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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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수난시대 “쪽팔려 못 살겠다”

조관행 전 판사 구속으로 큰 파장 … 비리 관행 근본적 해결 촉구 속 후속수사 예의주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6-08-16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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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인 수난시대 “쪽팔려 못 살겠다”

    법조브로커 김홍수 씨로부터 억대의 금폼을 받고 민·형사 재판에 개입한 염의(알선수재)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운데)가 8월9일 새벽 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법조브로커 김홍수 사건으로 구속된 조관행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실명이 처음 법조계와 언론에 나돈 시기는 지난 늦봄. 그가 브로커 김 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은 바람을 타고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갔다. 소문의 진상도 검찰에 의해 하나 둘씩 밝혀졌다. 검찰은 수차례에 걸쳐 엠바고(보도통제)를 요청, 기자들의 속을 끓이기도 했다. 그리고 8월8일 밤 조 전 판사는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브로커 김 씨가 조 전 판사에게 청탁한 사건은 90% 이상 해결됐다고 알려졌다. 조 씨가 김 씨로부터 청탁받은 사건에는 피의자 보석 등 형사사건도 있지만, 여관 영업정지 해제 소송이나 골프장 사업권 소송 같은 민·행정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구속된 검사도 조폭 분야서 ‘잘나가던’ 몸

    조 전 판사는 엘리트 집단인 법조계에서도 잘나가던 엘리트였다. 대한민국 법관 중 민법 분야에 가장 조예가 깊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그는 줄곧 ‘1등’이었다. ‘1등’만 갈 수 있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및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고,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거친 뒤 2005년부터 차관급 대우를 받았다. 사법연수원 시절 그의 제자였다는 한 로펌의 변호사는 “(조 전 판사는) 항상 자신감에 넘쳐 있는 분이었다. 말이 좀 앞서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워낙 실력 있는 분이어서 존경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이런 일에 연루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조 씨와 함께 구속된 김영광 전 서울지검 검사 역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위 ‘잘나가는’ 검사였다. 특히 조직폭력 분야에서는 ‘살아 있는 바이블’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의 활약은 전국적으로 대단했다. 그는 최근 1, 2년 사이에도 영등포 남부동파와 서울 장안동파, 이글스파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10여 개의 폭력조직을 직접 수사했고, 2004년에는 해외원정 카지노 도박과 관련해 연예기획사 대표 등 10여 명을 구속시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건 무마 대가로 받은 1000만원으로 인해 푸른색 수의를 입고 창살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민오기 전 서대문경찰서장 등 함께 구속된 3명 중 가장 적은 뇌물 액수였다.



    법조인 수난시대 “쪽팔려 못 살겠다”

    윤상림(좌).김홍수(우).

    그들의 구속이 가져온 충격은 만만치 않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현직 법관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법조계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홍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3~4명의 현직 판사와 변호사들에 대한 수사가 남아 있다는 것.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조 전 부장판사를 비롯해 이미 구속한 3명 외에도 대법원 재판연구관 신분의 모 판사를 이미 여러 차례 불러 조사했다”며 “판사 7~8명에 대한 수사를 이달 말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구속된 조 전 판사의 폭탄선언이 이어질 경우 현재 구속된 숫자에 ‘0’이 하나 더 붙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한 법조기자는 “조 전 판사 등 3명의 구속으로 이번 사건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구속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검찰이 더는 사법부와 검찰을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이라고 말했다.

    법조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불신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 전 판사의 과거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는 진정서도 검찰에 접수됐다. 법조계는 ‘재판 불복’ 움직임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만난 한 현직 판사는 “요즘은 어디 가서 ‘직업이 판사다’라는 말도 못한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피했다.

    법조계에서는 “올해 초부터 시작된 법조인 수난이 절정을 맞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전·현직 판·검사들이 대거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말 법조브로커 윤상림 사건 때부터. 당시 사건에도 10여 명의 전·현직 판·검사들이 구설수에 올랐다. 수사 도중 판사 2명은 돈거래 사실이 드러나 ‘조용히’ 옷을 벗기도 했다. 대검 차장 출신의 김학재 변호사는 기소됐고, ‘잘나가던’ 검사 황희철 전 법무부 정책홍보실장은 전보조치되는 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법조인은 아니지만 윤 씨 사건으로 인해 경찰을 떠났던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은 최근 윤 씨 사건 관련자 중 처음으로 실형(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법조인과 브로커 부적절한 만남 왜 계속될까

    법조브로커 김홍수와 윤상림, 이 두 건의 사건은 ‘법조인과 브로커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측면에서 닮은꼴이다. 법조인과 브로커의 첫 만남, 돈거래, 청탁으로 이어지는 관계 형성 과정은 두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브로커 윤 씨와 친분이 있는 한 현직 고위 검사는 윤 씨 수사가 한창일 당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5~6년 전 고검장을 지낸 전직 검찰 간부로부터 윤 씨를 소개받았다. 윤 씨는 검찰과 법원의 고위 간부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로 초대하고 접대하면서 사람을 소개하는 식으로 관계를 넓혀갔다. 사람들에게 아주 잘 했다. 그는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런저런 이권에도 개입했던 것 같다. 나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뻔한 것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서 청탁을 하기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설명은 김 씨 사건에도 똑같이 재연됐다. 김 씨 사건의 주인공인 조 전 판사는 전직 검찰 간부이자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를 통해 김 씨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넘게 ‘우정’을 키워오다가 언젠가부터 사실상 김 씨의 ‘관선변호인’ 노릇을 해왔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돈과 금품 제공이었다.

    법조계에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걸까. 김홍수 사건 직전에 만났던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비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관행과 구조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내 경우 검찰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다음 실제로 체감했던 것이 ‘이 자리가 일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자리는 아니구나’라는 점이었다. 후배 검사들에게 스폰서를 알선하고, 골프도 시켜주고, 술도 사줘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 돈을 조달할 수 없는 사람은 지킬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이 브로커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돈’이라는 점은 앞으로 법조인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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