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선기금을 운영하고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부부.
자신들의 이름을 딴 세계 최대 자선기금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출연한 기금은 무려 288억 달러, 우리 돈으로 30조원에 이른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 세 자녀에게는 각각 1000만 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단 근무자만 250명에 이른다. 빌 게이츠 자신도 돈만 내는 게 아니라 효과적 자선사업을 위해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전략회의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빌 게이츠 부부의 행적은 서구 선진 기부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구인들의 기부는 비교적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더구나 습관적이며 하나의 생활문화로 정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부는 정에 끌린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연말과 같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서구인들의 일상화된 기부문화는 기독교에 영향받은 바 크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근검절약하면서, 나머지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을 종교적 생활윤리로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일반인들의 80% 이상이 기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연금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는 노인들까지도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부를 가문의 전통으로 이어가려는 노력도 확산되고 있다. 빌 게이츠 부부처럼 가족 재단을 만들어 후세들까지 그 재단에 계속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다. 미국 자선재단의 70% 이상이 가족 재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자들의 기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상층보다는 중층 혹은 중·하층 기부가 많은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2001년 미국의 억만장자인 금융황제 워렌 버핏,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등 120여명의 부호들이 정부의 상속·증여세 감면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미국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증여세를 감면할 경우 개인적으로는 이익이 되지만 사회적으론 부의 세습이 강화돼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부자들 사회적 책임 의식 … 기업은 ‘명분 연계 마케팅’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떨까. CEO나 대주주들이 자기 이름으로 워낙 많은 기부를 하고 있으니, 기업은 자사의 업무와 관련한, 혹은 지역 연고를 고려한 마케팅 전략으로서의 기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기부 방향은 CEO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전문가들을 고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비영리 조직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면서 파트너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명분 연계 마케팅’ 방식을 선호한다.
기부 활성화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영리단체들의 투명성 확보다. 미국은 비영리단체에 대한 철저한 감시체계 확립으로 시민들이 믿고 기부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놓고 있다. 자선자문서비스부(Better Bureaus’ Philanthropic Advisory Service), 자선정보부(National Charities Information Bureau) 등이 바로 그런 감시 기구들이다. ‘자선감시기구(charitywatch.org)’에서도 주요 비영리단체들의 기부금 모집과 사용에 대한 등급을 공시해 기부자들의 올바른 기부행위를 유도하고 있다.
서구는 기부를 단순한 적선이 아닌 사회에 대한 투자로 이해한다. 기부야말로 양극화로 인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