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체성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논의 대상이 돼왔다. 혹자는 사이버 세계의 정체성이 현실을 뒤덮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혹자는 블로그 속의 나에게 지배당할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가 묻는다. 몇 달간 공들여 키운 게임 캐릭터가 서서히 나를 잠식할 수 있을까. 여러 얼굴을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전통적 개념에서 자아란 고정적이며 절대적인 것이다. 자아를 찾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여드름으로 얼룩진 청소년기까지만 허용되는 것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확립된 자아를 굳건히 지켜내야만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우리에게 자아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시험하고 이를 수정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제공한다. 현실 세계의 지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자신을 과시하거나, 반대로 보이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며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아름다운 자신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이 막 확산되던 시기부터 개인들은 채팅과 커뮤니티, 게임을 떠돌며 자아를 생성하고 또 파괴하는 역할놀이를 수행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들은 늘 집 없는 ‘방문자’였다. 채팅룸과 카페를 벗어나면 그가 만들어놓은 분신들은 소멸하는 운명에 처하곤 했던 것이다. 그가 했던 말과 기록, 사진들은 그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사이버 세상 새로운 공간개념 회원 수 급속 확장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사업자들은 개인에게서 생성된 모든 콘텐츠가 개인에게 속한다는 심리적 확신을 주는 방향으로 모든 개인미디어를 설계했다. 이런 서비스들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사적인 방이 주어진 것과 같은 새로운 공간개념을 심어줌으로써 급속도로 회원 수를 늘리고 그 안에서 노는 시간도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개인 미디어 사이트에 비해 남성 사용자 비율이 높고 ‘작업’(?) 사이트로 유명한 ‘세이클럽’ 등 채팅 서비스의 구조를 보자. 대부분 사이트의 쪽지창은 상대의 아이디, 사진, 아바타 등 개인정보와 텍스트를 함께 보여준다. 창의 크기가 크고 이미지가 많을수록 서버에 부담이 되므로 받는 쪽지와 보내는 쪽지를 서로 다른 창에서 해결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려면 답장을 보내기 위해 마우스로 답장을 클릭해야 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과 직접 키보드 입력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오른손을 쓰는 마우스는 자연스럽게 왼쪽 뇌의 활동력을 높여 이성적 판단을 작동시킨다. 쪽지와 답장이라는 지속적 피드백을 통해 사이트에 대한 ‘중독’성을 키우려면 최대한 즉흥적이고 가벼운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마우스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세이클럽’은 쪽지창이 열리면 상대의 글이 보이고 바로 아래 공간에 커서가 깜박인다. 이 때문에 창의 공간이 좁아 자신이 입력하는 글 앞부분을 볼 수 없다.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글 구성이 어려운 것이다. 이런 불편함이 ‘작업남’과 ‘작업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세이클럽’을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키워냈다.
인터넷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의도된 시각적 틀로 이뤄져 있다.
본래 블로그는 표현 욕구보다 소통 중심의 개인 미디어였다. 블로그는 개인의 생각이 쉽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으로, 작은 개인의 생각들이 순식간에 다수에게 파급되기 쉬운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창발(Emergence)’ 현상과 연결된다. 개개의 개미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지능이 없지만 흰개미 집단은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하위수준(각 구성요소)에서는 생성될 수 없는 것이 상위수준(전체 집단)에서 돌연히 출현하듯 등장하는 것을 ‘창발’이라고 한다.
여론의 발생도 여기 해당한다. 소규모 집단과 개인들의 의견이 한순간 ‘여론’이 되어 정권을 뒤집는 힘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들이 블로거 기자단을 운영하고, 전통적인 언론이 블로거들의 성향을 분석해 이를 ‘네티즌 의견’이라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다.
