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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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놀음인가, 정치놀음인가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6-01-02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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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놀음인가, 정치놀음인가
    왕의 남자’의 원작은 김태웅의 희곡 ‘이(爾)’. 연산군의 눈에 들어 권력의 맛에 빠진 광대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들의 비중을 바꾸고 이야기를 변형시켜 희곡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원작 역시 지금 재상연 중이니, 궁금하시다면 한번 확인해보시길.

    영화는 패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달아난 장생과 공길이라는 두 광대가 한양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한양에서 연산군과 장녹수의 관계를 풍자하는 광대놀이를 벌였다 체포된 두 사람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내시 처선의 도움으로 왕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연산군의 맘에 든 이들은 궁중 광대가 되고, 그 뒤로 궁내에서 펼쳐지는 온갖 암투의 도구가 된다. 공길을 둘러싸고 연산군, 장녹수, 장생이 얽힌 복잡한 애증 관계가 구축되는 것도 당연하고.

    광대놀음인가, 정치놀음인가
    연산군에게 직언을 하다 처형당한 광대 공길은 실존 인물이지만, 영화는 장생과 공길의 이야기를 실제 기록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끌고 간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실제 공길의 이야기를 하거나 원작인 ‘이’를 각색하는 것보다 한국판 ‘패왕별희’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에서 서브텍스트로 존재했던 동성애 이슈는 전면으로 부각되고 심지어 경극을 모방한 장면까지 나온다.

    흥미진진한 영화적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만한 이야기지만, 정작 ‘왕의 남자’는 그렇게 영화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 공길의 꼭두놀이처럼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들도 많고 새로 바꾸어 쓴 결말처럼 그 자체로 강렬한 장면들도 많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예술적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각 시퀀스마다 어울릴 법한 아이디어들을 외부에서 가져와 그냥 엮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결정적인 장면에 사용되는 경극은 문제가 크다.

    정교한 진짜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완벽하게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낸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엉성한 흉내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동성애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상대적으로 나이브하고 소극적이며 지나치게 스테레오타입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하게 캐스팅된 배우들은 모두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이야기와 설정은 영화를 위한 지나친 ‘통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하다. 만약 예술적 비전이 더 확실한 감독이 ‘패왕별희’ 아류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공법으로 이 작품에 접근했다면 얼마나 근사한 영화가 나왔을까?



    Tips

    연극 ‘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새로 문을 연 극장 용에서 상연 중인 ‘이’는 영화 개봉에 맞춰 영화 티켓을 가져오는 관객들에게 30%의 관람요금 할인을 해준다. 연극 ‘이’는 2006년 1월7~22일에 같은 극장에서 연장공연을 한다. 1544-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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