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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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뿌리고 관객 외면 흥행 연패 사슬 끊을까

  • 입력2006-08-16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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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 뿌리고 관객 외면 흥행 연패 사슬 끊을까
    서울 종로3가의 씨네코아 스폰지하우스에서 김기덕 감독의 13번째 영화 ‘시간’의 기자 시사회가 끝난 뒤 김 감독이 무대로 올라왔다.

    김기덕 감독은 언제나 모자를 쓰고 다닌다. 베를린이나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도 모자를 쓴 채 무대에 올랐다. 김 감독을 만난 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그가 모자를 벗은 모습은 영화를 통해서 처음 봤다. 그가 감독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스님으로 출연했을 때였다. 스님 역이었던 만큼 머리를 깎은, 그리고 모자를 쓰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최초의, 유일한 경험이었다.

    세계영화제서 감독상 받은 작품도 10만 못 넘겨

    무대에 올라온 김기덕 감독은 푸른 모자 차림이었지만 검은 선글라스도 끼고 있었다. 기자들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있었다.

    “안경을 벗은 상태로 아는 분들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입술을 꽉 다물었다. 입 주변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오늘 이 자리가 김기덕의 제사상 같습니다.”

    뱉어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심장했다. 김기덕이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 것은 2004년 국내 개봉한 ‘빈 집’ 이후부터다. 그때 그는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최전성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마리아’로 2004년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8월 ‘빈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또다시 감독상을 받았다. 이는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한 감독이 두 편의 다른 영화로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두 차례나 감독상을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아주 드문 사건이다.

    2월의 베를린, 5월의 칸, 8월의 베니스. 이 3대 세계영화제에서 두 번 이상 수상하려면 한 해에 두 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중복 출품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편의 작품성이 모두 뛰어나야 한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두 개의 영화제에서 각각 다른 작품으로 감독상만 수상했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희귀한 경우다.

    베니스에서 수상한 뒤 귀국했을 때 국내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가 나오지 않은 매체가 거의 없었다. 그의 고향 경북 봉화에서 열린 지역 축제에 초청받아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이런 뜨거운 관심 속에서 개봉된 ‘빈 집’의 주인공은 이승연이었다. 위안부 파동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그녀가 오랜만에 연기 활동을 재개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화제 뿌리고 관객 외면 흥행 연패 사슬 끊을까

    ‘시간’

    그러나 ‘빈 집’은 흥행에서 참패했다. 김기덕의 영화가 전국 10만명을 넘긴 것은 조재현 주연의 ‘나쁜 남자’가 유일하다. 대부분은 2만, 3만명 수준에 그쳤다. 관객 1000만명 시대에 그의 영화는 전국에서 100만도 아닌 10만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를 절망케 했다. 대중에게 외면받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자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렸다. 필자도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독창적 세계 고집하며 저예산 영화로 돌파구

    김기덕의 영화가 흥행이 안 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96년 그의 데뷔작 ‘악어’부터 대부분 전국 5만명 이내의 관객만이 그의 영화를 봤다. 하지만 그는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거칠고 비일상적인 영화 표현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과 타협하는 대신, 자신의 독창적 세계를 고집하면서 저예산 영화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한때 그는 “나도 100억원 예산의 블록버스터를 찍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블록버스터를 찍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위험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빈 집’에 대한 김기덕의 기대는 남달랐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연거푸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베니스의 사자도, 베를린의 곰도 가져왔다. 이제 남은 것은 칸의 종려나무 가지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이승연의 재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높았고, ‘빈 집’에 대한 홍보도 잘 이루어졌다. 이렇듯 여러 호재가 작용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개봉했지만, 관객은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지 않았다.

    “무례하게 보이려는 의도는 없다. ‘빈 집’을 개봉한 후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김기덕은 달변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적극적으로 토론을 끌고 나가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이날 무대에 올라온 김기덕은 말이 없었다. 어떤 질문에는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빈 집’의 흥행 실패로 좌절하고, 마음의 상처도 심하게 받은 듯했다.

    2005년 발표된 그의 영화 ‘활’을 개봉하면서 김기덕은 승부수를 띄웠다. ‘김기덕 필름’이란 회사를 만들어 그가 직접 제작한 이 영화는 기자 시사회도 하지 않은 채 서울 강남의 신생 극장에서 단관 개봉을 했다. 그리고 그는 “보고 싶으면 극장에 와서 표를 사서 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첫 회를 예매해 관람했다. 몇 명의 기자가 눈에 띄었지만, 일반 관객은 역시 많지 않았다. 극장 좌석 수도 적고 첫 회였음에도 빈자리가 많았다. 이후 지방의 몇몇 극장을 돌며 개봉한 ‘활’의 최종 관객 수는 1634명이었다. 관객 1000만명 시대에 1000명 겨우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지금 한국 영화 개봉을 위해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은 평균 15억원 내외다. 아무리 예산을 줄여도 5억원은 든다. 김기덕은 ‘활’을 개봉하면서 여러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필름 원본을 복사하는 프린트 비용, 그리고 시사회를 진행하는 등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봤자 자신의 영화를 보기 위해 오는 관객은 제한되어 있으며, 결국 홍보를 하든 하지 않든 김기덕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는 더 비참했다. 이제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계속 만들어야 하나? 김기덕은 국제적 지명도를 갖기 이전에는 저예산과 비디오 판권에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국제적 지명도가 생긴 이후에는 해외 투자자들에게서 돌파구를 찾았다. 적은 돈이지만 영화를 만들 돈은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 등 해외 투자가들의 지원으로 13번째 영화 ‘시간’을 찍었다.

    “국내서 열리는 어떤 국제영화제에도 출품 안 한다”

    “한국은 ‘시간’이 수출된 전 세계 30여 개국 중 하나다. 어쩌면 ‘시간’은 내 영화 중 국내에서 개봉하는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에서 개최되는 어떤 국제영화제에도 작품을 출품하지 않겠다.”

    ‘시간’의 국내 개봉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영화사 스폰지가 해외에 있는 ‘시간’의 배급사로부터 이 영화를 역으로 수입함으로써 국내 개봉이 가능해졌다. 김기덕은 단호했다. 그의 단호함 속에는 상처받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시간’의 한국 개봉 의미를 축소했고 타협의 여지를 차단했다.

    “한번 마음먹으면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 있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이런 내 발언은 영화감독으로서 스스로 장애물을 만드는 셈이고, 이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면 영화감독으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1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김기덕 감독이 불과 2주 만에 70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괴물’의 엄청난 흥행 성공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가장 피 흘리는 감독으로서 말한다면, 한국 영화의 수준과 한국 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영화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몇몇 대중적인 영화에만 관객이 몰리는 시대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획일주의 군사문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이 꼭 생존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다. 이는 곧 우리가 풍요로운 세계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억압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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