UCC가 필연적 대세라고 외치는 포털사이트
그러나 우리나라에 정착된 블로그들은 서비스업체가 기획한 상품의 일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발은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업체들은 서비스에 대한 유저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블로거들이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성하도록 경쟁을 부추긴다. 블로그 서비스는 첫 페이지부터 화려하고 흥미를 끌 만한 이미지들로 호객행위를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애완동물, 요리법, 가구 만들기에 관한 예쁜 사진이 주를 이루며, ‘이미지’를 올려야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카메라폰은 이제 동영상을 전송하기에 이르렀다. 각 포털사이트는 UCC가 필연적 대세라고 소리친다. 그들은 이미지로 소통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역할은 이미지를 퍼나르는 운송수단일 뿐이지 않은가.
이미지 중심 전략에 가장 앞장서온 것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다. 작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다양한 아이템으로 장식할 수 있는 미니홈피는 이미지 중심 콘텐츠가 대부분을 구성한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알면 누구든 찾아낼 수 있는 싸이월드는 주변의 누군가가 몰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싸이월드는 나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기 전에, ‘저는 정말 잘 살고 있답니다’를 먼저 이야기하는 곳이다.
이런 ‘투명한’ 구조 속에서 미니홈피는 생각을 기록하는 곳이 아닌 일상을 담는 곳이 되었다. 생각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토론할 수는 있어도, 일상을 비판할 수는 없다. 비판도 토론도 없는 세상. 착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이좋은 세상 싸이월드’는 이제 MBC 프로그램 ‘느낌표’가 되려 한다. 도토리로 대신하는 후원과 각종 봉사단체들에게 게시판을 내주는 등 공익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참 잘했어요’ 도장으로 할당량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까? 선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는 ‘착한 사람’의 인격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곳은 ‘싸이월드’이기 때문이다.
개인 미디어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수정해 나가려던 처음의 시도는 형형색색의 펜들로 얼룩진 다이어리처럼 지루해지고 말았다. 진지함이 결여됐을 때, 자신을 직면하고자 하는 용기가 부족할 때 이런 도구들은 곧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블로그와 미니홈피가 소소한 일상과 사진, 감성 표현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내가 ‘작업녀’와 ‘착한 사람’, 전문 요리사의 얼굴을 동시에 갖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인터넷에서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나의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듯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건지 자문해볼 일이다.
걱정되는 것은 개인 미디어에서 자아가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미디어가 유기(遺棄)된 자아들로 이뤄진 무덤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 개념에서 자아란 고정적이며 절대적인 것이다. 자아를 찾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여드름으로 얼룩진 청소년기까지만 허용되는 것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확립된 자아를 굳건히 지켜내야만 ‘어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우리에게 자아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시험하고 이를 수정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제공한다. 현실 세계의 지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자신을 과시하거나, 반대로 보이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며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아름다운 자신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이 막 확산되던 시기부터 개인들은 채팅과 커뮤니티, 게임을 떠돌며 자아를 생성하고 또 파괴하는 역할놀이를 수행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들은 늘 집 없는 ‘방문자’였다. 채팅룸과 카페를 벗어나면 그가 만들어놓은 분신들은 소멸하는 운명에 처하곤 했던 것이다. 그가 했던 말과 기록, 사진들은 그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사이버 세상 새로운 공간개념 회원 수 급속 확장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사업자들은 개인에게서 생성된 모든 콘텐츠가 개인에게 속한다는 심리적 확신을 주는 방향으로 모든 개인미디어를 설계했다. 이런 서비스들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사적인 방이 주어진 것과 같은 새로운 공간개념을 심어줌으로써 급속도로 회원 수를 늘리고 그 안에서 노는 시간도 연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개인 미디어 사이트에 비해 남성 사용자 비율이 높고 ‘작업’(?) 사이트로 유명한 ‘세이클럽’ 등 채팅 서비스의 구조를 보자. 대부분 사이트의 쪽지창은 상대의 아이디, 사진, 아바타 등 개인정보와 텍스트를 함께 보여준다. 창의 크기가 크고 이미지가 많을수록 서버에 부담이 되므로 받는 쪽지와 보내는 쪽지를 서로 다른 창에서 해결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려면 답장을 보내기 위해 마우스로 답장을 클릭해야 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과 직접 키보드 입력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오른손을 쓰는 마우스는 자연스럽게 왼쪽 뇌의 활동력을 높여 이성적 판단을 작동시킨다. 쪽지와 답장이라는 지속적 피드백을 통해 사이트에 대한 ‘중독’성을 키우려면 최대한 즉흥적이고 가벼운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마우스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세이클럽’은 쪽지창이 열리면 상대의 글이 보이고 바로 아래 공간에 커서가 깜박인다. 이 때문에 창의 공간이 좁아 자신이 입력하는 글 앞부분을 볼 수 없다.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글 구성이 어려운 것이다. 이런 불편함이 ‘작업남’과 ‘작업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세이클럽’을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키워냈다.
