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홈리스(homeless) 사내 긴, 여자 되기를 소망하는 하나와 가출 소녀 미유키는 크리스마스 때도 버려진 삼각주먹밥과 묘지에 남겨진 술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쓰레기 수북한 뒷골목에서 싸움질을 멈추지 못하던 세 사람. 그러나 어느 순간 이 기이한 동방박사, 아니 동방 홈리스들은 환각처럼 아기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말구유가 아닌 도쿄의 뒷골목에 아기천사가 강림한 것이다.
곤 사토시 감독의 셀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하 ‘크리스마스…’)은 오랜만에 전통적인 손맛이 나는 애니메이션에 충실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크리스마스 동화를 소복하게 들려준다. 3명의 홈리스가 아기 부모를 찾아준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 ‘삼인의 대부’에서 따온 설정(그래서 원제가 ‘Tokyo Godfather’다. 그러나 원제보다 한국 제목이 훨씬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드문 경우인 것 같다)이지만, 무법자 3명이 서부를 돌아다니며 아기 부모를 찾는 존 포드의 고전이 곤 사토시 손에서는 눈 내리는 도쿄를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로 변모했다.
인생의 낙오자들, 버려진 아기 통해 증오와 회한 거둬
사실 이 홈리스들은 엉겁결에 갓난아이를 품었지만, 대사처럼 “우리들 모두 젖 같은 것은 안 나오는” 상처투성이 가슴을 지녔다. 경륜 선수라고 큰소리쳤지만 가족을 버린 회한에 젖은 사내, 한 번도 따뜻한 가족을 가져본 적 없는 게이, 그 가족을 칼로 찌른 소녀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숨긴 채 도쿄 뒷골목을 떠돈다. 이들이 만나면서 부딪치는 사건과 사람들도 야쿠자 딸의 결혼식장, 외국인 노동자의 빈민촌, 게이 바 등 대낮의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도쿄의 낙오자, 도쿄가 통째로 버린 것 같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버려진 아이 기요코를 거두면서 자신의 증오와 회한의 궤적도 거둘 수 있게 된다. 긴이 그렇게 한 번만 보고 싶다던 친딸을 만나는 순간, 게이 하나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여기는 게이 바 주인을 안으며 엉엉 우는 순간 엔화 지폐 속 위인의 얼굴도 울다가 웃는다. 물론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연이 남발된다. 하긴, 이건 크리스마스 영화 아닌가.
사실 곤 사토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2003년도 작품 ‘크리스마스…’는 이단아에 가깝다. 데뷔작 ‘퍼펙트 블루’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 걸작이라 생각하는 최근작 ‘파프리카’까지 곤 사토시의 영화세계에서 현실과 환상, 과거와 미래는 샴쌍둥이의 그것처럼 한 몸이다.
‘퍼펙트 블루’에서 아이돌 스타인 주인공은 자신이 찍는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하고, ‘천년여우’에서는 한 여배우의 일생을 영화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18세의 꿈 탐정을 그린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에 들어가 그들의 무의식에 동조함으로써 인간 심연 속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렇게 곤 사토시의 영화에서는 정체성 상실을 분열증적으로 경험하는 주인공과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구조가 등을 맞대고 있다. 그만큼 복잡하고 때론 난해하며 심오하다. 혼돈스런 영화 체험이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인데, ‘크리스마스…’는 그중 이야기나 시점이 모두 가장 단순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곤 사토시의 실험이 주춤해진 것은 아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 보고 느끼는 일상의 모습을 조합한 도쿄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辯)처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쿄, 그것도 흰 눈에 덮인 도쿄의 야경이라 할 수 있겠다. 눈이 펑펑 내리는 도쿄의 며칠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는 심지어 편의점과 간판의 불빛조차 뉘앙스가 다 다르고, 신주쿠의 중앙공원과 도쿄타워들이 되살아나 불을 밝힌다. 게다가 끝 모르게 퍼붓는 함박눈의 마지막 결정까지 잡아낸 애니메이션은 쌓인 눈과 눈 위의 발자국까지 세밀화로 표현할 정도로 정밀해서 아름답다.
눈 내리는 도쿄 야경과 하이쿠 삽입 인상적
그만큼 ‘크리스마스…’는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치밀하다. 여기에 감독은 멋들어진 시 한 수,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를 집어넣는다(하이쿠를 넣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행인가보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웃집 야마다 군’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남편은 필요 없지만 아기는 하나 갖게 해달라고 소원했던 하나가 아기를 만나는 순간 “성스러운 밤, 어린아이 뺨에는 눈가루가”라고 읊는데, 그때 하나의 단가(短歌)가 화면에 흘림체로 써지면서 동양의 수묵화 같은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또한 난동을 부리면서까지 인간과 친해지려 하는 동료 파란 도깨비를 도와준 빨간 도깨비의 이야기나 기요코 부모를 찾아주기 위한 열쇠의 번호, 택시요금, 신문광고에 난 주소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1225로 돼 있는 등 영화는 거대한 퀴즈쇼처럼 갖가지 은유와 상징을 도쿄의 풍광 아래 숨겨놓고 있다.
추운 겨울날, 버스 창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그 위에 글자를 쓴 전 손님의 흔적을 마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옛날 옛적 서울, 아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전 세계 모든 도시에는 쓰레기를 뒤지는 허름한 차림의 크리스마스 천사들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겨울날 아이들 손 붙잡고 온 가족이 구연동화 한 편 보고 나온 것 같은 훈훈함을 주는 애니메이션이다.
