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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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면 왜 詩가 생각날까

  • 입력2003-11-13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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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이 지면 왜  詩가 생각날까
    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우리네 삶의 은밀한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돋보기다.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루만지게 하는 연고다. 깊어가는 가을 함축된 짧은 글에 많은 이야기를 담은 시집들이 눈에 띈다.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 펴냄), 김선우의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펴냄), 이덕규의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이병률의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이상 문학동네 펴냄) 등이 그것.

    이성복의 시집은 좀 별나다.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시들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시를 모아놓은 시집이어서 그렇다. 시의 제목 밑에 인용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떠올린 단어나 문장, 이미지, 또는 주제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예컨대 ‘영혼이 날 비난했네―그래 난 두려워 떨었네―금강석의 혀가 욕하기라도 한 듯’이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를 읽고 시인은 ‘내 영혼 흠잡을 데 없네. 감기 몸살 안 하고 술 안 먹고 노래방 안 가고, 높새바람에나 깃을 칠까, 착한 내 영혼 누군들 기뻐하지 않으리’라고 썼다. 욕망을 비운 가벼운 몸의 시인이 할 수 있는 소박한 삶에 대한 찬양이다.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인간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상반된 열망을 시에 담아온 시인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으로 알려진 김선우는 지난 3년간 도시를 떠나 강원도 문막에 머물며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시집을 내놓았다. 그는 표제작 ‘도화 아래 잠들다’에서 고달픈 삶에 아파하는 여성의 내면을 아름답게 펼쳐놓고 있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의 근원을 묻는다. 그의 시는 다른 여성주의 시들에게서 보이는 억압적인 내면과 몸에 대한 피해의식보다는 남성적인 것에서 자유로워진 여성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이덕규와 이병률의 시집들은 첫 시집인데도 단단하고 풍부하다. 경기 화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덕규의 시들은 유약한 요즘의 시들 가운데서 드물게 강인하고 굵은 남성적 색채를 띠고 있다. 시인에게 현실은 ‘좁은 골목, 출구 없는 미로’여서 ‘병들고 짐승스런’ 현실세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상과 연결된 모든 안전고리를 남김없이 풀어버리고 상상의 공간을 떠돈다.



    이병률은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서 세상이 잊고 지나쳐버린 의미들을 정성스럽게 건져 올렸다. 그의 시들은 ‘어둔 방 불도 켜지 않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쌌는’(화영연화) 고독한 이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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