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수준의 대학건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고려대 경영대학의 LG-POSCO관.
국내 주요 종합대학 총장들을 비롯한 경영대학 교수들에게 내려진 특명이다.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그 파급력이 국내 대학, 특히 경영대학(Business School) 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는 것. 대학들은 과거 법과대학이나 공과대학이 차지하던 각 대학의 간판을 경영대학으로 갈아치우며 경영대학과 경영대학원(MBA) 업그레이드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국제화 바람 때문이라지만 그 배경과 이유가 흥미롭다.
우선 시장의 변화. 각 대학의 간판 학과는 50~60년대 사범대학과 문과대학에서, 70~80년대 법과대학과 공과대학의 시대를 거쳐, 90년대 이후는 경제·경영대학과 의과대학이 주목받는 시대로 정리된다. 문제는 2008년부터 법과대학과 의과대학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서 학부생들을 뽑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하는 것. 게다가 문과대학이나 공과대학은 극심한 순수학문 기피현상으로 사회적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기업 인재’ 한마디로 돈 되는 교육
때문에 각 대학들은 경영대학 키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경영대학은 기업에 인재를 제공하는 구실을 맡고 있기 때문에, 수준 높은 인재를 공급할수록 향후 더 많은 기부금이나 발전기금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경영학 석사(MBA)나 기업임원 재교육 등 다양한 교육사업까지 가능해 대학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돈 되는 교육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익논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경영대학 안상형 학장은 “타 학문과 달리 경영학은 교육 성과나 수준을 계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대학의 경우 경영대학의 순위가 곧 대학 순위로 연결되기도 한다”며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경영·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도 주요한 이유가 된다”고 경영학 급부상의 배경을 설명한다. 즉 경영대학이 성공해야 그 대학의 발전은 물론 세계화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경영대학 전쟁의 서막은 고려대가 열었다. 이미 고려대 경영대학은 2002년부터 자체 발전기금 600억원을 적립하고 국제화를 화두 삼아 대학 간 경쟁을 CPA(공인회계사) 합격자 수나 취업률에서 대학 자체의 경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대학의 하드웨어 격인 건물에 무려 260억원을 투자하여 최고급 인텔리전트 빌딩을 짓고, 교수 수를 전임교수 60명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늘리는 혁명을 단행했다. 이 숫자는 머지않아 8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영어 강의를 35%로 늘리고 매년 130여명의 학생을 해외 유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파견하는 등의 파격적인 국제화 조치를 단행하여, 단 3년 만에 고려대 경영대학을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으로 변모시켰다.
각 일간지에 게재된 고려대 경영대학의 AACSB 인증 축하 광고.
서울대도 본격적 경쟁에 합류
AACSB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연간 수천명에 이르는 MBA 낭인을 막을 수 있게 되고, 또한 해외 대학과의 교류를 확대해 국내 석·박사 학위자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국내 경영대학의 발전은 우리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미국식 경영학이 아닌 한국식 경영 모델의 확립이란 의미도 지닌다.
연세대 경영대학은 전통적으로 이 대학의 간판으로 활약해오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국내 최정상급 경영대학이었지만 최근 고려대의 급성장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80~90년대 기업의 기부금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였고 CPA 합격자 수 1위를 차지했던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모습. 과거 사회계열로 통합해 뽑던 경영학과도 2004년부터 경영대학으로 분리했고, 올해는 300억원을 들여 경영관 신축 을 준비하는 등 분위기 반전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AACSB 인증이 학내 갈등으로 연기되는 등 학내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국내 최고의 학부로 자부심 높은 서울대도 본격적인 경영대학 전쟁에 뛰어들었다. 낡은 건물을 개축하고 여성인 조성욱 전 고려대 교수를 경영대학 사상 최초로 임용하는 등 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국립대라는 제약이 남모를 고민이다. 우선 입학정원만 해도 연세대가 480명, 고대가 390명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데 반해, 서울대는 1년 학부생 정원이 160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소규모 학생 수는 전임교수(고려대 60명, 연세대 53명, 서울대 43명)의 상대적 열세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투자는 물론 학문적 성과, 나아가 교세(校勢)의 열세로 이어졌다는 불만이다. 게다가 졸업생의 응집력마저 사립대 수준에 미치지 못해 명성만으로 대학을 유지해온 상황.
그러나 안상형 학장은 “서울대는 교수와 학생 수준이 세계 최고라 불릴 만하기 때문에 경영전문대학원을 세우고 집중 육성할 경우 머지않아 세계 인재들이 서울대에 MBA를 공부하러 오게 될 것이다”며 낙관했다.
각 대학의 치열한 경쟁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경쟁이 학문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 특히 경영학의 세부 분야에서는 각 대학이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학문적 자존심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 KAIST 역시 경영대학 발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연세대는 회계학 분야에서, 서울대는 마케팅과 전략에서, KAIST는 MIS(경영정보 시스템)에서 미세한 우위를 점하며 학문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CPA 합격자 경쟁은 90년대 절정을 이뤘지만 합격자 수가 1000명으로 늘고, 세 대학이 비슷하게 배출하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현재까지 구도는 서울대가 명성, 연세대가 전통에 우위에 있다면 고려대는 이 대학 특유의 응집력과 투자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시작한 형국. 파격적인 신문광고나 호텔급 이상의 대학 시설을 갖추고 공격적 마케팅을 벌이는 고려대 경영대학은 최근 대학가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8월 말 취임한 고려대 장하성 경영대학장은 “전통적인 고법(高法)-연상(延商) 구조를 깨뜨리겠다”며 “바른 경영과 가치 경영을 앞세워 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응집력이 강한 고려대 교우회도 발벗고 나서 경영대학 발전을 후원하고 나섰다. 고려대 경영대학의 질주에 타 대학들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