투명화, 반부패를 위한 조치가 앞서야 한다. 조직개편은 그 다음이다.
한 예로 일본은 2001년 21개 성청(省廳)을 12개 성청으로 통합했다. 1960년 자치청을 자치성으로 승격한 이후 처음 단행한 개편이었다. 하지만 6년이 흐른 현재, 과거의 성청 단위를 넘어 과(課) 수준으로 통합된 곳은 2곳밖에 없다. 1000개에 이르는 과 가운데 2곳밖에 화학적 결합이 일어난 곳이 없다는 의미다. 갈등과 적응 비용에 비해 효과가 적은 것이 조직 통폐합이다. 단, 현 정부에서 급속하게 늘어난 위원회는 실효성 여부를 따져 어느 정도 줄여야 한다.
둘째, 차기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는 정부에 머물러서는 소득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양한 개혁 카드가 이미 제시됐고, 거기서 구호와 색깔을 바꾸는 것으로는 개혁의 ‘피로’를 돌파할 수 없다.
이제 공공부문 개혁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때다. 실제 막대한 예산을 아끼고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을 개혁 대상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 대해선 신뢰와 투명성, 청렴, 책임성을 요구하고 공기업과 산하기관엔 ‘돈’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국민이 실제 체감하는 서비스를 개혁의 모티프로 삼아야 한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개혁과정에서 노출한 가장 취약했던 부분은 ‘국민체감’이었다. 행정과정과 정부조직만 만지고 있으면 국민은 불감증에 걸리기 쉽다. 건축 세무 방범 민원 등 일상에서 접하는 정부서비스와 공무원이 확 바뀌었다고 느낄 때 국민은 감동하고 지지하게 된다.
넷째, 공동체의 회복과 복원이다. 철저하게 무너진 한국사회 내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회복하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야 할 때다. 한국사회처럼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도 드물다. 영국 정부조직만 보더라도 ‘공동체 및 지방정부부’라는 부처가 별도로 있을 만큼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 정부도 이제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눈뜰 때가 됐다.
개혁은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다. 한자로 하면 가죽을 바꾸는 일이고(改革), 영어로 하면 뼈대를 바꾸는 일이다(reform). 갈 길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손익을 정확히 계산하며, 최대한의 사회적 합의를 구축해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
중국에서 개혁을 주도했던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한 말이 있다. “나는 매일 두 개의 관을 메고 개혁 현장으로 갔다. 하나는 나의 관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하는 관료를 위한 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