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아직 일부 스타와 외국 라이선스 작품에 기대고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먼저 정확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공연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신뢰할 만한 통계자료를 찾기란 힘든 실정이다. 그래서 공연예매사이트의 대표주자인 인터파크와 티켓링크의 통계를 참고했다.
이들이 발표한 자료는 현장매매나 각 제작사의 자체 예매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관객들의 예매사이트 이용률이 높아진 만큼, 이들 자료가 시장 추이를 살펴보는 하나의 근거는 될 수 있다.
2006년 1월부터 11월까지 티켓링크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총 115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총 관객수는 256만명, 총 매출액은 717억원이며, 2006년 공연계 총 매출액은 1277억원이었다. 티켓링크가 발표한 2005년도 뮤지컬 총 매출액이 650억원이니, 전년도에 비해 매출이 67억원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배우 겹치기 출연 탓 완성도 떨어질 수도
이 자료를 보면 공연계에서 뮤지컬이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공연계 총 매출액의 56%, 총 관객수의 39%를 뮤지컬이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출액을 살펴보면, 살짝 의구심이 든다. 공연계 내부에서는 해마다 뮤지컬이 20~30%의 성장을 이룬다는 속설이 나돌지만, 매출액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티켓링크의 자료에 따르면 뮤지컬의 매출액은 10% 정도의 성장세에 그치고 있다.
뮤지컬 ‘헤드윅’의 오만석.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한 이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뮤지컬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완성도 높은 공연에 기꺼이 10만원 안팎의 관람료를 지불할 관객 수도 늘고 있다.
최근 뮤지컬 제작에 뛰어드는 기획사가 관객수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많은 대학로 연극기획사들이 뮤지컬 제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CJ 엔터테인먼트, 씨네라인 투, MK픽처스, 싸이더스 같은 영화제작사들까지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거나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전체 공연의 몇 퍼센트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대박을 터뜨린 사례가 있었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돈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구나 작품을 제작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제작사가 늘면서 뮤지컬 공연 편수도 증가했다. 공연 비수기라는 올 1월의 경우, 서울에서만 30편이 넘는 뮤지컬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필연적으로 배우, 스태프 등의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많은 주연급 배우들은 낮에 연습하고, 밤에 다른 작품을 공연한다. 심한 경우에는 한 배우가 두세 개 뮤지컬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연습하기도 한다.
공연은 라이브로 이뤄진다. 그 시간 그 극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그 인물로 살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배우가 두세 명의 인물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면, 작품의 완성도에 문제가 생기고 만다.
많은 문제점 불구 뮤지컬 미래는 밝아
작품의 완성도는 따지지 않은 채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에만 몰리는 일부 관객을 겨냥한 스타 의존 제작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일부 스타들이 관객몰이를 하면서 제작사들은 그들을 잡으려고 개런티를 올린다. 이 경우, 제작비는 상승하지만 그 돈이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뒷전인 셈이다.
뮤지컬 제작에 필요한 두 가지는 돈과 제작 노하우다. 제작 노하우는 곧 콘텐츠 개발 능력이다. 지금까지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투자를 유치한 것은 외국의 유명 뮤지컬이었다. 유명한 외국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지의 여부가 ‘뮤지컬 시장의 큰손이 될지’를 좌우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첫째, 뮤지컬에 돈이 많이 몰리기는 하지만 외국의 대형 뮤지컬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물론 ‘대장금’이라는 인기 드라마를 콘텐츠로 하는 뮤지컬에 거대 방송사가 60억원을 후원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순수 국내 창작뮤지컬에는 매우 소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둘째, 외국의 유명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제작사라 해도 작품개발 능력은 여전히 미지수라는 점이다.‘맘마미아’로 유명한 제작사 신시뮤지컬은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를 올 6월 무대에 올린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댄싱 섀도우’가 외국의 유명 연출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
이에 대해 신시뮤지컬 측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명장 히딩크를 영입했듯, 우리도 실력을 쌓는 과도기로 외국 연출진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축구와 공연의 단순비교는 무의미하다. 축구는 사람을 재료로 전술과 기술을 구사한다. 감독은 선수가 갖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배가시키고, 자신의 전술을 익히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감독이 지도한 내용이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은 다르다.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 연기했다거나, 유명 연출가의 연기지도를 받았다고 해서 그들의 창작 능력까지 전수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댄싱 섀도우’의 기획은 절묘하다. 성공을 장담할 외국 라이선스 뮤지컬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과 언론, 투자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외국 연출진과 함께 뮤지컬을 제작한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신시뮤지컬에 숙제로 남아 있다.
‘뮤지컬 시장이 계속 성장세를 유지할 것인지’는 좋은 창작뮤지컬이 꾸준히 탄생하느냐에 달렸다. 개인적으로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창작 전문인력의 부족과 창작에 대한 무관심이 걸림돌이기는 하지만, 좋은 뮤지컬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관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이 진정으로 창작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질 때 뮤지컬 시장은 온전한 우리 것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