곤 사토시 감독의 셀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하 ‘크리스마스…’)은 오랜만에 전통적인 손맛이 나는 애니메이션에 충실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크리스마스 동화를 소복하게 들려준다. 3명의 홈리스가 아기 부모를 찾아준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 ‘삼인의 대부’에서 따온 설정(그래서 원제가 ‘Tokyo Godfather’다. 그러나 원제보다 한국 제목이 훨씬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드문 경우인 것 같다)이지만, 무법자 3명이 서부를 돌아다니며 아기 부모를 찾는 존 포드의 고전이 곤 사토시 손에서는 눈 내리는 도쿄를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로 변모했다.
인생의 낙오자들, 버려진 아기 통해 증오와 회한 거둬
사실 이 홈리스들은 엉겁결에 갓난아이를 품었지만, 대사처럼 “우리들 모두 젖 같은 것은 안 나오는” 상처투성이 가슴을 지녔다. 경륜 선수라고 큰소리쳤지만 가족을 버린 회한에 젖은 사내, 한 번도 따뜻한 가족을 가져본 적 없는 게이, 그 가족을 칼로 찌른 소녀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숨긴 채 도쿄 뒷골목을 떠돈다. 이들이 만나면서 부딪치는 사건과 사람들도 야쿠자 딸의 결혼식장, 외국인 노동자의 빈민촌, 게이 바 등 대낮의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도쿄의 낙오자, 도쿄가 통째로 버린 것 같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버려진 아이 기요코를 거두면서 자신의 증오와 회한의 궤적도 거둘 수 있게 된다. 긴이 그렇게 한 번만 보고 싶다던 친딸을 만나는 순간, 게이 하나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여기는 게이 바 주인을 안으며 엉엉 우는 순간 엔화 지폐 속 위인의 얼굴도 울다가 웃는다. 물론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연이 남발된다. 하긴, 이건 크리스마스 영화 아닌가.
사실 곤 사토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2003년도 작품 ‘크리스마스…’는 이단아에 가깝다. 데뷔작 ‘퍼펙트 블루’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 걸작이라 생각하는 최근작 ‘파프리카’까지 곤 사토시의 영화세계에서 현실과 환상, 과거와 미래는 샴쌍둥이의 그것처럼 한 몸이다.
‘퍼펙트 블루’에서 아이돌 스타인 주인공은 자신이 찍는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하고, ‘천년여우’에서는 한 여배우의 일생을 영화를 통해 거슬러 올라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18세의 꿈 탐정을 그린 ‘파프리카’는 사람들의 꿈에 들어가 그들의 무의식에 동조함으로써 인간 심연 속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는다. 이렇게 곤 사토시의 영화에서는 정체성 상실을 분열증적으로 경험하는 주인공과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구조가 등을 맞대고 있다. 그만큼 복잡하고 때론 난해하며 심오하다. 혼돈스런 영화 체험이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인데, ‘크리스마스…’는 그중 이야기나 시점이 모두 가장 단순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곤 사토시의 실험이 주춤해진 것은 아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 보고 느끼는 일상의 모습을 조합한 도쿄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辯)처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쿄, 그것도 흰 눈에 덮인 도쿄의 야경이라 할 수 있겠다. 눈이 펑펑 내리는 도쿄의 며칠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는 심지어 편의점과 간판의 불빛조차 뉘앙스가 다 다르고, 신주쿠의 중앙공원과 도쿄타워들이 되살아나 불을 밝힌다. 게다가 끝 모르게 퍼붓는 함박눈의 마지막 결정까지 잡아낸 애니메이션은 쌓인 눈과 눈 위의 발자국까지 세밀화로 표현할 정도로 정밀해서 아름답다.
눈 내리는 도쿄 야경과 하이쿠 삽입 인상적
그만큼 ‘크리스마스…’는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치밀하다. 여기에 감독은 멋들어진 시 한 수,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를 집어넣는다(하이쿠를 넣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행인가보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웃집 야마다 군’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남편은 필요 없지만 아기는 하나 갖게 해달라고 소원했던 하나가 아기를 만나는 순간 “성스러운 밤, 어린아이 뺨에는 눈가루가”라고 읊는데, 그때 하나의 단가(短歌)가 화면에 흘림체로 써지면서 동양의 수묵화 같은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또한 난동을 부리면서까지 인간과 친해지려 하는 동료 파란 도깨비를 도와준 빨간 도깨비의 이야기나 기요코 부모를 찾아주기 위한 열쇠의 번호, 택시요금, 신문광고에 난 주소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1225로 돼 있는 등 영화는 거대한 퀴즈쇼처럼 갖가지 은유와 상징을 도쿄의 풍광 아래 숨겨놓고 있다.
추운 겨울날, 버스 창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그 위에 글자를 쓴 전 손님의 흔적을 마주쳤을 때의 기분이랄까. 옛날 옛적 서울, 아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전 세계 모든 도시에는 쓰레기를 뒤지는 허름한 차림의 크리스마스 천사들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겨울날 아이들 손 붙잡고 온 가족이 구연동화 한 편 보고 나온 것 같은 훈훈함을 주는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