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시가 추ㅂ다. 옷 다뜻ㅎ게 입ㅇ라.’
직장 때문에 부모님 곁을 떠나 생활한 지 6년째인 PR 컨설턴트 김세경(31·여) 씨. 그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부모님과의 소통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줬다”고 밝힌다. 밀린 업무로 피로가 겹치고 약속조차 없이 쓸쓸하게 지내던 지난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날아든 한 건의 문자메시지 덕분이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발신자가 아버지임을 알고는 벅찬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어요. 뜨끈한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목에 걸린 느낌이랄까. 그간 연락 한번 변변히 못 드린 데서 오는 죄스러움. 노안(老眼)인 아버지가 좁쌀보다 클까 말까 한 키패드를 손수 눌러 딸에게 첫 문자메시지를 띄웠다는 데 대한 감격….”
아버지에게 황급히 답신을 보낸 김씨는 내친김에 어머니한테도 문자를 띄웠다고 했다. 아버지에게서는 “온냐”라는 응답이 왔고, 어머니에게서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의 말은 이랬다. “아버지가 아래층 아저씨를 붙들고 일주일간 귀찮게 하더니 결국 네게 문자를 보내시더라.”
김씨는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드시 부모님과 문자를 주고받는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전성시대, ‘아빠 문자’ ‘엄마 문자’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부모의 첫 문자메시지에 감동받은 자녀들이 해당 문구가 담긴 휴대전화 화면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상에 경쟁적으로 게시하면서 누리꾼(네티즌)들 사이에 일종의 ‘감동 문화’로 수용되고 있는 것.
비록 키패드 조작이 서툴러 오타가 많고 표현 역시 어눌하지만 40, 50대 부모들의 문자메시지는 해고사실이나 각종 실적에 대한 통보, 스팸문자 등으로 사람들 간의 정(情)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일각의 ‘문자메시지 비관론’을 무색케 한다.
수신함에 저장하고 틈날 때마다 꺼내 보기도
‘보랏빛창’이라는 ID를 가진 누리꾼이 지난해 11월26일 누리꾼들이 즐겨 찾는 ‘미디어다음 아고라’에 올린 ‘평생 잊지 못할 어머니의 첫 문자’라는 제목의 글. 문자메시지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쭛쭛야, 엄마다 저ㅎ심(점심) 머먹을(뭐 먹을) 건데 엄마다 내 지금 문자 배웠다 사랑해.’ 그럼에도 2007년 1월9일 현재 조회 건수는 무려 35만6000여 건. 댓글도 빗발쳐 300건을 훌쩍 넘겼다. ‘우리 어머니도 문자 배우신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타가 많아서 어머니 문자를 볼 때면 웃음이 나고 즐거운 하루가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든 콧등을 시큰거리게 한다’ ‘우리 엄마는 아직 문자 보내실 줄 모르는데, 오늘 당장 알려드려야겠다’는 등 가슴이 찡했다는 댓글이 대다수다. 한편으론 ‘눈물이 난다’ ‘난 이런 문자를 받을 수 없다. 어머니가 2005년 2월에 돌아가셨다. 살아 계실 때 더 잘 해드릴 걸 후회가 된다’ ‘엄마가 가르쳐달래서 몇 번이나 가르쳐드렸는데 잘 못하셔서 짜증을 냈다. 너무 부끄럽다’는 자성(自省)의 내용도 적지 않다.
중장년층 문자메시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어렵게 입력한 어수룩한 문구들. 하지만 맞춤법이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쑥스러움을 떨치고도 남을 만큼 나름의 힘을 지녔다. 무엇보다 무한대에 가까운 절절한 자식 사랑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사연은 이를 잘 방증한다.
“친구와 노래방에서 한창 노래를 부르는데 ‘딩동’ 하고 문자가 하나 옵니다. 봤더니 글쎄… 아빠의 문자!!!!! ‘박쭛쭛, 아빠가 문자를 처음 써본다 들어올 때 햄버가 사와라 ㅋㅋㅋ.’ 알았다고 답글을 보냈더니 ‘어제 오농?’ 희한하게도 오타를 내셨군요. 그동안 문자메시지를 통해 부모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울 아빠 늠 잼 있으시죵? ㅎㅎ.”(ID 아키라)
“가세가 기울어 올해 내 생일날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나가려는데 저녁에 울 아버지가 보낸 문자, ‘우리 딸 생일인데 아빠가 미안해 사랑한다’ 이거 받고 펑펑 울었죠.”(ID 하이타이주인님)
“아빠한테서 ‘알바 하는뎅 춥지 않니?’ 이렇게 문자 와서 울컥했음.”(ID HM)
부모들의 따뜻한 문자를 처음 접한 자녀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첫 문자메시지를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수신메시지함에 저장한 뒤 두고두고 꺼내보게 된다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휴대전화 속이 아니라 마음속에 저장하는 셈이랄까.
