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0일 저녁 7시,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4층의 한쪽에서 이색 회갑연이 열렸다. 행사장 어귀에는 축의금 접수대 대신 친지들이 수재민을 돕기 위한 성금을 십시일반 낼 수 있는 수재의연금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회갑연의 주인공은 권송성(65) 성원건설 고문의 부인 손옥순(60) 씨.
손 씨가 회갑연을 수재의연금 모금의 장으로 만든 데는 남편 권 고문의 영향이 컸다. 권 고문이 1개월여 동안 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마다 수재민과 함께 음식을 나누자는 뜻으로 1만원씩을 ‘출연’해 121만원을 모은 것을 보고 “나도 동참하겠다”며 나선 것. 노부부가 이렇게 모은 돈은 모두 333만원. 권 고문의 나눔 정신은 17세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으면서 시작됐다.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며 의사가 치료를 포기했지만 극적으로 병세가 호전되었고, 그 이후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얻은 것들을 어려운 분들이나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습니다.”
젊은 시절 전북 전주에서 운수사업을 하다가 건설업에 눈뜬 그는 원주에 본사를 둔 백강건설 회장과 대우건설의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매달 급여일마다 수십만원의 후원금이 그의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지난해
6월에는 백강건설의 퇴직금 1320만원을 복지재단에 기부해 3명의 소년소녀 가장이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10만원씩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42만원의 수험료가 없어서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한 소년에게 50만원을 송금해주었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소년은 지금 늠름한 해군 중위로 성장해 있다.
권 고문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녘 동포의 생활 개선을 위한 남북협력기금으로 1000만원을 통일부에 기탁했다. 2002년에는 경의선·동해선의 철도 및 도로 연결 공사가 착공된다는 소식을 듣고 1000만원을 또다시 쾌척했다.
외국에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2001년에는 회사에서 받은 상여금 전액(3000달러 상당)을 9·11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미국에 보내,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토머스 허버드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81년에는 6·25전쟁에 참전해 눈을 잃은 미국 군인들을 위해 자신이 죽으면 안구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주한미군 측에 제출했다.
그의 재산은 서울 서초동의 36평짜리 낡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건설회사 고문으로 받는 월 수입은 1300만원 정도. 권 고문은 “남들은 내가 최소한 수십억대 재산가인 줄 알지만 막상 집에 와보면 놀란다”며 “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는 이웃과 우리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을 계속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 씨가 회갑연을 수재의연금 모금의 장으로 만든 데는 남편 권 고문의 영향이 컸다. 권 고문이 1개월여 동안 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마다 수재민과 함께 음식을 나누자는 뜻으로 1만원씩을 ‘출연’해 121만원을 모은 것을 보고 “나도 동참하겠다”며 나선 것. 노부부가 이렇게 모은 돈은 모두 333만원. 권 고문의 나눔 정신은 17세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으면서 시작됐다.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며 의사가 치료를 포기했지만 극적으로 병세가 호전되었고, 그 이후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얻은 것들을 어려운 분들이나 좋은 일과 옳은 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습니다.”
젊은 시절 전북 전주에서 운수사업을 하다가 건설업에 눈뜬 그는 원주에 본사를 둔 백강건설 회장과 대우건설의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매달 급여일마다 수십만원의 후원금이 그의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지난해
6월에는 백강건설의 퇴직금 1320만원을 복지재단에 기부해 3명의 소년소녀 가장이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10만원씩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42만원의 수험료가 없어서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한 소년에게 50만원을 송금해주었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소년은 지금 늠름한 해군 중위로 성장해 있다.
권 고문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녘 동포의 생활 개선을 위한 남북협력기금으로 1000만원을 통일부에 기탁했다. 2002년에는 경의선·동해선의 철도 및 도로 연결 공사가 착공된다는 소식을 듣고 1000만원을 또다시 쾌척했다.
외국에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2001년에는 회사에서 받은 상여금 전액(3000달러 상당)을 9·11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미국에 보내,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토머스 허버드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81년에는 6·25전쟁에 참전해 눈을 잃은 미국 군인들을 위해 자신이 죽으면 안구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주한미군 측에 제출했다.
그의 재산은 서울 서초동의 36평짜리 낡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건설회사 고문으로 받는 월 수입은 1300만원 정도. 권 고문은 “남들은 내가 최소한 수십억대 재산가인 줄 알지만 막상 집에 와보면 놀란다”며 “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는 이웃과 우리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을 계속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