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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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 “내 모습 그냥 … 뻥치며 인생 왜 삽니까?”

순수·파격·독설·재미 ‘비빔밥’ 캐릭터 … “죽어라 매달린 음악 세상 사랑의 통로”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1-13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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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C “내 모습 그냥 … 뻥치며 인생 왜 삽니까?”
    “김C 아세요?” “김C가 누구야?” “아, 김C! 진짜 웃기데.”“웃기긴, 얼마나 독설간데.”“아냐, 정말 순박한 사람이더라구.”“잘못봤어. 그냥 멍청한 거야.”

    김C(33·본명 김대원)가 화제다. 본업은 록그룹 ‘뜨거운 감자’의 보컬. 그러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SBS TV ‘야심만만’, KBS TV ‘해피투게더’ 등의 오락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김C는 순수하고 솔직하면서 촌스럽고 파격적이며, 때로는 시니컬하고 공격적이기까지 한 복합적 캐릭터로 대단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특히 2회에 걸쳐 ‘야심만만’에 출연한 후에는 인터넷 게시판이 온통 김C 이야기로 ‘도배’가 될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김C는 이제껏 TV에 등장한 그 누구와도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아무 ‘의욕’이 없다. 튀어야겠다, 멋져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외모에 하는 말도 일상적이기 그지없다. 친구들끼리 동네 선술집에 마주앉아 툭툭 던지고 받는 식의 이야기를 구부정한 자세로 질겅질겅 씹어낸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에너지로 충만한 방송국 스튜디오(혹은 화면)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그야말로 ‘깨는’ 것. 개그맨인 MC들, 개인기로 무장한 연예인 게스트들은 일순 말을 잊는다. 이어지는 박장대소. 분명 말할 수 없이 웃긴데, 웃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김C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썰렁한 표정이다.

    각종 프로그램 섭외 대상 1순위

    김C는 라디오 쪽에서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 가을 개편과 함께 MBC FM 인기 프로그램 ‘음악살롱’(오전 9~11시) DJ를 맡았다. 주부들의 ‘티 타임’을 위해 흘러간 팝송과 말랑말랑한 사연들로 꾸며지던 ‘음악살롱’ 역시 김C가 등장한 후부터 훨씬 더 자유롭고 솔직담백한 색채를 띠게 됐다. 상식의 허를 찌르는 독설로 인해 묵직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방송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김C는 11월 첫째 주 ‘다음’(www.daum.net) 검색 순위 6위에 올랐다. SBS TV의 간판 오락프로인 ‘강호동 유재석 김제동의 소원성취 토요일’ 고정패널로도 활동한다. 각종 음악·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대상 1순위로 떠오른 것이다.

    김C를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음악살롱’에 주파수를 맞춰봤다. 마침 그의 입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 ‘오빠’라고 불러주시겠다는데 전 그냥 아저씨가 좋습니다, 아저씨. 아, 반대로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하는 단어들이 있거든요. 카리스마, 뜬다, 작업(연애를 건다는 의미) 이런 것들이 싫구요, 대신 아저씨, 색시, 이런 단어들이 좋습니다.”

    김C “내 모습 그냥 … 뻥치며 인생 왜 삽니까?”
    그날 오후, 홍익대 앞 한 건물 지하에 있는 밴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잠이 많이 모자란 듯 그의 눈자위가 빨갰다.

    “라디오 땜에 엄청 일찍 일어나야 돼요. 일산 사니까… 죽죠. 나한텐 이거 말이 안 되는 시간대예요.”

    코디네이터가 특유의 ‘먼지 머리’에 물을 주고 다듬는 동안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김C의 고향은 춘천이다. 평범한 집안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운동선수로서의 그는 어땠을까.

    “첨엔 잘했는데 갈수록 힘들었어요. 덩치(키 170cm)가 작아서요. 대학이요? 갈 실력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고…. 졸업하면서 다 끝났죠. 그때는 오직 불만뿐이었어요.”

    좀 노는 편이긴 했지만 ‘양아치’는 아니었다. 정의로워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김C는 무작정 길을 떠났다. 2년간의 방랑 혹은 유리걸식이 시작됐다.

    “무전여행도 뭣도 아니고…. 그냥 굶기도 하고 노동 일도 하고, 안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돈 좀 주세요’ 해서 배 채우기도 하고. 서울, 부산, 의정부, 부천…. 친구들 신세도 많이 졌구요.”

    마음이 내키면 책을 읽고 노트에 일기 비슷한 글을 써제꼈다. 노래 가사도 끼적댔는데 ‘음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싹튼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1년6개월 동안 방위병 생활을 하며 통기타를 배웠다. 하지만 악보 보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악보를 못 읽는다.

    “노래는 머리로 하는 거지, 클래식도 아닌데…. 우리(밴드)는 악보 같은 거 없어요.”

