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수능등급제 첫 실시로 2008년 대입은 큰 혼란에 빠졌다.
현재의 교육정책은 1995년 문민정부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수요자 중심과 대학자율화 확대를 제시한 교육개혁안에 따라, 획일적인 ‘시험’ 위주 입시제도가 다양한 선발방식 위주의 ‘전형’으로 전환되고 전형기준, 방법, 선발 일정 등에 대해 대학자율권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정 수준의 대학자율권 제한이 꾸준히 시행됐다. 먼저 노태우 정권에 의해 1991년 학생 선발 자율권 확대 측면에서 부활된 본고사가 그 폐단에 의해 95년 폐지됐다. ‘본고사 금지’가 아예 명문화됨으로써 ‘3불(不) 정책’ 가운데 1불(不)이 이때 확정됐다. 90년대 말부터 대학가에서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모두 불허(不許)를 고수했다.
참여정부의 교육 철학은 ‘평등주의’로 요약된다. ‘3불 정책’을 유지하면서 2003년 7월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대학 서열구조 해체’라는 목표를 설정, 수능등급제 도입을 추진했다. 변별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입시 경쟁을 줄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수능등급제가 처음 실시된 2008학년도 수능 결과, 한 문항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려날 만큼 수능은 변별력을 상실했다. 한편 참여정부 하에서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올해 도시가구의 월 사교육비는 2003년보다 32.7% 증가한 15만2000원에 이른다.
대혼란 수능등급제 전면 손질 불가피
참여정부는 사교육비 절감을 중요 교육정책으로 추진했지만, 각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
또한 차기 정부는 교원평가제 도입도 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뼈대로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교원단체의 표를 의식한 정당들이 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올해 안으로 통과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초 참여정부는 올해 법안을 통과시켜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이 교원평가제 전면 백지화 또는 시행 유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2006년 12월 개정된 지방교육자치법에 대한 수정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개정된 지방교육자치법을 바탕으로 교육감 및 교육의원 주민직선제가 도입돼, 올 2월 부산에서 부산시교육감을 지역 주민들이 직선하는 첫 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개정 법안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교육위원회를 시도 상임위원회로 전환하도록 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 자치를 일반 자치에 예속할 경우 교육이 특정 정당과 정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비전문가가 교육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예산 배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직능 훈련을 무상화한다면 4년제 대학에 대한 무분별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교육이며,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그동안 대학입시 ‘훈련’이 학교 교육의 전부인 양 착각해온 정부가 교육개혁에 앞서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국가의 교육철학을 분명하게 세워놓지 않고는 어떤 교육개혁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거창한 교육개혁안이 지난 정권들의 그것들처럼 대증요법으로 끝날 수 있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쓰임새 있고 경쟁력 있는 교육이다. 외국인과 영어 한마디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노래 한 곡이라도 변변하게 부를 수 있게, 공 하나라도 제대로 굴릴 수 있게, 고등학교만 나와도 어려움 없이 취업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이다. 지난날의 숱한 교육개혁안을 이런 기준에서 판단한다면 그야말로 소리만 요란했다.
△사교육비 경감 △교직 개혁 △수능 개혁 등은 모두 △대입제도 개혁 문제와 하나로 묶인 사안이다. 대입문제를 풀기 시작하면 나머지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대입을 정부가 나서야 할 ‘사회문제’로 간주한다면 한국의 교육개혁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대입문제는 대학이 처리할 문제다. 정부는 그저 대학이 대입문제를 풀어가도록 도와주는 구실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는 고등교육의 평준화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공·사립대학의 서열이나 위신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전문대 교육까지는 국민 누구나 최소 경비로 받을 수 있도록 무상교육화하라는 말이다. 교육세 거둬다가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를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모든 국민이 직능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고등교육의 기회가 보장된다면, 4년제 대학에 대한 무분별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국가가 교육 독점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둘째, 대학의 학생 선발 및 재정 확보 자율권을 보장하는 대학정책을 함께 입안해야 한다. 수능이나 학생부, 고교등급제 같은 것들은 국가 권력으로 장악한다고 통제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학에 사회적 책무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것에 만족하면 된다. 대입 사정에 따르는 절차사항들은 대학이 알아서 할 문제이며, 책임도 대학 스스로 져야 한다.
한편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학정보 공개제도는 더 확대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대학정보 공개제도는 대학의 독선을 예방하기 위한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대학 자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셋째, 공기업 민영화가 기업의 효율성을 높였던 것처럼, 중·고등학교를 비롯한 공교육기관들도 가능한 한 지자체별로 민영화해야 한다. 교원문제도 국가가 나서서 정리하고 조정해가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는 최소한의 교육정책 마련에 만족하면 된다. 소비자인 학부모들이 교육개혁의 선봉에 서서 전담하고 처리하도록 이들의 힘부터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학부모의 교육열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더 발전시켜야 한다. 국민에게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국민이 ‘교육권리’를 좀더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하려면 공교육을 학부모에게 열어놓고 그들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
넷째, 중·고등학교 유형이 다양해지도록 특목고, 자율고, 외고, 대안고 등을 더 설립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각기 달리하는 다양한 학교들이 자유롭게 설립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 학교에 대한 인허가 승인, 감독권, 재정지원권 등도 지자체에 위임한다.
‘무늬만 교육자치제’도 이제는 정리할 때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교육감이라는 명목상의 행정감독관이 아니라, 우리 자녀를 위해 실질적인 교육권을 조력해주는 지자체장이다. 각 지자체장의 지휘, 감독 아래 학교장의 역량이 구체적으로 평가받는다면 학교교육의 성과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국가감독권도 최소화돼야 한다. 대신 학부모의 학교 및 교사 평가권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과정에서부터 교사의 질에 대한 학부모의 평가권이 강화된다면 학교는 학생을 위한 교육서비스 기관으로 변화할 것이다.
다섯째, 세금이나 낭비하면서 국민 학력 증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지금 같은 대규모 학급학교들을 소규모 학급학교로 전환하는 ‘학교 전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초·중등학교는 지역 주민들의 주거 형태를 고려해 아파트단지 내 학급학교나 마을학교, 직장 내 학교 등 소규모로 분산 및 설립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부모와 학생, 교사 간의 친밀한 교육적 작용이 일상적으로 가능해진다. ‘왕따’니 체벌이니 하는 것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규모 학교 설립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도록 국가는 각 지자체 재정 자립도에 따른 ‘역차별적’ 교육재정 지원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자녀교육 때문에 가슴에 피멍 드는 교육 소외계층이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