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16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미관계에 관한 한 참여정부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사건 중 하나가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 미선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반미 촛불집회였다. 당시 인터넷 선거혁명을 일으킨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의 상당수가 촛불집회 참가자와 겹쳤다. 여기에 시민사회와 진보진영도 노 후보를 지지했다.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지지기반은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한 진보진영이었던 것이다.
양국 공조 심각한 균열…미국 측 경고 자못 심각
참여정부 대미관계의 첫 시험대는 취임 직후인 이듬해 3월 초에 나온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이었다. 진보진영의 반발이 거셌지만 노 대통령은 미국의 요청을 무작정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전투병이 아닌 ‘비전투병’이라는 묘수를 찾아 국회 동의를 받아냈다.
2003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한 노 대통령에게 또 다른 숙제가 던져졌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였다. 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합의하자 이번에는 보수진영이 반발했다.
그해 9월 미국은 다시 한국에 이라크 추가파병을 요구하면서 노 대통령의 선택을 강요했다. 이를 계기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는 정부 내 대미(對美)정책을 둘러싼 이념 마찰로 이어졌다. ‘자주외교’냐 ‘한미동맹’이냐로 갈라져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다. 결과는 ‘자주외교파’의 승리였다. 2004년 초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강조해온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경질했다.
노 대통령 주도로 2006년까지 2년간 추진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은 한미관계를 더욱 경색시켰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미관계 경색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대북관계에서 미국과의 공조가 약화되면서 한국이 6자회담은 물론 남북관계에서도 주도적 위치에서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인 올해 들어서야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이어 최근 이라크 파병 연장안을 받아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은 대미관계에서 ‘좌고우면’하는 사이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버림받은 꼴이 돼버렸다.
한국 입장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미관계만큼 중요한 외교적 사안은 없다. 대선 후보들은 이념 성향에 따라 한미관계에 대한 입장이 확연히 다르지만, 한미간 신뢰회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만 예외다.
2007년 6월6일 현충일에 개신교와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북핵폐기와 자유민주통일을 촉구하며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문제는 한미관계가 우리 정부 입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초 국내 한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의 경고는 자못 심각하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신뢰가 부족하며 양국의 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2년 안에는 이 같은 긴장이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또 미 국방부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한미동맹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동맹피로 현상은 불행한 것이며 파괴적이다”라고 경고했다.
세계정치의 힘 무시 엄청난 외교 손실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21세기 국제관계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e)’과 ‘세계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만큼 ‘자주’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시대다. 국제적 변수가 내치(內治)와 국가 진로에 끼치는 영향도 커졌다. 특히 한반도처럼 지정학적으로 4대 열강에 둘러싸이고 남북이 분단돼 군사적으로 대치한 현실에선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건국 이후 한국의 외교정책은 양대 축으로 진행돼왔다. 하나는 대북관계이고 또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관계다.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양 축이며,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 또는 ‘자주’냐 ‘동맹’이냐로 분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자는 분리·독립된 것이 아니고 상호 밀접하게 연계돼 서로 큰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미국과의 대북인식 차이가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온 것 등이다.
북한을 ‘민족공조 중심의 화해·협력 상대’로 보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인식은 국제사회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 국제사회의 눈으로 볼 때 북한은 보편적 규범과 질서를 거부하고 핵·미사일, 인권유린, 위폐 제조 등 범죄행위로 인해 쉽게 용인할 수 없는 상대다. 최근 북미관계 청신호와 외교적 개방 등의 현상이 있으나, 이것이 북한의 구조적 변화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좀더 많은 시간과 심층적 관찰이 필요하다.
김관진 합동참모본부 의장(오른쪽)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이 6월28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서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단계별 이행계획서에 공동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자주·민족·평화’를 기조로 기존의 한미동맹 중심 외교를 벗어나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협력적 자주국방·다자안보론’ 등 이상적이고 다분히 희망적인 외교노선을 제시한 노무현 정부는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일정 부분 거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 이념질서를 이탈하고 세계정치의 ‘힘’의 현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국익 손실과 악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예컨대 독도 문제에서 미국이라는 대일 지렛대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뼈아픈 외교 손실이다. 그 대안으로 중국 편향성을 보인 노 정부의 외교는 대중관계에서도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 중국의 철저한 국가이익 중심 한반도정책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유사시 개입을 위해 ‘동북공정’을 준비하고 북한의 경제 예속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
전작권·6자회담 공조 등 원점서 재검토를
한국은 외교적 특성상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해야 여타 대외관계도 순탄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한미동맹이 확고할 때 중국도 한국을 존중하게 되고 일본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노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失政)은 외교 분야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실책은 지난 반세기 한국의 안정과 평화, 번영을 가능케 한 한미 ‘안보우산(security umbrella)’을 걷어내려 한 데 있었다. 구체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미국과 합의·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의 해체와 한미연합 방위체제의 붕괴가 불가피하게 됐다. 유엔사령부의 위상도 흔들리게 됐고, 미 지상군의 철수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차기 정부가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핵무장한 북한과 주변 열강의 위협에 홀로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한미동맹은 비단 북한의 위협대처라는 측면뿐 아니라, 자유민주체제에 의한 통일 달성과 통일 후 타 열강과의 대외관계 차원에서도 유지·강화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한미동맹의 복원과 강화를 외교정책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전시작전권 재협상, 한미연합사체제 유지, 북핵 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공조체제, 대북지원과 북한인권 공조,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반도 외교안보 현안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