(사)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 소장(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은 ‘4050세대 감동 문자’ 현상의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휴대전화가 현대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 구성원들 간의 소통부재에 한몫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역(逆)으로 속도가 빠르고 편리하며 간결한 문자메시지는 일상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음성이 아닌 텍스트로서의 문자는 대면이나 전화를 통해서는 쑥스럽거나 낯간지러워 좀처럼 하기 힘든 내면의 말들을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매개체다. 문자가 주는 신선함과 감동은 말이 주는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세대간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급부상
고려대 박길성 교수(사회학)는 4050세대가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서의 문자메시지에 눈뜨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부모들이 그들 자신에겐 생소해도 자녀 세대에겐 친숙한 주요 의사소통 기제(機制) 중 하나가 문자메시지라는 점을 후발주자로서 깨닫고 거기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세대차로 인한 소통의 장벽을 허물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여긴다”며 “일정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소통수단으로서 문자메시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장년층의 문자메시지 사용 건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004년 40대의 월평균(3월 기준) 문자메시지 발신 건수는 31건, 50대는 22건, 60대 이상은 14건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엔 각기 41건, 29건, 17건으로 늘었다. 2006년엔 40대가 50건, 50대가 40건, 60대 이상이 2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SK텔레콤 홍보팀 백창돈 매니저는 “청소년들이 부모 명의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청소년요금제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통계로 볼 때 중장년층 문자메시지 활용이 점점 느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직도 휴대전화를 통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문자맹(盲)’ 부모들이 적지 않다. 28세, 16세인 두 딸을 둔 약사 석광철(55) 씨는 “수신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긴 해도 보낼 줄은 몰라 애들의 문자에 답신을 한 적이 없다. 메시지 보내는 법을 배워 몇 차례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키패드 자판이 낯설다”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키패드 대신 인터넷 포털 사이트상에서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서비스(웹투폰·web to phone)를 애용한다고 해 나도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자녀가 절실히 바랄 때 부모가 살짝 건네는 ‘사랑해’라는 문자의 힘은 묵직한 감동으로 남는 법. 지금에라도 키패드를 벗삼고 싶지 않은가. 애틋함이 소록소록 배어나는 문자의 힘은 강하디강하다. 단, ‘사랑해’를 ‘사망해’로 입력하는 치명적 오타만 아니라면….
직장 때문에 부모님 곁을 떠나 생활한 지 6년째인 PR 컨설턴트 김세경(31·여) 씨. 그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부모님과의 소통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줬다”고 밝힌다. 밀린 업무로 피로가 겹치고 약속조차 없이 쓸쓸하게 지내던 지난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날아든 한 건의 문자메시지 덕분이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발신자가 아버지임을 알고는 벅찬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어요. 뜨끈한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목에 걸린 느낌이랄까. 그간 연락 한번 변변히 못 드린 데서 오는 죄스러움. 노안(老眼)인 아버지가 좁쌀보다 클까 말까 한 키패드를 손수 눌러 딸에게 첫 문자메시지를 띄웠다는 데 대한 감격….”
아버지에게 황급히 답신을 보낸 김씨는 내친김에 어머니한테도 문자를 띄웠다고 했다. 아버지에게서는 “온냐”라는 응답이 왔고, 어머니에게서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의 말은 이랬다. “아버지가 아래층 아저씨를 붙들고 일주일간 귀찮게 하더니 결국 네게 문자를 보내시더라.”
김씨는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드시 부모님과 문자를 주고받는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전성시대, ‘아빠 문자’ ‘엄마 문자’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부모의 첫 문자메시지에 감동받은 자녀들이 해당 문구가 담긴 휴대전화 화면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상에 경쟁적으로 게시하면서 누리꾼(네티즌)들 사이에 일종의 ‘감동 문화’로 수용되고 있는 것.
비록 키패드 조작이 서툴러 오타가 많고 표현 역시 어눌하지만 40, 50대 부모들의 문자메시지는 해고사실이나 각종 실적에 대한 통보, 스팸문자 등으로 사람들 간의 정(情)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일각의 ‘문자메시지 비관론’을 무색케 한다.
