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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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꽃이냐 위험한 발상이냐

전시 작통권 환수 논란 쟁점 분석 … 한-미 동맹 政爭 대상 안타까운 일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6-08-16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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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국방 꽃이냐 위험한 발상이냐

    8월11일 서울역 광장에서 퇴역 군 장성 모임인 성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전시통제권 조기 환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이하 작전권) 환수 문제가 국론분열을 일으키는 태풍의 핵(核)으로 등장했다. “지금 환수해도 작전권 행사에 큰 지장이 없다”고 한 8월9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합뉴스 회견이 불붙은 짚단에 기름을 끼얹는 구실을 했다. 전직 국방부 장관 17명은 다음 날 “한반도 안보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미 연합 방위체계를 흔들려는 저의는 미국 철수를 겨냥한 대남공작 차원의 흉계에 휘말리는 꼴”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안보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위험한 발상”이라며 작전권 환수 시기 논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작전권 조기 환수를 천명한 노 대통령의 발언을 핵심 쟁점별로 정밀 분석했다.

    1. 작전권 환수는 ‘자주국가’로 가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인가.

    (노 대통령 발언) “우리나라는 자기 나라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경제 11위 대국이고 병력 수로는 세계 6위인 군사강국임에도 작전권을 못 갖고 있다. 작전권이야말로 자주국방의 핵심이며,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꽃이다. 실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꼭 갖춰야 할 국가의 기본요건이다.”

    >>> 전직 국방부 장관들은 집단방어체제가 대세인 현재의 국제체제에서 작전권 환수는 주권국가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전시에는 미군이 주로 맡는 NATO군 사령관에게 작전권을 위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작전권 문제를 ‘자주 논리’가 아니라 ‘경제 논리’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전 세계 군비에서 절반 가까이를 지출하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 ‘혼자 힘으로’ 국방을 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고 설명한다. 노 대통령이 “장래 동북아의 평화구조나 남북 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도 작전권이 필요하며, 남북 간 군사협상을 할 때도 한국군이 작전권을 갖고 있어야 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에서다. 이를 볼 때 작전권 환수는 장래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을 염두에 둔 구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 즉, 현재의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그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계산에 넣은 결과라는 해석이다.



    2. 2009년 작전권 환수는 시기상조 아닌가.

    (노 대통령 발언) “시기상조를 말하는 분께 ‘언제가 적절한가’라고 묻고 싶다. 2003년에 발의해서 우리 군이 2012년으로 잡은 만큼 긴 기간에 걸쳐 준비하고 있다. 그 기간에 우리 군이 독자적인 작전통제를 위해 보완할 것은 보완할 예정이며 국방개혁 계획도 추진 중이다. 시간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좀더 앞당겨도 된다.”

    자주국방 꽃이냐 위험한 발상이냐

    같은 날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는 진보단체들의 전시통제권 즉각 환수 촉구 시위가 열렸다.

    >>> 노 대통령은 2007~2011년 국방중기계획에 드는 151조원, 나아가 2020년까지 소요되는 621조원의 국방개혁 예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도 “국방개혁안은 자주국방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작전권 행사로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방개혁 예산은 단기적으로만 봐도 내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9.9%씩 증액을 전제로 한 ‘도상(圖上)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성장 동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 같은 예산 지출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더욱이 차기 정권에서는 국방예산이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방전문가인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예산도 없으면서 무슨 작전권 환수냐. 환수비용만 30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추가 예산요청이나 정보전력 증강 없이 현재 국방 중기계획만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3. 작전권 돌려받는다고 해서 한-미 동맹 이완 안 된다?

    (노 대통령 발언) “한-미 관계는 100년 이상 된 역사인데…, 약간의 입씨름으로 파탄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이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길 한국 국민이 바라겠는가.”

    >>>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자연스러운 협상 과정을 (일부에서) 갈등이라고 계속 부풀린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부시 미 대통령과 대화가 적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통화를 합친 것만큼 통화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한-미 동맹에 대한 우려는 한국 쪽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동안 미국 조야에서도 한-미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8월8일 작전권을 한국에 일찍 넘기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대해 겉으로는 “한국이 자체 방위에 더 큰 책임을 지겠다는 건 자연스런 요청”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 고위 관리는 이날 한국정부가 원치 않았던 (작전권 환수) 일정을 제시하면서 2만5000명 선으로 합의됐던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4. 우리 군의 역량은 정말 믿을 만한가.

    (노 대통령 발언) “우리 군의 수준은 높다. 눈이 높다. 군의 욕심은 차제에 최고 A급,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스템을 갖춘 군대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 노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자기 방위 능력도 없다’고 말하는 건 정말 사리에 맞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자존심도 없는 얘기는 그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계속돼온 북한의 경제난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직 국방부 장관들은 한목소리로 “우리 군이 제대로 대비도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작전권을 돌려받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은 10일 한 인터뷰에서 “재래식 무기만 따졌을 때 우리 육군의 전력은 북한의 80% 수준이며, 우리가 아무리 재래식 무기를 증강한다고 해도 북한이 핵 능력을 갖게 되면 모두 허사”라고 밝혔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방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정보전력 등 독자적인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5. 누가 ‘안보장사’를 하는가.

    (노 대통령 발언) “북한의 군사 위협을 부풀리고 한국의 국방력을 폄하하는 경향은 고쳐져야 한다. 참여정부가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사람 생각이 잘 바뀌지 않고, 안보장사 시대에 성공한 일부 신문들이 지금도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고 있다.”

    >>> 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유치하게 좀 하지 말자” 등 직설적인 어투로 반박했다. 최근 청와대 측과 다소 소원해진 열린우리당도 이번에는 “최근 언론 양태를 보면 ‘제2의 금강산댐 보도’를 보는 것 같다”(김현미 의원) 등 노 대통령에게 적극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10일 “노 대통령이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역(逆)안보장사를 하고 있다”며 공격했다. “노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핑계로 진보세력 결집을 도모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치세력 간의 갈등과 투쟁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겠지만, 국가안보가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은퇴한 지 오래인 군(軍) 원로들까지 집단으로 나섰을까. 노 대통령이 ‘안보장사’를 한다는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다른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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