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9일 북한 노동당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인천경제구역 비전21홍보관을 방문, 안상수 인천시장과 함께 안내 로봇을 작동해보고 있다.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개발을 모델학습하고 있다.
“평양 공연은 뉴욕필의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남북한 통일을 위해서는 위대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뉴욕필 자린 메타 대표는 12월11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말에 빗대 평양 공연의 의미를 설명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이 외부세계를 어렴풋하게나마 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언뜻 순항 중으로 보이는 6자회담 프로세스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요구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하면서 비탈에 선 모습이다. 고비를 쉽게 넘기리라는 낙관과 교착에 들어가리라는 비관이 엇갈린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임기 말 치적을 쌓기 위해 움직였고,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며 ‘흐름 조정’에 나섰다. 선택지를 넘겨받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10문10답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반도 문제를 풀이했다.
[1] Q_ 노무현 정부는 왜 임기 말까지 종전선언에 목을 맸나.
A_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모여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이벤트는 ‘압록강도 놀랄’ 사건이다. 북한의 핵폐기가 전제돼야 하는 평화체제 프로세스에서 종전선언을 분리해낸 것은 한국 측 구상이었다.
요컨대 북한 핵폐기 이전의 종전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 과정의 중간 성과물로서 상징적 세리머니를 개최해 ‘치적’으로 삼으려는 현 정부의 욕구가 담긴 것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실체적 종전은 ‘선언’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데도 치적에 목마른 집권 측이 임기 말까지 종전선언에 올인했다”고 말했다.
[2] Q_ 대선(12월19일) 이후 노무현 정부의 대북 프로그램은 뭔가.
A_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도 종전선언 이슈에 매달렸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주체가 되는 종전선언이 사실상 물 건너가자 변형된 형태를 들고 나왔다. 종전선언 추진의 ‘마지막 카드’격으로 노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주체가 되는 ‘종전 개시 선언’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내년 1월 김 상임위원장을 서울로 초청해 남북 간 종전(‘신사선언’으로의 남북 간 종전합의)에 합의, 서명하고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3] Q_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의 방미(12월 3~6일) 결과는.
A_ 백종천 실장 일행은 앞서 언급한 변형된 형태의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의 지지를 받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미 두 나라는 “핵폐기 단계로 이행했다는 확증이 보일 때 종전선언 협상을 추진키로 한다”는 ‘뻔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그쳤다. 노무현 정부의 구상에 미국이 고개를 가로저은 셈이다. “안 되는 일을 왜 자꾸 밀어붙이느냐”는 반응도 미국에서 나왔다. △모든 핵 시설과 물질, 프로그램 △핵 물질 및 프로그램의 확산 내용 △우라늄 농축 활동 등에 대해 전면적 신고를 이행할 것을 북한에 촉구함으로써 1월 중 추진을 목표로 진행되던 남북한 간 이벤트에 미국이 어깃장을 놓았다는 분석도 있다.
[4] Q_ 한미 간의 이견(異見)은 도대체 뭔가.
A_ 종전선언은 6·25전쟁 당사자인 미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미국은 참여정부 임기 내 종전선언엔 관심이 없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계속 미국을 압박하는 모습이 혼란(puzzle)스럽다”고 했다. 워싱턴은 ‘핵폐기 확증이 생겨야만’ 종전선언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미국의 ‘타임 스케줄’은 노무현 정부의 그것과는 처음부터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한국이 종전선언을 하겠다면서 미국을 졸라댄 모양새였다”고 꼬집었다.
[5] Q_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방남(11월29일∼12월1일) 결과는.
A_ 북한도 정전체제 해소는 미국과 논의할 사안이라는 의견이지만 대(對)중국, 대(對)미국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남측의 종전선언 제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분석이다. 김양건 부장은 서울에서 김 상임위원장의 방남(訪南) 문제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이 방남했을 때 남측은 평화체제 프로세스의 입구 격인 남북 간의 ‘선언’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은 “추진해봅시다” “…”는 수준으로 답했다고 한다. “추진해봅시다” “…”는 12월19일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김 부장은 대선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고 돌아갔다.
[6] Q_ 평양과 노무현 정부의 ‘밀월’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A_ 12월19일 대선을 기점으로 ‘밀월’ 수준의 협력은 마무리되리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해찬 전 총리(3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5월) 등을 잇따라 평양으로 부르는 등 대선 개입을 시도했지만 신북풍(新北風)은 대선 국면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평양도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했다고 한다. 북한은 대선 국면에서 이 후보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 노무현 정부와 맺은 10·4 공동선언을 어떻게 차기 정부와 잘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라고 한다. 한나라당 인사들도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들을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7] Q_ 6자회담이 삐걱거린 까닭은.
A_ 핵 프로그램 신고 의무와 관련해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비틀거렸다. 10월 이후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등 미국 내 ‘강성’ 정보기관 요원들이 서울 도쿄 등을 오가며 북한과 중동 테러 세력의 연계설 정보를 수집하는 등 ‘네오콘의 반격’ 징후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무부로선 조바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떠나면서 남긴 표정은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고, 6자회담 수석대표 비공식 회담 일정도 북한의 거부로 연기됐다. 평양이 시리아 등 핵심 쟁점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음을, 또는 ‘좀더 고민할 시간’을 원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8] Q_ 선택지를 쥔 북한의 선택은.
A_ 핵 프로그램 신고에서 차질이 생겨 6자회담이 삐걱거리면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나선 북한의 바람은 물거품이 된다. 미국의 조바심을 이용하려면 핵 프로그램 신고 등에서 지연술을 써야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았고 한국의 정권이 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 ‘악수’가 될 수 있다. 평양은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 국면에서 실기(失機)한 기억도 갖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부시 대통령에게 친서를 받은 사실을 중앙TV를 통해 공개한 것은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9] Q_ 2008년 미국의 타임 스케줄은.
A_ 지난해 미국 당국자들은 부시 대통령 임기 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핵 프로그램 신고를 성실하게 마무리하면 상반기 라이스 국무부 장관의 방북으로 이어지게 된다. 평양 고려호텔의 미국 사무실은 정식 연락사무소 또는 대표부로 승격된다. 부시 대통령은 8월8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인데, 이즈음 한반도 정세의 대반전을 상징하는 ‘이벤트’가 이뤄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일-부시가 만난다면 한반도는 격변에 돌입하고,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 물론 북한이 2000년 가을의 실기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북한과 폭넓은 관계개선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10] Q_ 차기 정부와 북한의 관계는.
A_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내년 2월25일 취임하는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 대북정책과 관련한 호의적인 내용을 넣어주길 바란다고 한다. 평양에선 “한나라당이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은 만큼 능동적으로 경협 이슈를 던지자”는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서훈 국정원 3차장으로 상징되는 비공개 채널의 상당 부분이 교체되면 북측에서도 새로운 인사가 등장할 수 있다. 새 정부의 대북기조는 북미관계의 호전 여부와 맞물려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비핵·개방 3000’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새 대통령이 압록강도 놀랄 이벤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