인터넷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의도된 시각적 틀로 이뤄져 있다.
본래 블로그는 표현 욕구보다 소통 중심의 개인 미디어였다. 블로그는 개인의 생각이 쉽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으로, 작은 개인의 생각들이 순식간에 다수에게 파급되기 쉬운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창발(Emergence)’ 현상과 연결된다. 개개의 개미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지능이 없지만 흰개미 집단은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하위수준(각 구성요소)에서는 생성될 수 없는 것이 상위수준(전체 집단)에서 돌연히 출현하듯 등장하는 것을 ‘창발’이라고 한다.
여론의 발생도 여기 해당한다. 소규모 집단과 개인들의 의견이 한순간 ‘여론’이 되어 정권을 뒤집는 힘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인터넷 신문들이 블로거 기자단을 운영하고, 전통적인 언론이 블로거들의 성향을 분석해 이를 ‘네티즌 의견’이라며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다.
UCC가 필연적 대세라고 외치는 포털사이트
그러나 우리나라에 정착된 블로그들은 서비스업체가 기획한 상품의 일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발은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업체들은 서비스에 대한 유저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블로거들이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성하도록 경쟁을 부추긴다. 블로그 서비스는 첫 페이지부터 화려하고 흥미를 끌 만한 이미지들로 호객행위를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애완동물, 요리법, 가구 만들기에 관한 예쁜 사진이 주를 이루며, ‘이미지’를 올려야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카메라폰은 이제 동영상을 전송하기에 이르렀다. 각 포털사이트는 UCC가 필연적 대세라고 소리친다. 그들은 이미지로 소통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역할은 이미지를 퍼나르는 운송수단일 뿐이지 않은가.
이미지 중심 전략에 가장 앞장서온 것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다. 작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다양한 아이템으로 장식할 수 있는 미니홈피는 이미지 중심 콘텐츠가 대부분을 구성한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알면 누구든 찾아낼 수 있는 싸이월드는 주변의 누군가가 몰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싸이월드는 나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기 전에, ‘저는 정말 잘 살고 있답니다’를 먼저 이야기하는 곳이다.
이런 ‘투명한’ 구조 속에서 미니홈피는 생각을 기록하는 곳이 아닌 일상을 담는 곳이 되었다. 생각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토론할 수는 있어도, 일상을 비판할 수는 없다. 비판도 토론도 없는 세상. 착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이좋은 세상 싸이월드’는 이제 MBC 프로그램 ‘느낌표’가 되려 한다. 도토리로 대신하는 후원과 각종 봉사단체들에게 게시판을 내주는 등 공익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참 잘했어요’ 도장으로 할당량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까? 선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는 ‘착한 사람’의 인격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곳은 ‘싸이월드’이기 때문이다.
개인 미디어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수정해 나가려던 처음의 시도는 형형색색의 펜들로 얼룩진 다이어리처럼 지루해지고 말았다. 진지함이 결여됐을 때, 자신을 직면하고자 하는 용기가 부족할 때 이런 도구들은 곧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블로그와 미니홈피가 소소한 일상과 사진, 감성 표현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내가 ‘작업녀’와 ‘착한 사람’, 전문 요리사의 얼굴을 동시에 갖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인터넷에서 나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나의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듯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건지 자문해볼 일이다.
걱정되는 것은 개인 미디어에서 자아가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미디어가 유기(遺棄)된 자아들로 이뤄진 무덤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