    제대 후 경기도 일산으로 갔다. TV에 소개된 주점 ‘화사랑’이 너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1994~96년까지 거기서 웨이터 겸 가수 겸 주차관리인 겸 주방보조로 일했다. 거기서 가수 강산에와 윤도현을 만났다. 강산에는 그에게 예인(藝人)의 본을 보여주었고 윤도현은 밴드 결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김C라는 예명을 지어준 것도 윤도현이다. 자신보다 한 살 많은 김C를 형이라 부르기 싫어 “김씨, 김씨” 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져버렸다. ‘뜨거운 감자’라는 밴드 이름은 김C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 ‘감자’로 하려는데 강산에가 “거기 ‘뜨거운’ 붙여”라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막걸릿집(화사랑) 그만두고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었어요. 밴드 만들고 죽어라 음악만 했죠.”

    생활을 대강 책임져준 건 1994년 만나 2000년 결혼한 그의 ‘색시’였다. 김C는 방송에서도 이 ‘색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감없이 표현했다. “7년 동안 10원 한 장 못 벌었는데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어요”, “색시가 착한 분이세요, 요리도 잘하시구요.” 이런 식이다.

    집에서도 존댓말을 쓰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편”이라고 답했다. “첨엔 미안하고 그러니까… 근데 자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높이게 되더라구요. 그냥 편하고 좋아요.”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잘하는 건 딱 하나, 솔직한 것뿐이라 했다.

    “뻥 안 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거짓말하면 다 안대요. 하기 전에 미리 안대요.”

    2000년 첫 음반 ‘N.A.V.I’를 냈지만 기획사가 망한 탓에 바로 사장됐다. 그래도 음악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돈은 못 벌었지만 창피하진 않았어요. 직업 있고 열심히 하는데 돈만 못 번 것뿐이니까.”

    올 6월, 2집 앨범 ‘뉴턴’을 냈다. ‘짱짱한’ 기획사를 만난 덕인지 제법 방송을 탔다(현재 ‘뜨거운 감자’는 윤도현밴드가 속한 ‘다음기획’ 소속이다). 그래서 그는 더 화가 났다고 한다. “나도 방송에 출연하지만 방송계는 썩었다. 썩어빠진 국회와 방송국이 모두 여의도에 있다는 것이 참 재밌지 않냐”고 흥분했다.

    “성격대로라면 오락프로그램 게스트로는 절대 안 나설 것 같은데 웬일이냐”고 물었다.

    “‘뜨거운 감자’를 알리려구요. 멤버 셋이 의논한 끝에 제가 대표로 나서 몸 팔기로 했어요. 사실 웃기죠. 허망한 일이죠. 7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아무도 몰라주더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다른 것도 들을 줄 알고 맛도 봐야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어쩌구 하는데 제가 볼 땐 멀었어요. 비교가 안 된다구요.”

    그는 자신이 소모되고 있다는 걸 안다. “처음이니 그렇지 서너 번들 더 보면 나에 대한 흥미가 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개그맨들은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지만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란다.

    엉뚱한 쪽으로 이름이 먼저 알려졌지만 김C는 뮤지션으로도 남다른 재능을 타고났다. 부드러움과 거친 면모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음색은 특별하다. 새 음반의 전 곡을 작사할 만큼 시적 감각도 뛰어나다. 서정적이면서 비유적인 언어로 세상을 향한 분노와 연민을 낮게 토해낸다. 그는 “세상을 정말 사랑한다. 그러니 바꿔보려고 이렇게나 발버둥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기타리스트 하세가와(33), 베이시스트 고범준(30)과의 호흡도 훌륭하다. 연주와 노래에 우정이 듬뿍 배어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 ‘뜨거운 감자’ 2집은 ‘386세대’조차 너끈히 감동시킬 수 있는 음악으로 가득하다. 진정성이 빛을 발한다.

    김C에게 “노래 가사에서 10대, 20대 시절 정서와 문제의식을 끝까지 끌고 가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 또한 과욕 또는 자기과보호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세상은 다 변해요. 변하지 않는 건 없다구요. 문제는 재수 있게 변하느냐 재수 없게 변하느냐죠. 신념을 바꿔서는 안 되잖아요.”

    ‘뜨거운 감자’의 노래 ‘아이러니’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람을 알아가고 계절을 알게 되고/ 현실에 아파한다 옛 꿈을 떠올리고/ 10센티씩 멀어져 가다 가끔씩은 잡힐 것 같고/ 멋진 나의 친구녀석은 죽을 때까지 기타를 친다고…’.

    죽을 때까지 매달릴 일을 찾은 이는 행복하다. 김C는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시를 쓸 것이다. 그래서 거칠 게 없고, 어디서건 제 스타일대로 입고 먹고 말하고 잔다. 한국의 미디어는 한동안 그를 소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가 길에서 체득한 스타일은 언제나, 그렇게나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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