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수원(水源)지에 세워질 조형물 조감도.
‘청계천 물은 중앙청 코앞에서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인데, 그렇게 개천을 만들어 놓으면 나라가 망한다. 얼굴에 혈관을 보이게 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수도가 옮겨갈 뻔했던 것, 황우석 교수 사태, 두산과 삼성 그룹 사태 등 국가의 혼란스러운 일이 바로 청계천 복원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1968년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꼴찌였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청계천을 덮자 경제가 1등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청계천을 덮고 건설된 3·1고가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알리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뜯어내고 청계천을 만들었으니 나라가 혼란스러워졌다.’
필자는 이미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2000년 7월 외국계 방송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청계천 다큐’를 제작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때도 그와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 시중의 풍수 술사들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태조 이성계가 처음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그를 수행했던 지관 윤신달과 이한우는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북악산과 인왕산이 지나치게 바위가 많고 그 모양이 험하다. 둘째, 북서쪽(자하문)이 골이 졌다. 셋째, 개천(청계천)의 물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와 셋째의 문제점은 결국 같은 것이다. 바위산이므로 비가 오면 물을 그대로 방류하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개천 수량이 줄어든다.
도성 안을 흐르는 개천을 풍수에서는 명당수(明堂水)라고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청계천 명당수 관리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예컨대 1433년 세종은 명당수 수원(水源) 마련을 위한 대책을 지시한다. 이때 세종은 “풍수지리설을 쓰지 않으려면 몰라도 부득이 쓰려면 풍수설을 따라야 할 것이다”고 하여 풍수적인 이유임을 분명히 했다.
선조는 도성의 지기가 쇠한 까닭에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고 지기가 쇠한 이유가 바로 청계천의 끝 부분 수구(현재 광희문-동대문운동장-관묘 일대)가 벌어진 것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1600년 ‘수구막이’로서 관묘를 세우게 한다. 1760년 영조는 청계천에 쌓인 토사를 치우기 위해 대규모 준설작업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역시 풍수설에 따른 명당수 보전 때문이다.
청계천 복원은 한양을 완벽한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복개된 청계천의 탁한 물이 음모와 부패를 상징한다면, 복원된 청계천의 맑은 물은 정직과 번영을 상징한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완전한 것이 아닌 시늉일 뿐이라고 말한다.
복원된 청계천.
지금처럼 한강 물을 억지로 역류시켜 수원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지가 않다. 언젠가 역풍을 맞는다. 최근 서울시는 복원된 청계천 물이 시작되는 지점(水源)에 외국인 조각가로 하여금 조형물 ‘스프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높이가 20m 되는 꽈배기 모양의 조형물인데 340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
풍수에서는 탑 세우기나 가산(假山) 만들기, 나무 심기, 연못 파기, 물길 돌리기 등 다양한 비보풍수를 행한다. 이는 불완전한 땅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인데, 거기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아무런 까닭 없이 ‘꽈배기 모양의 쇠말뚝’ 을 물길이 시작되는 곳에 박는다고 한다. 풍수에서는 그럴 경우 재앙을 부른다고 해석한다. 그렇게 되면 허경영 씨가 지적한 것처럼 도참설(음양오행설에 의해 인간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던 학설)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