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

‘죽기 전에 꼭’ 할 일 이렇게 많나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6-08-21 09: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죽기 전에 꼭’ 할 일 이렇게 많나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보기, 소중한 친구 만들기, 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외쳐보기, 마음을 열고 세상 관찰하기, 혼자 떠나보기, 일기와 자서전 쓰기…. 이쯤 하면 아, 그 책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위즈덤하우스)의 목차 중 몇 개를 골라봤다. 2004년 12월에 나와 1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한 책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오늘은 이 책의 제목에 딴죽을 걸려 한다. 2005년 출판계를 정리하는 좌담에 참석해서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49가지, 45가지 이런 제목의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는 이유를 굳이 따져보자면, 이 많은 실천 항목 중 최소한 몇 가지라도 해야 한다는 작은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요즘은 이 숫자들이 작은 부담이 아니라 ‘제목의 횡포’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 온라인 서점이나 들어가 검색창에 ‘살아 있는 동안’ 또는 ‘꼭 해야’를 쳐보라. ‘씨앗 뿌리는 20대가 꼭 해야 할 37가지’ ‘남편과 아내가 꼭 해야 할 33가지’ ‘20대에 꼭 해야 할 일 46가지’ ‘초등학생이 꼭 해야 할 50가지’ ‘여자로 태어나 꼭 해야 할 42가지’ ‘10대에 꼭 해야 할 33가지’ ‘20/30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89가지’ ‘새해에 꼭 해야 할 50가지’.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보다 한발 앞서 우리에게 인생의 의무를 팍팍 지워준 제목이 ‘죽기 전에’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33’(중앙 M·B)이 2003년 7월에 출간된 이래 같은 제목으로 두 권의 여행책이 더 나왔다. 소설도 아닌 실용서 제목에 ‘죽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넣은 것은 모험이었지만, 제목의 강렬함이 책 판매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아류작이 쏟아졌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체험여행31’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88가지’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소문난 맛’. 급기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00곳’(이마고)까지 번역됐다. 사실 이 책이 잘나가는 제목을 모방했다고 하면 억울할 것이다. 원제가 ‘1000 places to see before you die’로, ‘죽기 전에’라는 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1000가지라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 꼴도 그렇다. 한정된 지면에 1000가지를 구겨넣다 보니 사진이나 정보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여행지 목록이 되어버렸다.

    일본 칼럼니스트 소노 아야코는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리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이 하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다. 남이 해도 안 하고 남이 안 해도 하는 게 용기이며 품위라고 나는 배웠다.” ‘살아 있는 동안’ 또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꼭 하고 싶은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