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서 3차원 공간 창출 ‘마법의 채색’](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7/01/17/200701170500042_1.jpg)
피렌체 두오모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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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광객들이 600년쯤 앞서서, 그러니까 1415년 8월 어느 날 그곳에 갔더라면 재연이 아니라 지대한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실험에 직접 참여해 실연(實演)할 영광을 얻었을 것이다. 그날 두오모 성당의 세례당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세례당을 마주 보고 선 채 한 손에 나무 패널을, 다른 손에는 거울을 들고 이상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사내가 하는 실험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거울을 든 이상한 실험
사내는 오른손에 든 패널을 바짝 얼굴 앞에 갖다 대고, 왼손에 든 거울을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하기를 반복했다. 찾아야 할 곳을 찾은 듯 앞뒤로 움직이던 거울이 한 지점에 멈추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 묘한 미소가 흘렀다. 이어서 그는 제 손에 든 도구를 주위에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차례로 넘겨준다. 호기심에 안달이 난 구경꾼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밀었다 당겼다 하다가 저마다 경탄의 환성을 질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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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이미지는 패널에 뚫린 구멍이 만들어내는 시야(視野)이고, 네모난 거울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앞에 서 있는 실물 세례당, 거울 안으로 보이는 것은 패널 위에 그려진 그림 세례당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물 세례당과 거울에 비친 그림 세례당이 마치 두 개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딱 들어맞는다. 이로써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원근법이 현실을 재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임을 증명했던 것이다. 안토니오 마네티(1423~1497)가 쓴 브루넬레스키의 전기에 나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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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성당의 거대한 돔을 만든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왼쪽). 성당과 마주한 곳에 있는 세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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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두오모 성당). 브루넬레스키는 지름 45m에 이르는 성당의 거대한 돔을 짓는 일을 맡아 이 기술적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오늘날 피렌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아마도 끝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저 높은 쿠폴라에 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의 자부심은 오늘날에도 광장의 한 귀퉁이에 영원히 자신의 역작을 올려다보도록 조각상으로 굳어 있다.
마사초가 그린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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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초가 그린 ‘삼위일체’.
이 작품을 보려면 두오모에서 조금 걸어나와 근처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으로 가야 한다. 마사초(1401~1428)가 이 성당의 벽에 프레스코로 그린 ‘삼위일체’(1425~1428)는 미술사에서 브루넬레스키의 기법을 회화에 적용한 최초의 예로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위로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모습이 보인다. 십자가 양옆에 서 있는 인물은 사도 요한과 마리아. 그 바깥쪽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의 제작을 후원한 패트런들일 것이다.
아래쪽에 보이는 해골은 아담의 것. 당시 사람들은 골고다 언덕, 그러니까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 바로 아래에 아담의 무덤이 있다고 믿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영생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했다. 즉 한 사람(아담)의 원죄로 인류에게 죽음이 도입되고, 한 사람(예수)의 부활로 인류가 영생을 되찾았다는 얘기다. 당시 사람들은 이 두 사건을 하나의 공간에 묶어 상상하려 했던 것이다.
과격한 투시법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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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저 벽화 앞에 선 관찰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하고 있다. 무릎을 꿇은 패트런, 서 있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 뒤로 자식을 어루만지는 하느님. 묘사된 인물들은 전경에서 후경으로 가면서 각각 네 개의 수준에 배치되어 있지만, 이는 그저 허깨비에 불과하다. 저 공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2차원의 평면뿐, 거기서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원근법의 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