수신함에 저장하고 틈날 때마다 꺼내 보기도
‘보랏빛창’이라는 ID를 가진 누리꾼이 지난해 11월26일 누리꾼들이 즐겨 찾는 ‘미디어다음 아고라’에 올린 ‘평생 잊지 못할 어머니의 첫 문자’라는 제목의 글. 문자메시지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쭛쭛야, 엄마다 저ㅎ심(점심) 머먹을(뭐 먹을) 건데 엄마다 내 지금 문자 배웠다 사랑해.’ 그럼에도 2007년 1월9일 현재 조회 건수는 무려 35만6000여 건. 댓글도 빗발쳐 300건을 훌쩍 넘겼다. ‘우리 어머니도 문자 배우신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타가 많아서 어머니 문자를 볼 때면 웃음이 나고 즐거운 하루가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든 콧등을 시큰거리게 한다’ ‘우리 엄마는 아직 문자 보내실 줄 모르는데, 오늘 당장 알려드려야겠다’는 등 가슴이 찡했다는 댓글이 대다수다. 한편으론 ‘눈물이 난다’ ‘난 이런 문자를 받을 수 없다. 어머니가 2005년 2월에 돌아가셨다. 살아 계실 때 더 잘 해드릴 걸 후회가 된다’ ‘엄마가 가르쳐달래서 몇 번이나 가르쳐드렸는데 잘 못하셔서 짜증을 냈다. 너무 부끄럽다’는 자성(自省)의 내용도 적지 않다.
중장년층 문자메시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어렵게 입력한 어수룩한 문구들. 하지만 맞춤법이 맞지 않는 데서 오는 쑥스러움을 떨치고도 남을 만큼 나름의 힘을 지녔다. 무엇보다 무한대에 가까운 절절한 자식 사랑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의 사연은 이를 잘 방증한다.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올린 부모의 문자메시지들.
“가세가 기울어 올해 내 생일날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나가려는데 저녁에 울 아버지가 보낸 문자, ‘우리 딸 생일인데 아빠가 미안해 사랑한다’ 이거 받고 펑펑 울었죠.”(ID 하이타이주인님)
“아빠한테서 ‘알바 하는뎅 춥지 않니?’ 이렇게 문자 와서 울컥했음.”(ID HM)
부모들의 따뜻한 문자를 처음 접한 자녀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첫 문자메시지를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수신메시지함에 저장한 뒤 두고두고 꺼내보게 된다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휴대전화 속이 아니라 마음속에 저장하는 셈이랄까.
(사)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 소장(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은 ‘4050세대 감동 문자’ 현상의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휴대전화가 현대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 구성원들 간의 소통부재에 한몫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역(逆)으로 속도가 빠르고 편리하며 간결한 문자메시지는 일상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음성이 아닌 텍스트로서의 문자는 대면이나 전화를 통해서는 쑥스럽거나 낯간지러워 좀처럼 하기 힘든 내면의 말들을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매개체다. 문자가 주는 신선함과 감동은 말이 주는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세대간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급부상
고려대 박길성 교수(사회학)는 4050세대가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서의 문자메시지에 눈뜨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부모들이 그들 자신에겐 생소해도 자녀 세대에겐 친숙한 주요 의사소통 기제(機制) 중 하나가 문자메시지라는 점을 후발주자로서 깨닫고 거기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세대차로 인한 소통의 장벽을 허물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여긴다”며 “일정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소통수단으로서 문자메시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장년층의 문자메시지 사용 건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004년 40대의 월평균(3월 기준) 문자메시지 발신 건수는 31건, 50대는 22건, 60대 이상은 14건에 그쳤다. 그러나 2005년엔 각기 41건, 29건, 17건으로 늘었다. 2006년엔 40대가 50건, 50대가 40건, 60대 이상이 2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SK텔레콤 홍보팀 백창돈 매니저는 “청소년들이 부모 명의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청소년요금제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통계로 볼 때 중장년층 문자메시지 활용이 점점 느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직도 휴대전화를 통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문자맹(盲)’ 부모들이 적지 않다. 28세, 16세인 두 딸을 둔 약사 석광철(55) 씨는 “수신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긴 해도 보낼 줄은 몰라 애들의 문자에 답신을 한 적이 없다. 메시지 보내는 법을 배워 몇 차례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키패드 자판이 낯설다”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키패드 대신 인터넷 포털 사이트상에서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서비스(웹투폰·web to phone)를 애용한다고 해 나도 그렇게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자녀가 절실히 바랄 때 부모가 살짝 건네는 ‘사랑해’라는 문자의 힘은 묵직한 감동으로 남는 법. 지금에라도 키패드를 벗삼고 싶지 않은가. 애틋함이 소록소록 배어나는 문자의 힘은 강하디강하다. 단, ‘사랑해’를 ‘사망해’로 입력하는 치명적 오타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