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역 신축 역사와 광장 터. 은평구청은 수색지구 단위계획에 포함된 터(아래)를 광장 터로 추가 편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영화 속 수색역은 역 앞 광장과 함께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한국철도공사가 경의선 복선화 공사를 한다며 2월28일 옛 역사를 철거해버렸기 때문.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으나 건물을 허물지 않고는 디젤 기관차가 다니는 현재 단선구조에서 전철 복선화로의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에 밀려 철거된 것이다.
경의선 복선화 공사는 남북 경제협력과 중국·시베리아 대륙횡단 철도 연계 등 국가적 사업과 맞물려 있는 데에다, 경기도 화정·일산·파주 등 수도권 서북부 지역 주민들의 서울 출퇴근 문제와 직결돼 있어 ‘옛 정취 타령’을 하며 철거 반대만 외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옛 철도청은 수색역의 철거와 경의선 복선화에 발맞춰 이미 4년 전인 2002년 1월 말, 초현대식 수색역 건물을 옛 역사 인근 철도 터에 짓기 시작했다. 지상 3층, 연면적 1562평의 규모에 KTX 서울역 건물과 비슷한 모양으로 짓고 있는 신역사의 완공연도는 경의선 전철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는 2007년. 그런데 올해 5월 외관은 완공됐고 내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공정률 70% 상태에서 돌연 공사가 중지됐다.
역사 건물들 뒤에 광장 위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사중지 상태가 3개월 넘게 계속되자 주변 사람들의 입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철도청이 관할구청인 서울시 은평구청의 허가 없이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색역 신축을 4년 동안 강행하자, 이를 못마땅해하던 은평구청이 철도청의 민영화를 기점으로 무허가 건물에 대해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소문은 과연 사실일까. 확인 결과 은평구청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도청이 역사를 신축하기에 앞서, 국가기관이 건축물을 지을 때 관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협의심사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지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건축법과 그 시행령은 국가기관의 경우 건축 허가를 받는 대신 소재지를 관할하는 허가권자, 즉 지자체와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협의를 거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후속조치에 대한 규정이 법 어디에도 없다는 점. 법 자체가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두 기관이 4년 넘는 협의과정에서 옥신각신, 밀고 당기기 식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온 것도 어쩌면 이 애매한 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거 전 옛 수색역사.
철도청은 김대중 정권 시기였던 2000년 3월11일 수색역사 신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경의선 복선전철 사업실시계획을 고시하면서 신축 역사 앞에 광장 용도로 1220여 평의 터를 확보했다. 이 터는 철도청 소유였으므로 땅값 보상과 관련해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전혀 없었다. 은평구청이 광장 터에 토를 달기 시작한 것은 철도청이 2001년 6월30일 수색역사 신축 협의를 정식 요청한 뒤부터. 은평구청은 철도청의 사업실시계획에 들어간 대부분의 광장 터가 다른 역사의 광장들처럼 도로(수색로), 보도 등과 바로 이어져 있지 않고 건물들 뒤에 위치한 사실을 발견했다(앞쪽 사진 참조). 즉 차량이나 시민들과의 접근성이 그만큼 떨어지게 돼 있었던 것. 이틀 후 은평구청은 철도청에 철도청이 확보한 광장 터와 붙어 있는(도로 접경지) 사유지 및 시·국유지, 철도용지 등을 합친 513평의 광장 터를 추가로 확보할 것을 요청했다.
은평구청 측은 “서울시와 구청이 함께 만든 지구단위계획상 이 터는 역사가 들어설 경우를 대비해 도시계획 지정 유보 지역으로 남겨두었다”며 “이제 와서 철도청이 이 터를 광장에서 제외하는 것은 시민들의 편의를 무시한 일방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철도청은 “시·국유지를 사들이려면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고 보상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해 착공시기가 많이 늦어진다. 더욱이 광장 터를 추가하려면 사업실시계획을 변경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엄청난 시간이 들기 때문에 결국 경의선 복선화 완공시점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며 반박했다.
경의선 복선화 사업 차질 예상
양쪽 주장의 핵심은 간단하다. 은평구청은 자체 예산을 들이지 않고 국비만으로 광장을 지역 안에 확보하려는 속셈이고, 철도청은 수색역 공사를 복선화 완료시점까지 끝내야 하니 시시비비는 추후에 가리자는 생각. 철도청은 신축 수색역사가 복선화할 선로와 승강장, 통신시설 등을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착공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결국 철도청은 그해 11월 은평구청의 광장 추가 확보 요구를 받고도, “추후에 의견을 반영해주겠다”는 통지만 한 뒤 이듬해인 2002년 1월 말에 신축공사를 강행해버렸다. 이후 ‘국가기관의 횡포’라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 꿋꿋이 공사를 계속하던 철도청은 수색역 신축공사의 주체가 민간기업인 한국철도시설공단(2004년 1월1일, 이하 철도공단)에 넘어가기 5개월 전인 2003년 7월21일에야 ‘수색역사 광장 추가 확보 방침’을 공식적으로 결정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공사 주체가 철도청에서 민간기업인 철도공단으로 바뀐 2004년 1월1일 이후부터는 수색역사가 협의 대상이 아닌 건축허가 대상이 되므로, 구청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5월 건설교통부가 이를 국가기관의 사업으로 봐 협의대상 건축물 지위를 인정해줬지만, 어쨌든 민간기업인 철도공단은 구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철도공단은 광장 추가 터 중 사유지를 철도 터와 교환해 추가 터 매입비용을 줄여보자고 제의했지만, 구청 측은 거절했다. 구청 측은 광장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공식적으로 보여주길 원했다. 광장 추가 터 매입을 위한 사업비를 사전에 확보하거나 사업실시계획을 변경해달라는 것. 하지만 철도공단이 2004년 8월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광장 추가조성 총 사업비 95억원은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광장 추가 부분을 도시계획상 정식 ‘광장 지역’으로 확정한 시점(2002년 6월27)이 건교부가 수색역사를 짓기 시작한 시점 이후라는 이유에서였다.
철도공단은 광장 추가 터 확보에 필요한 사업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구청에 추가 터 중 시·국유지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추가 터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예산 부처와 추가 터를 확보하지 않으면 협의가 어렵다는 은평구청 사이에서 철도공단의 속만 타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과연 이렇게 해서 2007년 경의선 복선화 사업은 완료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