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너는 내 운명’은 70대 노인 커플의 솔직한 성 묘사로 유명해진 첫 번째 장편영화 ‘죽어도 좋아’와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는데, 그 정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듯, ‘너는 내 운명’도 실제 세계와 그 세계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멜로드라마보다 더 멜로드라마 같고 극적이다. 만일 실화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의 전반부는 시골을 무대로 한 투박한 질감의 로맨틱 코미디다. 자기만의 목장 운영을 꿈꾸는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이 서울에서 온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 분)에게 반한다. 필사적인 구애 끝에 결국 석중은 은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렇게 적당히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모두에게 좋았겠지만, 당연히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은하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고, 현대의 역병이라는 에이즈가 마지막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너는 내 운명’은 거의 70년대 호스티스물과 맞먹는 통속물이다. 일단 이 영화가 재료로 삼고 있는 소재들을 보라. 시골 다방에서 티켓을 파는 다방 종업원인 여자 주인공, 그녀를 사모하는 순박한 남자 주인공, 그들을 갈라놓는 사회의 편견, 그리고 불치병. 이 소재들을 다루는 방식은 70년대에 비해 세련된 편이지만, 그래도 영화가 직설적이고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너는 내 운명’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감추는 게 없는 영화다.

이런 정공법은 단점이 될 수도 있고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감독의 손에 들어간다면 이런 정공법은 그대로 예술적 안이함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용기 있는 감독이라면 이를 통해 거칠지만 효과적인 드라마를 창출해낼 수 있다.



다행히도 ‘너는 내 운명’은 후자에 가깝다. 소재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힘과 캐릭터의 진실함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순진무구한 시골 남자의 절대사랑이라는 단순한 소재가 에이즈 환자나 특정 계급을 향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설득력있는 비판으로 연결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배우들이 숨을 구석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와 스타일 속에서 전문 배우로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전도연과 황정민의 열연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