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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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범죄자들 꼼짝 마!”

사이버 수사의 산 역사 양근원 경정 … 10여년간 실무 책임자로 굵직한 사건 도맡아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5-09-13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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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범죄자들 꼼짝 마!”

    <b>양근원</b><br>。1963년 전북 남원 출생 。86년 경찰대 졸업, 경위 임용 。92년 경찰수사연수소 창설 요원 。94년 경찰청 형사국 신종범죄 담당 。97년 경정 진급 (진급 시험에서 전국 수석) 。2000년 경찰청 신지식인에 선정 。2001년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 (사이버범죄 수사론) 겸임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경찰의 자랑이다. 언론이 보도한 사이버 범죄 가운데 90% 이상을 이 센터에서 해결했다. 경찰대 시절부터 컴퓨터에 취미를 가진 수사관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이다. 일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국가정보원의 사이버안전센터나 검찰의 컴퓨터수사부와 비교해 적어도 수사력에서만큼은 우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책임지는 자리(사이버테러대응센터 단장, 총경급)를 거쳐간 경찰 고위 간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들은 반드시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자리만 지키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일은 양근원 경정이 다 했다.”

    실제 경찰 내에서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오늘처럼 키운 사람이 양근원 경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1995년 2명으로 출발한 해커수사대와 97년 컴퓨터범죄수사대, 99년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이어 2000년 현재의 이름인 사이버테러대응센터로 확대되기까지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한마디로 사이버 수사의 산 역사라고 할 만하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름의 변화 과정을 보면 IT(정보기술)가 진보하면서 나타난 역기능에 대응하려는 경찰의 선도적인 구실이 읽힌다. 지금이야 사이버 테러가 상식적인 개념이 됐지만 2000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다. 미국의 CNN 방송과 야후 사이트가 사이버 공격에 의해 다운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이버 유토피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이버 공격이 국가적·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테러라고 불렀다. 이 무렵 우리 정부도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을 인식했는데, 경찰이 바로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창설한 것이다.”

    명성 소문나 외국서 벤치마킹 하기도



    그는 경찰에는 자부심의 원천이지만 다른 조직에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특히 검찰에는 그렇다. 2000년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창설 멤버로 참여했다가 이후 검찰을 떠난 한 변호사는 “컴퓨터수사부 창설 직후 당시 검찰 고위층에서는 경찰의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필적할 만한 실적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압박하는 바람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기억했다.

    “사이버 범죄자들 꼼짝 마!”

    4월 경찰청을 방문한 IT 전문가들이 양근원 경정(왼쪽에서 두 번째)에게서 사이버 범죄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양근원 경정이 해결한 사건마다 언론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주었기 때문이다. △국내 30여개 상용통신망 무차별 해킹 사범 검거(1997년 8월) △국내 최대 컴퓨터 바이러스 제작 그룹(CVC) 멤버 검거(98년 2월) △KAIST 전산망 해킹, ‘우리별’ 관련 자료 유출 사범 검거(99년 3월) △사이버 테러형 웜바이러스 제작 유포 사범 검거(2000년 2월) △900억원 규모의 해외 원정 사이버 도박단 검거(2002년 7월) △정부기관 80여 곳을 해킹했던 국내 최대 해커집단 멤버 13명 구속(2003년 말) △국가기관 300여 곳의 시스템이 외국 해커에 의해 해킹당한 전모를 파악해 예방 시스템을 마련(2004년)하는 등 그가 해결한 사건은 그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타까운 점은 1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호기심이나 소영웅주의로 해킹을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야 해킹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모르고 하는 것이겠지만 자칫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양근원 경정은 현재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치안 모델 정립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디지털증거분석센터를 만든 것도 그 일환이다.

    “디지털 증거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분석 기법이나 수사 기술이 요구된다. 또 이에 대한 법적인 대응 역시 필요하다. 이를 어떻게 수집해 법정에서 증거 능력으로 활용할지 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의 명성은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 활약상이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등 선진국 수사기관 요원들이 벤치마킹 하러 올 정도가 됐다. 지난해 말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아시아태평양기구 사이버범죄협의체 정보통신 범죄수사 실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부의장에 선출된 것도 이런 명성 때문이었다.

    “사이버 범죄 관한 법 정비 시급”

    사이버 범죄를 수사하면서 그가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IT 발달에 따른 법 체계 정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만 해도 7만7000건의 사이버 범죄가 발생할 정도로 일상화됐지만 형법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사이버 범죄 처벌 규정은 정보통신부 소관 법률 17개에 나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도 없고, 심지어 서로 모순된 경우마저 있다는 것. 형사소송법 역시 IT 발달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북 남원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양 경정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뭔가를 만들고 분해하는 데 흥미를 가져 라디오나 TV를 뜯었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공학도가 자신의 길이었지만, 경찰대가 학비도 안 들고 먹여주고 입혀준다고 해서 등 떠밀려 입학하게 됐다.

    대학 시절부터 컴퓨터에 푹 빠져들었던 그가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동입출금기 조작 사건이 나면서부터. 이후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외국 사례를 찾는 등 사이버 범죄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다 ‘컴퓨터를 잘한다’는 소문 때문에 94년 PC 통신 홈뱅킹 등 신종 범죄를 맡는 경찰청 형사국으로 발령받은 것을 기회로 삼아 오늘의 사이버테러대응센터까지 발전시켜 온 것이다.

    요즘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사이버 범죄 수사 매뉴얼 작성이다.

    “사이버 범죄 수사가 어느 한 개인을 중심으로 발전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경찰을 떠나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분야는 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를 위한 첫걸음은 말할 것도 없이 매뉴얼 작성이다.”

    양근원, 그가 사이버계의 규율을 지키는 군기반장에서 기준을 만드는 사람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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